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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25. 2021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

남의 나라에서 한국 아이로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시

남의 나라에서 한국인의 아이로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한국적 생활양식을 요구하는 부모의 비위를 맞추며 다른 나라의 문화와 요구에도 걸맞은 사람이 돼라 하니, 이중국적을 가질 수 없는 아이에게 이중국적을 요구하는 꼴이다.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 건데? 


화를 내는 아빠에게

내 생각 말했더니

어디 어른한테 말대답이냐 


말대답하지 말래서

선생님 말씀 가만히 듣고만 있었더니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상담실로 보냈다 


잔소리하는 엄마가

어이없어 쳐다봤더니

어디 어른을 똑바로 쳐다보냐 


똑바로 쳐다보지 말래서

선생님 대신 바닥을 쳐다봤더니

사람과 눈 못 맞추는 아이라고

또 상담실로 보냈다 


학교에선 말대답을 해야 한다

집에서는 말대답을 하면 안 되는데

선생님을 똑바로 쳐다봐야 한다

아빠 엄마는 똑바로 쳐다보면 안 되는데

 

학교에선 미국 사람처럼 굴란다

집에선 한국 사람처럼 살란다 


그럼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 건데? 




*시시한 시의 뒷 이야기*


선생님이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고, 선생님이 말을 하면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대꾸하도록 가르치는 미국 학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와 내가 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한국인 아이들이 왜 가정 안과 가정 밖 생활 사이의 괴리에서 힘들어했는지를.

변명하는 아이에게 화를 참을 수 없어 말대답하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꾸중하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를 향해 아빠에게 눈을 똑바로 뜬다며 화를 내는 남편에게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비슷한 사건들을 겪으며 아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알면서도 여전히 내 편의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는 엄마와 선생님으로 살고 있음을, 부끄럽지만 인정한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을 어른을 존중하는 아랫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어른과 같은 위치의 존재로 인정하며 교육한다.  학교 교장이 유치원 아이와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마치 다른 성인과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눈을 맞추고 귀 기울여 듣는다. 아이들에게 질서와 예의를 요구하지만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며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한다. 어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안 되고 어른의 말에 말대답하면 안 되는 문화 속에 자란 나는, 아이들이 어른들과 눈을 맞추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도록 가르치는 미국 학교가 여전히 가끔은 낯설지만 나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국인 부모의 자녀로 미국 사람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나의 아이들과 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런 것에 서툰 지극히 한국적인 부모와 한국어 교사로서 미안하다. 그런 부모들의 기대와 남의 나라의 요구 사이에서 혼란과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건강하게 자라 주는 한국인 아이들이 참 고맙다.



*사진 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271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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