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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10. 2018

뜨거운 치토스 먹어 봤어요?

치토스도 뜨겁고 신라면도 뜨거운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

사람이 보유하는 언어의 공간은 정해져 있는 걸까?

영어의 양이 늘면 한국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럼 영어도 안 늘고 한국어는 줄어드는 것은 또 뭐람?

게다가 또 4개 국어 5개 국어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인가 보다.




미국에 처음 오면 제일 걱정이 아이들이 수업이나 제대로 따라갈까 싶은 것이다. 엄마보다 영어를 못해서 할 말이 있으면 엄마에게 대신 말해달라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한국 억양이 듬뿍 담긴 성문영어식 엄마 영어의 허술함을 느끼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영어를 하지 말라고 하기 시작한다. 엄마의 영어가 창피하단다. 한국의 영어교육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아이의 미국스러운 영어가 가능해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서운한 마음은 들어도 엄마는 술술 나오는 아이의 영어가 대견하고 고맙다. 그래서 점점 아이의 영어를 빌어 영어가 필요한 상황을 해결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즈음 되면 아이는 조금씩 한국말을 헷갈려하고 한국어 표현을 잊어버리면서 영어 같은 한국어를 하게 된다.




내 친구가 부엌에 있는데 아들이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엄마, 치토스가 뜨거워. 치토스가 뜨거워."

하며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란다.

뜨거운 무엇인가를 만졌나 깜짝 놀라서 가보니 손가락이 빨갛게 치토스 가루가 묻어있었다.

알고 보니 Hot Cheetos를 먹는데 너무 매워서 펄쩍펄쩍 뛰던 거라는 것이다.


Hot Cheetos가 매운데 맵다는 말 대신 뜨겁다는 말이 떠오른 것이다.

이즈음 되면 영어가 느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지만 한국어를 잊어가는 것이 걱정이 된다.


아이들은 정말 스펀지처럼 영어를 빨아들인다.

물론 한국에 살다가 중간에 미국에 온 아이들이 처음 미국 교실에 혼자 남겨졌을 때, 그 아이들은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을 바다에 던져 넣은 것과 같은 정도의 스트레스를 맛본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기를 잘 지나고 나면 영어가 일취월장이라는 사자성어에 걸맞게 쑥쑥 는다.

그와 동시에 모국어였던 한국어가 알쏭달쏭해지다가 점점 희미해진다.

특히 저학년에 미국에 온 아이들은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영어가 느는 만큼 한국어를 잊어버리고 심지어 발음도 영어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게 된다.



Hot은 사전적인 의미 외에도 일상생활에서는 다양하게 쓰이지만, 여기서는 맵다는 의미로 쓰인 것을 다 알고 있다.

아이도 예전에는 매운 치토스라고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어가 한국어보다 더 친밀해지는 때부터 순식간에 '맵다'는 단어와 'Hot'을 연결시키지 못하고 '뜨겁다'와 연결시킬 만큼 한국어의 의미를 잊어버리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4학년 때 전학 온 우리 큰 아이도 가끔 한국어 낱말이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설명하며 물을 때가 있다.

"엄마 왜 그,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는 거 그걸 뭐라고 하더라?" 또는 "엄마 공약이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이전에는 알았거나 낯선 단어여도 주변 문맥을 통해 이해하던 단어도 모르는 상황이 생긴다.  


우스운 것은 미국에서 몇 년을 살다 보니, 아직도 서툴고 불쌍한 영어를 하는 나 조차도 가끔 한국어 낱말들이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자주 사용하는 일상용어야 그럴 일이 별로 없는데 간혹 글을 쓰거나 대화 중 한자말이나 조금 드물게 사용하는 낱말이 필요한데 머리 속에 뱅뱅 돌면서 기억이 날 듯 말 듯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끔 주변 지인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미국에 살다 보니 영어도 안 되고 한국어도 안 되는 애매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웃곤 한다.




매운 치토스가 뜨거운 아이들은 맵고 뜨거운 신라면은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우리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미국에서 Hot Cheetos를 먹으며 "치토스가 매워"라 표현하는 우리 아이들이 될 수 있도록 엄마는 옆에서 한국어를 계속, 열심히, 자신 있게 사용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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