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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pr 21. 2021

장애아의 형제와 자매들에게도 특별한 치료가 필요합니다.

장애아의 형제와 자매들에 생길 수밖에 없는 마음 장애에 대하여

발달장애와 자폐를 가진 아이들이 생활하는 특수학급에서 만나는 아이들 뒤에는 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남다름에 속이 타는 부모들이 있다. 그리고 남다른 아이들의 그늘 아래에서 힘겹게 자라는 형제와 자매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안타까워한다. 그 장애아 자녀를 둔 부모의 한숨에 가슴 아파한다. 그러나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있다. 장애아의 형제와 자매들이 겪는 마음속 장애가 그것이다.


복사기라는 별명을 가진 우리 반 사라는 다른 아이들의 나쁜 짓을 따라 하거나 어른들 흉내는 것이 취미인 일곱 살짜리 소녀다. 사라는 친구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에게도 선생님처럼 굴곤 한다. 사라는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될까 싶어 키우는 개의 행동까지 복사하여 음식을 입으로 먹기도 한다. 그런 사라가 집에서 여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늦되고 언어장애가 있는 사라가 안타까워 한없이 인내하고 끝없이 사랑하는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사라에게는 평생을 양보하며 살아온 미샤라는 세 살 연상의 언니가 있다. 언니라고 해봤자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일 뿐인 미샤는 지극히 보통의 정상적인 아이라는 이유로 참고 기다리며 자랐다. 누구도 겉으로 강요하지 않았지만 미샤가 동생을 위해 참고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미샤가 생일에 선물을 받는 것을 본 사라는 온 집안을 뒤집어 놓았고 결국 부모는 사라에게 따로 선물을 사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라보다 장애인 동생의 언니로 살아가는 미샤의 마음속 장애가 더 걱정이 되었다. 자기 이름의 첫 글자 'S'를 혼자 썼다는 담임의 칭찬에 부모의 환호와 뽀뽀를 받는 동생을 보면서 미샤는 어떤 생각을 할까? 동생과 달리 자신은 혼자 꼬박꼬박 숙제를 하고 날마다 별일 없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가정이 미샤에게 어떤 의미일까? 세상에 태어난 첫 삼 년 이후로는 부모의 관심 가장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미샤의 마음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미술에 재능이 있지만 자폐가 심한 여섯 살 랜든에게는 한 살 어린 여동생 키라가 있다. 랜든의 엄마는 랜든이 뛰어난 미술적 재능으로 자폐의 약점을 극복하기를 바라며 랜든에게 하루 24시간을 쏟아붓는다. 그런 탓에  키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오빠가 하는 수업과 언어 및 심리치료에 늘 동행한다. 마치 마트에서 파는 1+1 이벤트에 딸려 나오는 사은품처럼 말이다. 선생님이 랜든을 위해 책을 읽어주면 엄마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랜든의 눈과 귀를 책으로 돌리려 동동거리는 동안 옆에 있는 키라가 책 속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엄마가 오빠에게 몸과 마음을 쏟는 동안 오빠의 사은품처럼 살고 있는 키라는 오빠에게 매달린 엄마와 자신에게서 엄마를 빼앗아가는 것 같은 오빠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오빠의 세상 한구석에서 조용히 자라는 키라의 마음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다.




남다른 아이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기 시작한 처음에는 특수학급의 아이들이 가엽게 느껴졌다. 조금 눈이 열린 뒤에는 그 아이들의 장애에 눈물과 한숨을 지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을 붙잡고 있는 부모들이 보였다. 특수학급에서 일하는 세월이 늘어가는 만큼 언제부터인가 남다른 아이들과 부모를 넘어 그들의 가정의 모습도 가늠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 반 아이들의 형제와 자매들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극히 보통의 아이들은 동생이 태어나면 시샘을 하고 부모가 다른 형제자매에게 더 관심을 쏟으면 심통을 낸다. 그런데 부모의 특별한 관심과 더 많은 애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아픈 손가락과 같은 장애아 형제나 자매를 둔 아이들은, 다른 가정의 아이들과 다르게 그들의 형제나 자매에게 샘을 내거나 부모에게 투정을 부릴 수 없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샘을 내고 투정을 부리는 지극히 평범한 행동을 통해 표현하는 당연한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라는 것 같다.

부모가 아무리 모든 자녀들에게 같은 사랑을 주려고 해도 연약한 아이에게 더 관심과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장애를 가진 형제나 자매로 인해 힘겨운 부모를 보며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참고 양보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마음에 장애가 생긴 것은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장애아 가정의 보통의 자녀들이 적게 돌아오는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부모의 관심 가장자리에서 자랄지라도, 장애아 형제나 자매의 남다른 세상을 공유하면서도 잘 견디며 건강하게 자란다. 더 배려할 줄 알고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단단해지기까지 말하지 못했던 상처와 아픔에는 딱지가 두껍게 앉았을 것이다.




오늘도 하굣길에 사라가 아빠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며 잘 가라고 손을 흔들다가 자동차 뒷자리에서 아빠와 동생을 가만히 바라보는 미샤를 보았다. 온라인 수업 시간 내내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오빠와 그런 오빠의 주의를 붙드느라 동동대는 엄마 옆에서 오도카니 앉아 오빠를 위한 수업을 시청하는 키라를 컴퓨터 화면으로 만났다.


우리 반의 남다른 아이들은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학교 생활 중간중간에 언어 치료와 심리 치료를 받는다. 장애의 정도에 따라 운동치료와 미술치료도 매주 병행된다. 그러나 장애아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는 보통의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형제나 자매들의 그늘로 인해 누렇게 시들고 줄기가 휘어지는 것에는 어떠한 치료도 제공되지 않는다. 어쩌면 장애를 가진 아이들보다 장애아 형제와 자매들의 마음속 장애가 몇 배나 더 심각할 수 있을 텐데 누구도 숨겨진 그들의 마음속 아픔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장애아들에게만 특별한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장애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만 위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장애아의 형제와 자매들에게도 그들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와 아픔을 위한 특별한 치료가 필요하다. 늘 갈급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의 가장자리에서도 꿋꿋하게 자라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하고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하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201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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