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마다 소풍 May 18. 2021

피곤한 아빠의 낮잠에 담요를 덮어주세요

피곤한 아빠와 그 아빠를 위로할 줄 아는 아이를 위한 시

가끔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사는 게 참 피곤하지' 싶어 코 고는 소리까지 짠하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아빠의 낮잠 


조용한 일요일 오후 거실로 나오니

만날 피곤하다는 우리 아빠가

소파에서 낮잠을 잔다  

드르렁드르렁 컥


어? 아빠가 죽었나? 

아빠 가슴에 귀를 대본다

콩닥콩닥

휴~ 살아있네 


휘융

드르렁드르렁

콩닥콩닥 

아빠는 참 신기하기도 하지

혼자서 

하모니카

드럼

캐스터네츠

합주를 참 잘도하네 


아하,

아빠는 자면서도 악기 연주하느라 피곤하구나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슬그머니 덮어준다  




*시시한 시의 뒷이야기*


외출했다 집에 들어서는데, 조용한 집 안에 남편의 코 고는 소리만 시끄럽다. 조용히 거실로 들어서니 아들이 소파 위에서 자고 있는 아빠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아빠랑 같이 자는 것을 좋아하던 아들은 같이 자자며 아빠가 졸라도 아빠의 코골이 때문에 시끄러워서 같이 못 잔다고 도망을 간다. 아빠 코 고는 소리를 싫어하는 아들이 아빠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빠 이불 덮어주려고 나왔냐는 내 물음에 아들은 물 마시러 나왔는데 아빠가 이불도 안 덮고 자고 있어서 덮어주었다는 말만 남기고 자기 방으로 쌩 들어갔다. 

어쩌면 퉁명스러운 사춘기 아들도 아빠의 피곤한 인생의 한 귀퉁이쯤은 이해할 만큼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공연히 더 퉁명스러운 대답만 남긴 아들이 들어간 방문을 기특한 마음으로 바라보는데 아들이 덮어준 담요가 고마운지 남편은 더 크게 코를 곤다. 저렇게 시끄러우니 아들이 같이 안 잔다고 도망을 가지 싶으면서도 저리도 크게 코를 골며 자려니 얼마나 피곤할까 싶은 마음이 들어 담요를 다시 다독이며 덮어주었다. 

피곤한 아빠의 인생에 담요 한 장쯤 덮어주는 아들이 있어 당신은 그래도 살만하겠다. 싶었다.



*사진출처 : https://pixabay.com/images/id-1051509/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