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24. 2018

뚜벅이 딸이 부모님과 여행하는 법

일단, 떠나고 봅시다


비행기+배+2층버스+택시+지하철+공항철도까지 모든 교통수단을 경험해본 홍콩 여행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어른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운전면허”다. 운전이야 말로 완벽한 어른의 영역에 들어가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이 “쯩”이 나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 차를 구입, 유지, 보수하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 + 본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존권을 위협하지 않을 기술력 + 운전대를 잡는 순간 발생하는 무수한 돌발 상황을 넘길 위기 대처 능력 + 무엇보다 도로 위의 무개념 무법자들을 견뎌내야 하는 극한의 인내력 등등 가히 초인적인 힘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운전을 할 능력도 실력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땅위에 사는 만 18세가 넘은 사람들은 대. 부. 분. 가지고 있다는 운전면허가 나는 없다.

     

현대인의 필수품쯤으로 여겨지는 운전면허가 없는 이유는 가족의 영향이 어느정도 있다. 부모님 역시 평생을 자차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라 차가 없는 환경이 그다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 자라난 4명의 자식 중 유일하게 내가 면허증이 없는 걸 보면 그냥 극한의 귀차니즘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냥 난 게으른 거다.

     

차가 없어도 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동행인의 숫자 건, 거리 건 상관없이 뽈뽈거리며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다. 삼보이상승차(3걸음 이상이면 차를 타는 보행거부족)를 신념처럼 살고 있는 주변인들에 비해 또래답지 않은 정상체중 및 힙업을 유지하는 비결의 8할은 대중교통 이동 덕분이다.


친구들과의 왁자지껄한 여행을 즐기던 20대, 둘 혹은 혼자의 조용한 여행을 즐기던 30대를 지나오며 늘 가슴이 허전했다. 좋은 곳을 봐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묵직한 마음의 짐이 늘 나를 짓눌렀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 뒷전에 두던 가족이란 존재 때문이다. 특히나 평생을 먹고사는 일에 쫓겨 여행다운 여행 한 번 즐기지 못했던 부모님이 마음에 걸렸다. 운전면허도 없는 주제에 다리도 성치 않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에 가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라는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지길 기다리기엔 부모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자식들이 생각하는 만큼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 뭐가 됐든 떠나 보자!


앞서 말했듯 부모님은 평생을 자차 없이 살아오신 분들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한 여행에 큰 불편을 느끼지는 못하셨다. 어쩌면 자식과 함께 떠나온 여행이라는 즐거움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불편함을 압도했는지도 모르겠다. 운전면허가 없어 떠날 꿈조차 못 꾸고 방구석에서 TV속 여행 프로그램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것보다 분명 나은 선택이다. 혹 나처럼 “뚜벅이라서 부모님과 여행 떠날 엄두를 못 내겠어요 “라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어쩌면 용기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팁이 될 수도 있는 몇 가지를 적어 본다.

  

군산+부안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준 아날로그 버스 시간표


시간을 잘 맞춘다

요즘은 어디든 교통 어플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계획을 짜기 참 편하다. 해당 도시에 특화된 것들도 있고, 구글맵처럼 대중적인 어플들도 있다. 내가 가장 애용하는 구글맵의 경우 출발지와 목적지만 입력하면 역이나 정류장까지 가는 법, 환승하는 노선, 도착시간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도시가 아닌 경우에는 위의 사진처럼 아날로그 시간표를 꼭 사진으로 남겨둔다. 초행길에는 늘 좀 여유를 두고 출발하는 것이 편하다. 여행은 늘 변수와의 싸움이다. 혼자 또는 또래의 젊은이들과 함께 할 때에 비해 노년에 접어든 부모님은 걸음도, 체력도 현격히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 점을 꼭 감안해야 한다.

     

적당히 택시를 이용한다

살인적인 택시비를 자랑하는 영국, 일본에서는 감히 시도를 못한다. 하지만 버스, 지하철 등이 발달하지 않은 저개발국가의 경우 택시, 차량 공유 서비스(우버, 그랩 등)를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에 편리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할 수 있다. 혼자라면 택시비가 부담일 수 있지만 일정 인원 이상일 경우 택시가 저렴한 경우도 있다. 다만, 안전 문제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고 공식 인증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현지 데이 투어를 활용한다

근교 여행을 할 때는 무조건 현지의 데이 투어를 이용한다. 개별 관광객이 이동하기 힘든 거리나 루트를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어서 나 같은 뚜벅이족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자유여행을 하면서도 패키지 투어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다. 다만 한국어 가이드가 없을 경우 부족하나마 통역 역할도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정된 시간을 다용도로 분산한다

차표를 끊거나 길을 물어봐야 할 때, 굳이 부모님까지 함께 우르르 움직일 필요가 없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고 짐을 찾아 나오면 공항 밖으로 나가기 전 우선 부모님을 화장실이 가까운 벤치에 앉게 해드린다. 그리곤 나는 재빨리 도심으로 나가는 교통편의 티켓을 끊고 올 동안 부모님은 화장실도 다녀오시고, 잠시 쉬시라고 한다. 그것이 넉넉하지 않은 부모님의 에너지와 여행의 시간을 동시에 절약하는 방법이다.  

     

기다림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 무언가를 챙긴다

뚜벅이 여행의 최대 난제는 ‘기다림’이다. 아무리 잘 시간을 맞추려 노력한 다해도 늘 기다림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기다림의 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한 아이템 장착이 필요하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아빠님을 위해 간식 주머니를 꼭 챙긴다. 삼시 세 끼만 딱 챙겨 드시면 걱정 없는 엄마에 비해 아빠님은 입이 짧아 식사 때 충분히 드시지 않고, 중간중간 주전부리를 하시는 편이다. 그래서 아빠님의 취향을 저격할 개별 포장된 양갱, 과자, 사탕 등을 챙겨 둬야 기다리는 시간 아빠님의 짜증 지수를 낮출 수 있다. 반면 엄마는 집에서 나와 삼시 세 끼를 챙겨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여행이 마냥 즐겁다. 지나가는 사람 구경, 신기한 간판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시지만 혹시라도 그것 조차 없을 때는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보여 드리면 깔끔하게 해결된다.

     



여행은 100m 달리기가 아니다. 목적지에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하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통통 거리는 작은 보트 안에서 바닷물 따귀를 맞고, 사람도 없는 한적한 시골 터미널에서 쭈쭈바를 나란히 물고 버스를 기다리는 일도 여행의 즐거움이다. 그 순간은 분명 왜 왔나? 싶을 만큼 힘들 수도 있지만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보면 알게 된다. 그 여행의 순간들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그런 똑같은 일상을 조금 더 힘을 내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지루한 일상을 버텨내면 언젠가 또 떠날 자금과 시간이 마련될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과의 여행을 고민하고 있는 이 땅 위의 모든 뚜벅이 자녀들이여!

“뚜벅이라서 안 될 거야 “라는 단념 대신 일단, 떠나고 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슬프게 하는 동물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