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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15. 2019

미국 학교의 임시교사로 처음 출근한 날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9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미국에서도 내가 할 수 있을 찾아보자는 마음을 먹고 1년이 되어서 마침내  우리 교육구(District)의 Substitute Teacher (임시 교사)로 일하게 되었다.

희망과 실망, 기대와 염려의 날들이 지나고 마침내 첫 출근날이 다가왔다.




임시교사를 하는 학교에 첫 출근을 해서야 내가 수락한 Sub Job이 교사 자격증(Credential)을 가진 Sub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Certificated Job임을 알았다.

어리둥절하는 나를 본 학교 직원이 그런 것도 모르고 출근한 나의 어설픔과 허술함에 속으로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요청이 왔다고 덥석 수락을 하고 드디어 출근하게 되었다고 신이 났던 무지한 임시교사였다.




여느 때보다 이른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뜨자마자 아침 식사와 도시락을 준비하고 가족들의 등교와 출근을 도와준 뒤, 설거지를 마친 나는 6년 만의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머리를 신경 써서 손질하고 화장도 평소보다 꼼꼼하게 하였다.

평소에 잘하지 않던 마스카라까지 바른 뒤 어제 준비해둔 옷을 꺼내 입었다.

몇 번이나 거울을 보고 오리엔테이션 때 담당자가 말한 것처럼 Sub시간 보다 30분 일찍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처음 가는 낯선 길을 지나 무사히 Sub로 근무할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무슨 일로 왔냐고 물었다.

나는 능숙하게 첫마디를 떼기 위해 운전하면서 여러 번 연습했던 문장을 나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I came to substitute for Ms.B."

직원은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일찍 왔다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나는 Credential(교사 자격증)이 있는 Sub인데 IA 일을 해도 괜찮냐고 물었다.

갑자기 가슴이 덜컥하면서 내가 잘못 온 건가 싶어서 문제가 있냐고 묻고 나서 내가 초짜 임시교사인 것을 들키기 싫어 입술 꼬리에 힘을 주며 웃었다.


Sub 사이트에 Sub요청이 뜨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봐 얼른 수락을 누르고 나서 Sub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IA Position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인터넷에서 무슨 뜻인가 찾아보기는 했었다.

Instructional Assistant를 뜻하는 IA는 교사의 보조 역할 같은 것 같기에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니까 첫 Sub로 좋겠다 싶어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그런데 직원이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지 물어보니 나는 당황이 되었다.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IA는 Credential 없이 Certificated Pool에 있는 사람들이 Sub로 하는 일이지만 Credential이 있는 Substitute Teacher들은 상위 그룹이기 때문에 Certificated Job 요청도 수락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Substitute Teacher들은 Credential이 있다는 자존심 때문인지 IA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시 교사 자격증을 가졌으나 목마른 재취업자인 나에게 그런 것은 자존심이 절대 상하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당황했다는 것은 들키지 않기 위해 계속 웃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면서 나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괜찮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직원은 웃으면서 그럼 다행이라며 임시 교직원 출입카드가 걸린 목걸이를 주었다.

미국 학교는 교직원 카드를 걸고 있거나 봉사자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 외에는 교내에 들어올 수 없다. 

그래서 Sub가 오면 일반 교직원들과는 색이 다른 임시 교직원 카드가 달린 목걸이를 준다. 

출근할 때 임시 교직원 카드를 받아서 목에 걸고 지내다가 퇴근할 때 사무실에 다시 반납해야 한다.


임시 교직원 카드 목걸이를 목에 걸면서 잠깐 망설이던 나는 소심하게 '그러면 Sub 수당이 다르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직원은 나는 Substitute Teacher 이기 때문에 시간당 책정된 Substitute Teacher 시급에 기준해 지급되니 수당은 같다고 알려주었다.

아마도 Certificated Substitute는 Credential을 가진 Substitute Teacher 보다 조금 적은 수당을 받는 모양이었다.   

그럼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었다. 

직원은 내가 일찍 와서 일할 시간은 안 되었지만 어쨌든 오늘 Sub로 일할 교실로 가라면서 학교 지도를 주며 담당 교사 이름을 알려주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담당 교사가 내가 일찍 와서 당황해하면서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 날 내가 맡은 일은 학습 부진아 아이들의 상황에 따라 영어와 수학을 따로 지도해주는 학급 부진아 지원 프로그램 담당 교사를 돕는 보조교사 역할이었다.

이미 교실에는 두 명의 보조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이 날부터 사흘간 빈 보조교사 자리를 맡아 그 교사가 담당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담당 교사가 시간별로 내가 맡을 아이들 명단과 가르쳐야 할 자료를 주었다. 

첫 수업은 수학으로 곱셈과 나눗셈이었다.

받는 자료를 읽고 있는데 여덟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고 다른 보조교사와 넷씩 나누어 받은 자료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말은 좀 어눌해도 수학은 연산 방식을 가르치면 되니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한 명을 도와주고 있으면 나머지 세 명이 연필을 던지거나 떠들며 돌아다녀서 아이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사이 30분이 금방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아이들이 들어왔다. 

수업에 집중을 못하니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 부진아가 되었을 산만하고 심란한 미국 아이들과 안 되는 영어로 버벅거리는 중에 세 시간이 지나고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담당 교사에게 내가 월요일과 화요일도 Sub로 오게 되었는데 같은 일인 것 같다고 하니 확인을 하더니 맞다면서 월요일에 보자고 하였다.

그러면서 일찍 올 필요 없이 시간 맞추어 오라고 하였다.

점심시간인지 아이들이 도시락을 들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운동장을 지나 사무실에 가서 일을 마쳤다고 보고하면서 임시 직원 카드를 반납하였다.


주차장으로 나와 차 안에 앉았더니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첫 출근의 긴장감과 나의 부족한 영어에 대한 초조함 그리고 아이들이나 담당교사에게 책 잡히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던 피로감에 한참을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제 가방에 넣어온 Sub Report는 꺼낼 일도 없는 하루였고 세 시간, 그것도 보조 교사라서 소그룹으로 수업을 했을 뿐인데도 하루 종일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기운이 빠졌다.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6년 만의 첫 출근이자 난생처음 미국 학교에서 일한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어눌하기는 했지만 영어로 미국 아이들과 소통을 하며 어쨌든 맡은 일을 나름대로 잘 감당한 것 같았다.

또한 세 시간 동안 일하고 받게 될 돈은 얼마 안 되겠지만 내가 미국 학교에서 일을 하고 일당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대견했다.


저녁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첫 출근 보고를 하였다.

아이들은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엄마의 용기가 대단하다면서 고개를 끄덕여주었고 남편은 박수도 쳐주었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두 번째 출근길은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금요일과 같은 학교에서 같은 일을 세 시간만 감당하면 된다니 부담이 덜하였다.

사흘째 되던 화요일 근무를 마치고 나오면서 Sub로 근무한 첫 학교라는 생각에 혼자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흘 동안 만나니 수선스러운 아이들과도 살짝 정이 들었는데 언제 다시 보려나 아쉬움이 느껴졌다.

 

만약 첫 출근이 일반 Full Time Sub 일이었다면 아마도 몇 배는 힘든 적응기를 보냈을 것이다.

내가 처음 IA Sub로 근무한 초등학교에서의 사흘은 나에게 Substitute Teacher로서 준비운동 같은 경험이었다.

출근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웠고 학교의 직원으로서 경험하는 미국 학교의 분위기는 어떤지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미국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나의 영어가 어느 정도 미국 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이해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누가 계획했더라도 이보다 더 완벽한 시작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미국 학교 근무 초년생인 나에게 딱 맞는 출발이었다는 것을 이후에 그 날을 되돌아볼 때마다 깨닫는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덥석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미국 학교에서의 첫 발을 떼게 되었던 것에 두고두고 감사하고 감사했다.




Tip 1

우리나라도 그렇듯이 미국 학교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여러 직종의 사람들이 있다.

교사나 보조교사를 비롯하여 사무실 직원들이나 학교 관리사, 학교 간호사들이 결근하는 경우 같은 직종의 Sub Pool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대체 인력(Substitute)으로 충원되게 된다.

그러나 교사와 보조교사는 교실에서 학생들을 돌보는 유사한 직종이고 Credential이 있는 Substitute Teacher들은 상위 그룹이기 때문에 보조교사인 Certificated Job 요청도 수락할 수 있어서 보조교사의 대체인력으로 근무할 수도 있다.

그런 경우 보조교사일지라도 임시교사의 자격으로 보조교사를 대체하는 것이라서 일반 임시교사 일과 같은 시급을 받게 된다.

하지만 보조교사로 근무하는 Certificated Pool에 있는 사람들은  Credential이 필요한 Substitute Teacher 일을 대신할 수는 없다.

Tip 2

Substitute Teacher(임시교사)로 출근한 학교에 도착하면 일단 주차장의 빈자리에 주차를 한 뒤 사무실로 먼저 가야 한다. 

가서 이름과 내가 Substitute 할 교사의 이름을 말하면 직원이 내 이름을 확인해 주고 가야 할 교실과 할 일들을 알려준다.

출근 보고 후 잊지 말고 꼭 물어봐야 할 것이 주차에 대한 것이다.

학교마다 다른 주차정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교의 주차 상황에 대해 알아야 한다.

어떤 학교는 아무 데나 빈자리에 주차를 해도 상관이 없는 곳도 있고 어떤 학교는 교사들마다 정해진 주차 칸이 있어서 내가 Substitute 할 교사의 번호에 주차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사무실에 출근 보고 후 해당 번호가 있는 곳으로 차를 옮겨야 한다. 어떤 학교는 등록된 차량만 주차가 가능하도록 운영하고 있으므로 사무실에서 주는 임시 주차권을 운전대 위에 놓아두어야 되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 사무실 직원이 주차에 대해 안내를 해주지만 직원이 챙겨주지도 않고 임시교사도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하는지 물어보지 않아서 제대로 주차를 하지 못한 경우 퇴근할 때 난감한 상황을 맞닥 뜨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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