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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Feb 26. 2021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삐뚤빼뚤한 걸음으로 더디게 걸어가는 아이들일지라도......

12번 방의 남다른 아이들이 혼자 교실까지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미국초등학교의 유일한 특수학급에는 유치원생 1명과 1학년 10명이 재학 중이다. 유치원생과 1학년 한 명은 온라인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나머지 1학년 9명은 매일 교실로 등교한다. 

다른 일반 학급 아이들이 부모의 차에서 내려 각자 교실로 걸어가는 것과 달리, 우리 12번 방은 항상 보조교사들이 학교 현관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아이들을 줄 세워 교실까지 데려가고는 했다. 등교하는 10분 정도의 시간에도 12번 방의 남다른 아이들은 앞에 서네 뒤에 서네 힘겨루기를 하거나 이게 좋네 저게 싫네 하며 소란을 피웠다. 교실로 가면서도 새치기를 하거나 가방으로 친구를 때리는 아이들로 교실에 들어서면 이미 하루의 피곤이 밀려오는 기분이 들곤 했다.

2021년이 시작되고 얼마 후,  12번 방의 교사들은 12번 방 아이들에게 혼자서 교실로 등교하는 시험을 해 보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에게 "너희들도 다른 1학년들처럼 혼자 교실로 등교할 수 있는 Big boys와 Big girls다"라고 주입을 하며 사전교육을 시켰다. 개별 등교 작전 첫날, 미리 세운 작전대로 한 보조교사가 현관 앞에서 아이들을 맞이하고 다른 보조교사가 한 명 씩 교실 쪽으로 보내며 뒤에서 지켜보는 동안 교실 앞에 선 내가 교실로 걸어오는 아이들을 맞이한 후 화장실에 다녀오도록 지도했다. 그 사이 담임교사는 교실에 들어선 아이들에게 전 날 미리 고른 책을 읽도록 했다. 사실 작전을 세우면서도, 작전 전날까지도 우리는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하며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우물쭈물 망설이거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며 걷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학교 현관에서 교실까지 혼자 걸어오는 것을 무사히 해냈다. 교실까지 도착한 아이들은 혼자서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교실까지 돌아오는 것도 해냈다. 나와 담임교사의 박수를 받으며 무사히 자기 자리에 도착한 아이들의 얼굴에서는 성취감이 가득했다. 아이들이 각자 교실로 등교하기 시작하자 다른 친구의 등교를 기다리거나 줄을 서서 교실까지 오는 동안의 번잡스러운 말썽이 사라지니 12번 방의 아침은 그 이전보다 차분하고 평화롭게 시작되었다. 물론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다른 아이를 집적대거나 징징대며 소란과 말썽을 피우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아침의 평화는 곧 햇살 아래 이슬과 같이 사라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에 의기충천해진 우리는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혼자 급식을 받으러 갔다 오는 것도 시행하기 시작했다. 급식받으러 가는 동안도 싸우고 급식을 받고 돌아오다 서로 밀쳐서 넘어지던 아이들이 한 명씩 따로 보내기 시작하니 훨씬 차분해졌다. 덕분에 곧 흐트러질 질서일지라도 질서 있게 점심 식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마다 주춤거리거나 삐뚤빼뚤한 걸음으로 다른 일반 학급 아이들과 섞여 교실까지 혼자 걸어오는 아이들을 교실 앞에 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감회가 새롭다. 다른 아이들보다 위태롭고 더디지만 우리 아이들도 가야 할 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같아 그 발걸음이 신통하고 대견하다. 멀리 뒤에서 지켜보는 동료 보조교사의 흐릿한 표정에도 나와 같은 마음이 담겨있음이 느껴지곤 한다.

 

조금 느릴지라도 다른 아이들 틈에서 혼자 교실까지 걸어올 수 있게 된 발걸음이 마른 가지가 움을 틔우는 것과 같이 대견하다  


같은 날 밭에 심은 씨앗들도 어떤 것은 먼저 싹이 나고 어떤 것은 모두가 열매를 맺은 뒤에야 꽂을 피우듯이 보통의 다른 아이들 틈에서 남다른 아이들도 함께 성장하고 있었다. 모두가 교실에 들어차고 담임교사가 수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게으름과 나태함을 맘껏 드러내며 자신의 남다름을 마구 발산할지라도 우리 아이들은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배우고 자라건만 아이들의 더디고 삐뚤어진 걸음에 조바심을 내고 안달을 하는 것은 어른들인 모양이다. 한 걸음 앞으로 갔나 싶으면 두세 걸음씩 뒷걸음질 치는 남다른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지치고, 마치 자라지 않는 말라버린 나무에 물을 주는 것 같아서 힘겨운 날도 있지만 아이들은 아주 천천히 움을 틔우고 있었음을 체험한다. 다른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교실로 등교하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급식을 타오는 그런 당연한 일들을 했을 뿐인 남다른 아이들에게 마치 대단한 것이나 성취한 냥 감탄하고 환호하면서 아이들은 믿어주는 만큼 해낸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들도 자신들을 믿어주는 사람 앞에서는 더 열심히 성장하기 위해 힘을 내려는 것을 느낀다. 물론 그 믿음을 하루에도 열두 번은 배신하는 남다른 아이들로 인해 오늘도 배신의 쓴맛을 보고 퇴근했지만 말이다.


삐뚤거리는 걸음으로 더디게 한 걸음 내딛고 두 걸음 뒷걸음을 칠지라도, 이 특별하게 남다른 아이들도 자란다.

천천히 조금씩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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