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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Dec 26. 2020

이런 일곱 살 인생도 있다.

반백년 산 인생보다 열 배는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일곱 살의 이야기

마음 아프도록 쓰디쓴 일곱 살 인생을 가진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교실 수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리안이 우리 학교의 유일한 특수학급인 12번 방으로 전학을 왔다.


리안은 일곱 살짜리 멕시칸 소년이다. 엄마, 누나와 셋이 살던 리안은 중독에 빠진 무기력한 엄마의 방치로 인한 학대 신고로 누나와 함께 Foster Parents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는 중에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몇 달 사이 두 번이나 Foster Parents가 바뀌었고 현재 세 번째 Foster Parents와 함께 살고 있다. 현재 리안의 Foster Parents가 우리 학구에 살고 있기 때문에 리안은 12번 방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다.


심한 ADHD를 보이는 리안은 제대로 보살핌 받지 못한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터득해야 했던 눈치 보기와 기회 잡기에 능하다. 말썽과 떼쓰기가 특기인 기존의 12번 방 남다른 아이들에 자신이 필요한 것을 얻어내면서도 영특한 머리로 뺀질거리며 말썽을 피워대는 꼬마가 더해진 12번 방은 몇 배나 심란해졌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실실 대며 교사들의 눈에 들려고 애를 쓰다가도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의자며 가방을 집어던지는 리안은 12번 방의 따라쟁이들에게는 독보적인 우상이, 허술한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존재가 되었다.

교사들 뿐 아니라 반 아이들도 쥐락펴락하며 자신의 기분에 내키는 대로 주무르는 리안을 볼 때면 그 아이의 영악함과 생존의 기술에 화가 나기도 하고 몹시 미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얼르고 달래면서 숫자 공부와 알파벳 쓰기를 시키다가 속이 터지는 순간이 밀려오면 밤톨만 한 꼬마 머리에 꿀밤이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어 진다.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해서 하기 싫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눈물 연기까지 벌이는 일곱 살짜리와 매일 한 공간에서 시달리다 보면 진이 빠지기도 한다. 그 아이의 심술과 억지 그리고 변덕이 안타까우면서도 '오늘도 무사히'를 꿈꾸는 12번 방 교사들에게 리안은 참 어렵고 힘겨운 존재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칭찬과 함께 주어진 장난감을 받고 신이 나서 사랑스러운 아기 목소리로 과장되게 종알거리는 리안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면 치밀어 오르는 화로 미운 마음을 먹었던 것이 미안해진다. 마음으로 쥐어박았던 꿀밤을 얼른 주워다 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이 세상에서 고작 칠 년 밖에 안 살았지만 내가 반백년 가까이를 살면서 겪은 모든 어려움보다 열 배는 더한 고통을 겪었을 그 아이의 날들이 가늠이 가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살아남는 생존의 날들이었을, 그 칠 년 동안의 어려움이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무겁고 무서운 날들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일곱 살 꼬마의 인생에 마음이 짠하다.

등교시간이면 뽀뽀를 날리는 부모의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틈에서 혼자 노란 스쿨버스에서 내리고, 하교 시간이면 두 팔 벌려 안아주는 부모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스쿨버스에 오르는 리안을 볼 때면 그 아이의 미운 짓으로 인한 감정적 피로감이 미안해질 만큼 안쓰럽다.




뉴스 보면 마음 아픈 상황의 아이들이 참 많다.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힘든 아이들의 처지에 어른으로서 할 말을 잃을 때도 종종 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옆에 있었고 부모 아래서 자라 부모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가진 아이들을 볼 때면 내 인생은 얼마나 쉬운 것이었나 생각하곤 한다. 굴곡 없고 쉽기만 한 인생은 없다지만 굴곡의 높이와 깊이, 어려움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음을 여러 모양의 인생들을 보며 배운다.

오늘도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는 인생은 결코 알 수 없는 삶의 무게와 사람이 준 상처에 버둥이는 일곱 살짜리를 보며, 가끔은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일곱 살짜리를 미워했다가 그런 내 마음이 부끄러워서 화들짝 놀라기도 하면서 다시금 삶의 아픔을 배웠다. 고작 일곱 살짜리에게서 반백년을 살아온 사람이 '그래도 살아가는 인생'을 매일 배운다.


칠 년이 칠십 년, 어쩌면 칠백 년쯤으로 느껴질 만큼 어려운 인생. 그런 일곱 살 인생도 있다.


오늘도 홀로 스쿨버스에 오르는 일곱 살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기원한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지만 이 고단한 일곱 살 꼬마의 인생의 골짜기가 메워지고 험한 산이 낮아져서 남은 인생은 지난 칠 년 보다는 살만한 인생이 되기를. 불안과 두려움 없이 작은 몸이 편히 자리 잡을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을 소유한 보통의 아이들처럼 살게 되기를.

그런 일곱 살 인생쯤은 다 이겨냈다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

 



* Foster Parents는 사전에는 양부모 또는 수양부모라고 나오는데 부모를 잃거나 사정으로 인해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아이들이 양부모에게 입양되기 전 또는 회복된 부모에게 돌아가기 전 일정기간 지낼 수 있도록 가정을 제공해 주는 사람을 말한다.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attention deficit / hyperactivity disorder ]는 과잉행동, 충동성을 주증상으로 보이는 정신질환이며 스스로 조절이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고 과격한 행동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 이미지 출처 : Pixbay.c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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