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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07. 2019

첫 출근을 손꼽아 기다리던 초보 임시교사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8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미국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미국 학교의 Substitute로 일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국 학교에서 Substitute(임시교사)를 했던 경험에 대해 들려줄 사람이 없어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정보만을 가지고 첫걸음을 시작했다.

우물을 파는 목마른 사람의 심정으로 직접 찾아다니며 실수와 부딪히는 과정을 통해 하나씩 배우면서 길을 찾아갔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서류 처리를 하는 직원의 실수와 교육구에서의 연락 없음에 속절없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음먹기부터 Sub로 채용되기까지 족히 1년은 걸린 듯하다.


Sub로 채용되어 이제나 저제나 나를 불러주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아침 드디어 연락이 왔다.




California에서 Substitute Teacher로 일할 수 있는  California 임시 교원 자격증을 받는 모든 과정이 끝났다면 Edjoin 사이트에서 캘리포니아 내에 있는 학구의 임시 교사 지원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학구에서는 학년말, 미국 학제로는 6월부터 방학에 들어가므로 4월이나 5월쯤 Sub 모집 공고를 올린다. 

서류가 통과되어 지원한 교육구의 Sub로 고용이 되면 오리엔테이션 날짜와 필요한 서류를 안내해주는 이메일을 받게 된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서류가 통과가 되면 고용된 교육구의 학교에서 Sub로 일할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알려준 대로 지정된 사이트에 등록을 하고 나면 이제 학교에서 Sub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 주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오리엔테이션도 잘 마쳤고 준비해 간 서류도 통과가 되어 이제 불러만 주면 언제든 미국 학교에 Substitute Teacher로 갈 준비가 다 끝났다.

여름 방학이 끝나가면서 아이들은 개학이 다가온다고 투덜대는 동안 나는 조만간 학교로 출근하게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개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가 개학을 하고 사흘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집에 있었다.


오늘도 나는 출근을 못했구나 의기소침해진 채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혹시나 하고 고무장갑을 내동댕이치듯 벗어버리고 전화를 받았다.

녹음된 목소리가 내 성을 부르더니 맞으면 Sub 등록 비밀번호를 누르라고 했다.

오오!  바로 이것이  담당자가 말한 Sub 요청 전화구나.

그런데 내가 정한 Sub 사이트 등록 비밀번호 네 자리가 기억나지 않았다. 

허둥지둥 비밀 번호 적어둔 것을 찾아 번호를 누르고 나니 Sub요청을 들을 거면 1번을 누르라는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1번을 눌렀는데 도통 알아듣기 힘든 기계음이 뭐라고 이야기를 했다.

다시 듣겠다고 #을 눌렀다. 

세 번을 다시 듣고 ‘에라 모르겠다 가자’라면서 1번을 누르니까 이미 그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학교나 교사가 임시교사 요청을 전화로 신청하면 아마도 시스템에서 Sub Pool에 있는 사람 중에 스케줄이 비어있는 대기자들에게 한꺼번에 전화가 가도록 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사람들 중에서 먼저 수락한 사람이 그 일자리를 갖게 되는 모양이었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의 형편없는 영어 듣기 실력이 일자리도 놓치게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다음 날도 오늘 또 출근을 못했다는 생각에 우울한 마음으로 집안을 치우고 있는데 어제 전화받고 저장해둔 번호가 떴다.

생각할 틈도 없이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누른 후 Sub요청 듣겠다 1번, 일하러 가겠다 1번을 누르려는데 10시까지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

지금이 9시 30분인데 10시까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학교를?

망설이다가 다시 듣는 중에 그 일자리는 누군가 먼저 요청을 수락한 사람에게 가 버렸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하던 일을 다 팽개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내가  Sub로 일하게 된 우리 학구의 초, 중, 고 모든 학교 이름과 등하교 시간을 표로 정리하였다.

교육구 웹사이트에 들어가 교육구의 학교 위치가 표시된 지도도 찾아 출력한 뒤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사인펜으로 구분하여 색깔 표시도 해 두었다.

한참 학교들을 검색하고 있는데 Sub 웹사이트에  Sub요청이 떴다. 

정보를 보기도 전에 수락을 누르고 나니 우리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어느 초등학교에서 다음 날 3시간 동안 일하는 Sub 자리였다.

드디어 온통 하얗던 내 Sub 사이트 달력의 내일 날짜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가슴은 두근두근거리고 나도 모르게 실실 웃음이 났다.

Sub 정보를 보고 또 보는 사이 임시교사 요청이 또 떴다. 

수락을 누르고 나니 같은 학교, 같은 시간의 이틀짜리 일자리였다.

사흘 동안 3시간씩 같은 학교에 가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달력의 세 칸이 연달아 초록색으로 바뀐  Sub 달력을 캡처해서 남편에게 카톡으로 보내 자랑을 했다.

그리고 출력했던 학교 지도를 찾아 위치도 찾아보고 Google Map에서 가는 길도 확인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나는 평소보다 2배는 높은 톤으로 엄마가 드디어  내일 Sub로 출근한다면서 아이들에게  자랑을 했다. 

왠지 축하한다는 말과 달리 아이들 눈빛은 걱정스러워 보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일을 하고 싶었던 간절함 만큼 용기 있게 부딪혀 보리라.

영어가 문제가 되면 열심과 눈치로 대신하리라. 


6년 만의 출근이다.

무엇을 입고 가야 좋은 인상을 줄까? 

옷장을 뒤지고 뒤져 내일 입고 갈 옷을 꺼내놓았다.

이십 년 전에 첫 발령을 받아 첫 학교에 첫 출근하던 날이 생각났다.

그 날을 위해 백화점을 돌고 돌아 사 두었던 새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아침의 두근거림도 기억났다.

새 정장은 없었지만 그저 설렘과 기쁨, 기대로 벅찼던 이십 년 전의 내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Tip 

사이트나 전화로 Sub 요청이 왔을 때 그것을 바로 수락하기 위해서는 학구에 소속한 학교들의 이름과 위치를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

기계음을 알아듣기 힘들어 허둥대는 사이 또는 Sub 사이트에 뜬 학교를 검색하는 사이 다른 Sub 대기자가 먼저 수락을 하면 그 자리는 사라져 버린다.

준비된 마음으로 요청을 바로 수락하는 순발력이 있어야 가능한 많은 Sub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는 말처럼 준비된 임시교사가 더 많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다.


Substitute Orientation 날, 연수 담당자는 학교에서 선호하는 Sub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학교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남기면 그 학교에서 그 Sub를 채용하기 꺼린다는 것도 그 날 담당자가 해 준 이야기다. 오리엔테이션 담당자가 해준 조언에 내 경험을 더하여 다시 부르고 싶은 임시 교사가 되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요청받은 시각보다 30분 정도 일찍 출근해서 미리 준비하라. 그래야 낯선 학교 주차장에 여유 있게 주차할 수 있고 교사가 준비한 Sub Plan을 미리 살펴보며 수업을 준비할 수 있다.

2. 교사가 준비한 Sub Plan에 있는 내용에 충실하라. 아이들을 홀리는 마술사가 되지 마라. 어떤  Sub들은 놀이나 체육만 하거나 자유 시간만 주면서 애들을 즐겁게 만드는데 주력한다. 아이들은 그런 Sub를 좋아하지만 교사들은 그런 Sub를 싫어한다.   

3. Sub로 간 교사가 맡은 Duty도 Sub가 할 일이다. 학교마다 다른데 쉬는 시간에 Supervisor 가 있어도 교사들이 쉬는 시간에 돌 가면서 아이들의 안전지도를 하거나 등하교 시간에 교통지도를 한다. Sub로 간 교사가 그런 Duty를 맡은 게 있으면 그것도 Sub의 몫이다.

4. Sub Report(임시교사 보고서)를 미리 준비하라. 하루 일과가 끝나면 준비해 간 Sub Report에 결석한 아이들의 명단과 그 날 수업 중에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하게 메모를 남겨두면 다음날 출근한 담당교사가 Sub와 아이들의 일과를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준비된 Sub로서 담당교사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Sub report 하단에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적어두면 후에 그 교사가 필요한 경우 다시 나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다.

5. 아이들 자리표를 만들어서 아침에 아이들 이름을 적어두라. 어떤 담임은 자리표나 아이들 이름표를 준비해두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리표가 있으면 아이들 이름 때문에 헤매지 않아도 되어 그날 하루가 훨씬 수월하다. 

6.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는 아침에 출근했을 때처럼 교실을 깨끗하게 정리를 한 후에 교실을 떠나라. 사용한 교과서나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에 작성한 임시교사 보고서를 남겨두면 다음 날 출근한 담당교사는 임시교사에게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7. 옆반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얼굴을 익혀라. 옆반 교사가  Sub가 필요할 때 나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다.

8. 수업이 끝났어도 Sub 근무 시간이 남아있으면 사무실에 가서 도울 일이 있는지 물어보라. 간혹 수업이 끝났으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퇴근을 시켜주는 경우도 있지만 Sub 요청 때 제시된 시간을 채우는 것이 기본이다.




Orientation을 마치고 와서 담당자가 알려준 Sub 사이트에 등록 후 담당자의 말을 기억하며 인터넷을 조회하여 빈칸에 아이들 이름을 써넣을 수 있는 자리표와 Sub Report를 미리 만들어 두었었다.

Sub Report 하단에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도 써넣었다.

그 자리표와 임시교사 보고서를 미리 바인더에 넣어두고 Sub로 부름 받는 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가 준비한 것들을 써먹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내일 출근할 때 가져갈 가방에 준비해둔 자리표와 Sub Report가 꽂힌 바인더를 넣었다.

그리고 내일 출근할 때 입으려고 정해둔 옷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활기찬 첫 출근을 위해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초등학교 1학년 입학생처럼, 첫 출근하는 사회 초년생처럼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서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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