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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21. 2020

미국에서 부업으로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미국에서 한국어 가르치기를 부업으로 하게 된 이야기

학교에서 배운 영어로는  한 마디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학원에 다니며 영어 배우기에 힘을 쏟던 시절이 있었다.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려면 필수라는 영어 하나쯤은 자신 있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영어를 아무리 배우고 배워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매끄럽게 내뱉기가 어려웠다.

미국에서 태어나 세계 공용어라는 영어가 내 모국어였음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영어를 배우느라 용쓰지 않아도 될 텐데 싶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영어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살던 어느 날, 남편의 발령으로 미국에 왔고 미국에서 산 시간이 여덟 해가 넘었다.

미국에 올 때 만해도 소식적 품었던 영어의 한이 풀릴 줄 알았다.

그러나 미국에 살면 영어가 술술 나오리라는 것은 나의 착각임을 열심히 ESL 수업을 다니면서 깨달았다.

미국에 살기만 해도 영어가 나오려면 적어도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영어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야 되는 것이었다.

아니면 미국에 살면서도 피땀 눈물을 흘리며 영어 공부를 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마흔 가까이 되어 미국에 온 나는 영어에 재능은 없는데 피땀 눈물까지 쏟으며 영어공부를 할 열정도 없었다.



해도 안 되는 영어에 의욕을 잃어갈 즈음, 안 되는 걸로 의기소침해지느니 뭔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할 수 있는 것 중에도 내가 제일 잘하는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했다.

그즈음에 내 마음을 알아차린 지인의 소개로 한국학교(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우연찮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미국 성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센터에서 한국어 수업 한 강좌를 맡게 되었다.

한국어 센터의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했던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고용이 되었다.

그 후로 주중에 미국 공립학교의 특수학급에서 장애아동들을 돕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한국어 센터와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미국 학교에서, 토요일에는 한국어 센터에서 그리고 일요일에는 한국어 학교에서 일하며 주 7일 학교에 출근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슈퍼 워먼이라고 혼자 자화자찬을 하기도 한다.

주중에 매일 6시간씩 근무하는 특수학급 보조교사 일이 본업이고, 두 시간짜리 수업만 하는 한국학교와 한국어센터 수업은 부업인 셈이다.

나의 본업은 안정적인 수입과 근무시간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며 영어에 나를 노출시켜주는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영어가 모어인 장애아들과 동료직원들 사이에서 서툰 영어로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주눅이 들곤 한다.

 

한국어 교사는 한국학교와 한국어 센터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만 나를 필요로 하며 일주일에 두 시간밖에 수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한국어 교사라는 부업을 몹시 사랑한다.

물론 수업료를 지불하고 오는 학생들을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부업임에도 수업에 대한 책임감은 무겁다.

그렇지만 내가 제일 자신 있는 '한국어'로 목청껏 떠들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즐겁다.

특히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모어로 하며 자신들의 굴러가는 영어 발음이 표준 발음이라 믿는 미국인들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를 줄줄 늘어놓을 수 있는 한국어 센터의 수업 시간은 신이 나고 설레기까지 한다.

한국어 교사로 한국어 수업을 하는 시간은 나를 쳐다보는 미국인 앞에서 어떤 동사의 시제를 사용해야 하는지 또는 단수와 복수 중 무엇이 맞는지 궁리하며 우물쭈물할 필요가 없다.

고심하여 내뱉은 내 문장에 틀린 것은 없었나 주눅 들 필요 없이, 미국에서 미국인들에게 내가 제일 잘하는 한국어로 맘껏 잘난 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 때문인지 주 7일 출근으로 몸은 피곤한데 한국어 수업을 하다 보면 에너지가 솟아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래서 나는 내 부업을 포기할 수가 없다.


가끔은 월, 화, 수, 목, 금, 주 5일 한국어를 가르치고 주말에만 영어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색한 한국어 발음을 하느라 쩔쩔매는 미국인들 앞에서 매일 자신 있는 한국어로 잘난척하며 신나게 수업을 할 수 있을 텐데.

한국어를 매일 배우고 싶은 미국인들이 몰려와서 수업이 마구마구 늘어나면 가능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진정되고 한국의 위상이 더 올라간다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영어를 한다고 믿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굴러가지 않는 혀로 어설픈 영어를 하며 살려니 답답하고 어렵다.

주 5일을 미국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며 해야 하는 영어가 버거울 때도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미국인들에게 내가 잘하는 한국어를 내가 가장 자신 있는 한국어로 가르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한국에서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영어를 배우던 내가 미국에서 돈을 내며 한국어를 배우러 오는 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대단해진 한국의 위상과 한국어의 가치가 자랑스럽다.


나는 미국에서 부업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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