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01. 2018

나를 슬프게 하는 동물원

무지했거나 혹은 외면해왔던 불편한 진실



어른이라는 영역에 발을 들인 후 발길을 끊은 곳이 있다. 책이나 티브이 속에서만 보던 동물을 손에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동물원이 바로 그곳이다. 꼬꼬마 시절에는 신기한 동물의 세계였던 그곳이 사실, 어쩌면 동물들의 거대한 콘크리트 감옥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동물원 개장시간이 되면 사육사가 열어주는 좁은 우리의 문을 통해 밖으로 앞 다투어 나오는 동물들을 보니 러시아워의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출근길 도시인들 같았다. 해가 뜨면 출근해, 해가 지면 퇴근하는 인간과 다르지 않은 삶을 동물원의 동물들도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성을 죽이고 자유를 포기하면 따박따박 밥이 나오고, 잠자리가 마련된다. 본성을 죽이고 시키는 일만 잘하면 집과 끼닛 거리를 살 월급이 나오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니 동물들이 애처로웠다.     


거대한 바다를 떠나 조그마한 수조 안에서 뺑뺑 도는 숙련된 돌고래의 묘기가 슬펐다. 사람의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는 원숭이의 재롱이 마냥 즐겁지 않았다. 말도 안 통하는 동물들이 그 기술을 익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참고 견뎌야 했을까? 인간의 욕심에 평생을 무기 징역수처럼 사는 동물들이 짠하고 안타까워 도시의 동물원에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외딴 작은 섬에서 며칠 잠을 청해야 할 때가 있었다. 호텔은커녕 전기도, 수도도 없는 마른풀로 엮은 민가 몇 채만 덩그러니 있는 작은 마을. 뒤로는 빽빽한 숲이 이어져 있었고, 우린 마을의 공터 귀퉁이에 짐을 풀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린 섬의 밤, 지친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은 자그마한 텐트뿐이었다. 근처에 총을 든 현지인 가드가 있긴 했지만 꽥꽥 거리며 괴성을 지르는 동물 소리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첫날밤에는 어떤 동물인지 몰랐는데 다음날 아침, 현지인은 그 소리는 야생 원숭이가 내는 소리라고 말해 주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에 침범한 낯선 인간들의 존재에 무척 화가 난 상태였을 것이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 봐왔던 야생성을 거세당한 동물원의 원숭이들의 그것과 차원이 달랐다. 야생 원숭이라면 가녀린 이 텐트를 찢고 들어와 나를 언제든 공격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소심한 사람은 늘 최악을 생각한다. 섬의 정적을 가르는 원숭이의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 그 소리는 이 공간의 지배자는 자신들이라 당당히 말하고 있었다. 동물원 철창 속 무기력한 원숭이에 익숙해 세상 모든 원숭이를 만만하게 봐왔던 오만한 인간에게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였다. 그렇다. 본래 야생성이 살아 있는 동물은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다.     


내 땅에서 당장 나가    


몇 해 전에는 마다가스카르의 여우원숭이가 사는 숲에 간 적이 있다. 프랑스 거부(巨富)의 개인 사유지인 그곳은 수로로 연결된 물길을 따라 카누를 타고 들어가면 여우원숭이가 사는 숲에 닿는다. 방문한 사람들은 오직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숲에 들어가기 전 이탈이나 돌발행동은 일절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보통 밤에 활동하고 낮이면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원숭이들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발소리도 아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가이드가 암컷 원숭이의 유혹하는 소리를 흉내 내면, 나무에서 내려와 가이드가 주는 바나나 같은 과일을 먹기도 한다. 그것이 유일하게 숲의 평화를 깨는 일이다. 일반적인 동물원과 다른 점은 콘크리트 구조물 하나 없는 환경뿐만 아니다. 동물을 대하는 자세가 제일 차이가 났다. 인간이 동물의 영역에 잠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고 인간이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숲의 법적 주인은 물론 프랑스인일 테지만) 그 땅의 진정한 주인은 동물이고, 인간은 잠시 다녀가는 방문자일 뿐이라는 것! 이 개념이 동물과 인간 모두에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 본래 지구라는 땅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도 인간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과 동물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 아침,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뜨거운 논란을 지핀 모 프로그램의 기사를 보고 동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농부가 된 연예인들의 농장 라이프를 담은 리얼리티 관찰 예능인 <식량일기>. 이 프로그램의 방영 직후 동물권 단체들 사이에서 프로그램 폐지 요청이 뜨겁게 일고 있다고 한다. 동물윤리니 공장식 축산환경, 동물을 오락거리로 착취하네 마네 등등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개념은 모르겠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무지했거나 혹은 외면해왔던 불편한 진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분명 성공했다. 인간과 동물, 그 관계의 재정립을 더 미룰 수 없다는 건 분명하다. 부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길 바란다. 꼭 동물만을 위해서, 꼭 인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지구라는 땅 위에 발 딛고 살아가는 생명체 모두를 위한 고민의 시간이 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소하지만 여행의 질을 높여준 아이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