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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23. 2019

미국 초등학교 1학년 학급에서 배운 임시교사의 역할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 취업 이야기 10


안녕하세요? 저 영어 진짜 못하는 한국 아줌마예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서 일해요.

어떻게 하냐고요? 유창한 영어는 안 되지만 대책 없는 용기와 아줌마의 뻔뻔함이면 되더라고요.



사흘 동안 하루 3시간씩 수학과 영어가 부진한 학생들을 돕는 보조교사로  Substitute Teacher로의 준비운동을 마쳤다. 

준비 운동 다음 날, 나는 진짜 Sub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배우게 되었다.




임시 담임교사로 처음 근무하는 날.

나는 말로만 듯던 Sub Plan에 빼곡하게 적힌 내가 해야 할 일을 보고 겁이 났다.

학부모들에 둘러싸인 1학년 꼬마들 앞에서 자신감 있는 척 웃었지만 내 심장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드디어 처음으로 Full Time Sub로 일하게 된 날이어서 눈을 뜨자마자부터 마음이 분주했다.

일을 시작해도 완벽한 Career Woman이 되겠다는 각오로 어제 미리 준비해둔 재료들을 이용해 가족들의 아침식사와 도시락까지 준비하였다.

엄마가 일을 시작했지만 가정에도 소홀할 수 없다는 맞벌이 직장여성의 첫날 임무를 잘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운전대를 잡고 가장 먼저 집을 나섰다.

후일담을 나누자면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그 완벽한 뿌듯함은 곧 새로운 일에 적응하느라 피로감이 더해지면서 점점 희미해져 갔고 나는 점차 완벽한 직장맘 대신 생존에 충실한 허술한 직장맘으로 입장을 바꾸는 신세가 되었다.  


나의 첫 Full Time Sub 일은 우리 집에 30분 정도 걸리는 옆 도시에 위치한 초등학교 1학년 임시 담임이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교육받은 대로 30분 일찍 학교에 도착하였다. 

낯선 학교였지만 일찍 도착하여 주차장이 여유가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가 휴대전화를 꺼내 오늘 Sub 할 선생님 이름을 이야기하자 직원은 임시 교직원 카드가 달린 목걸이에 교실 열쇠를 끼워주었다.

그리고 학교 내부 안내도와 수업 시종 시간 안내표와 출석부가 꽂혀 있는 폴더를 건네주었다.

직원이 안내해준 대로 교내 안내도를 보며 교실을 찾아갔다.

목걸이에 달린 열쇠로 교실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의 설렘과 기쁨 그리고 즐거운 긴장감이 나를 휘감았다.

교실 벽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의 작품과 선생님의 취향과 생각이 담긴 그림과 글들이 걸려있었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처럼 1인용 책상이 아닌 좀 긴 테이블에 아이들이 4명에서 5명씩 앉도록 의자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책상에는 학생들 이름표가 붙어있었다.

앗, 그런데 어떤 이름은 낯설거나 미국 이름이 아니어서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 가늠이 안 갔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봤을 때는 20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교사용 책상에 놓인 Sub Plan을 보니 엄청난 것들이 쓰여있는데 뭔지 모르겠는 내용들이어서 난감했다.

게다가 책상 위에는 메모가 쓰인 각종 색깔의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교사용 지도서와 동화책, 학습지가 한가득이었다.




Sub Plan을 읽으면서 초조한 마음으로 책상 위에 한 가득인 책과 학습지들을 들춰보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깜짝 놀라서 얼굴을 들어보니 자그마한 체구의 백인 아줌마가 반갑게 인사하며 들어선다.

알고 보니 오늘 내가 Subbing 하게 된 반의 담임교사였다.

악수를 나눈 후 친절한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Sub Plan을 설명해주면서  책상 위의 학습자료를 하나하나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연수가 있다면서 필요한 것을 챙긴 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교실을 떠났다.

그날 아침 담임교사의 깜짝 방문은 정말 천사가 다녀간 것과 같았다.

담임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Sub Plan에 적힌 적들이 이해가 갔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했다.

출근할 때 사무실 직원이 안내해준 곳으로 걸어가면서 각 교실에서 나오는 교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맡은 학급 번호 앞에 서니 바닥에 앉거나 서서 장난을 치던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나를 쳐다본다. 

그 옆에 아이들 부모들도 나란히 서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떨리는 마음을 감춘 채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양 웃으면서 오늘 Sub라고 간단히 인사를 하였다.

웃는다고 입꼬리에 힘을 주었지만 어쩌면 내가 처음 Sub 하는 날인 것을 눈치챈 학부모들도 있을 것 같아 얼른 아이들을 줄 세운 뒤 교실로 향했다.

내가 교실 문을 열고 문 앞에 서자 아이들은 교실 밖 벽에 나란히 박힌 고리들에 가방을 걸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웃음과 함께 “Hi.”라고 나에게 인사를 하면서 교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교실로 들어간 뒤 교실 문을 닫으며 나도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서른 명 가까운 아이들의 예순 개 가까운 눈이 칠판 앞으로 향하는 나를 졸졸 따라왔다. 



Tip 1


Sub Plan(임시교사 계획안)은 담당교사가 임시교사가 해야 할 수업 내용에 대한 안내와 함께 주의해야 하거나 부탁할 사항을 적어놓은 안내문을 말한다.

Sub Plan의 형태나 양식은 담당 교사 재량이라 제각각이다.

간혹 손글씨 필기체로 써 놓은 경우도 있는데 필기체에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던 경우도 있다. 

임시 교사는 담당 교사가 적어둔 Sub Plan에 충실하게 아이들을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담당 교사는 할 일이 부족하고 시간이 남을까 봐 할 것들을 조금 더 많이 준비해둔다.

가능하면 임시교사 계획안에 나와있는 활동을 빼놓지 말 고수 행하되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 못한 활동이 있다면 Sub Report에 메모를 남기는 것이 좋다.


Tip 2


다른 시스템을 가진 학교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등교 후에 바로 교실에 들어올 수 없다.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등교 후 바로 또는 가방을 교실 옆에 가방 거는 고리에 걸어둔 뒤에 학급별로 모이는 장소에 가서 담임이 데리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이는 장소는 보통  Black Top이라고 불리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학급별 번호가 찍힌 곳이 일반적이다. 아스팔트가 까맣기 때문에 Black Top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학교는 운동장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여있고 잔디밭이 깔린 운동장은 따로 있다.

그리고 운동장에는 작은 나무 조각이 깔린 곳에 설치된 놀이기구와 함께 농구대를 비롯하여 체육활동에 사용되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담임교사는 입실 종이 울리면 Black Top의 자기 반 모이는 곳에 가서 앉거나 서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의 줄을 정리한 뒤 교실로 데리고 들어가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담임교사의  Sub를 하게 되면 미리 반 아이들이 줄 서는 곳의 번호와 위치를 사무실에서 확인한 뒤 입실 종이 울릴 때 지정된 장소에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야 한다.

저학년들의 경우 학부모들도 같이 기다리는 경우도 많고 다가와서 인사를 청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밝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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