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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04. 2018

이국 땅에서 만난 한국의 맛(?)

한식 느낌이 왜 거기서 나와...?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서 먹다 보니 이국 땅에서 한국 음식과 묘하게 닮은 현지 음식들을 만나게 되었다. 식탁 위에서 "We are the world(?)"를 확인한 순간들을 소개한다.  



일본 시즈오카 옆 야마나시현의 된장 칼국수, 호우토우(ほうとう)  



시즈오카에 대해 1도 모르고 오직 후지산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곳으로 떠났다. 여행 3일째, 후지산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시즈오카 시내를 벗어나 가와구치코로 향했다. 호수 위로 비치는 후지산의 절경을 보기 위해 택한 곳이다. 늦겨울의 후지산은 여전히 흰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다. 특별히 쫓길 것도 없이 가와구치코 호수를 한 바퀴 돌며 후지산의 자태를 유유자적 감상했다. 해가 후지산 꼭대기쯤 올라왔을 때,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구글맵을 켜고 근처의 음식점들을 찾아보았다. 그중에 내 레이더망에 잡힌 것은 호우토우(ほうとう)! 밀가루로 만든 국수나 수제비를 야채와 함께 넣어 된장으로 끓인 음식으로 후지산이 있는 야마나시현의 향토요리라고 한다.    


초밥, 라멘, 우동 같은 일본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한 요리 말고 새로운 음식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마침 오픈 시간도 코앞이었기 때문에 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때를 잘 못 맞추면 무한 웨이팅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선배 여행자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곧장 호우토우 후도우 본점(ほうとう不動 河口湖北本店)으로 향했다.     


오픈 시간인 오전 11시가 되자 굳게 닫혀있던 나무문이 열리고 손님들을 입장시켰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금까지 일본에서 보기 힘들었던 거대한 홀 분위기의 식당이 나온다. 마치 단체 관광객들이 우르르 몰려와 ‘치고 빠지듯’ 먹고 돌아가는 식당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은 나의 오판이었다. 그 넓은 홀을 메우는 건 개별 관광객들이었다. 그만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손님으로 정신없는 곳이다. 손님들 사이,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주문을 했다.


토우호우 부탁드립니다


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내 앞에는 펄펄 끓는 무쇠냄비가 올라왔다. 좀 과장하면 세숫대야 크기의 냄비 안에는 넓적한 밀가루 면과 채소들이 무심하게 뒤섞여 끓고 있었다. 오전 내내 후지산이 내뿜는 찬바람에 시달렸으니, 뜨거운 국물부터 맛보기로 한다. 후~후~ 불어 한 김 식히고 후루룩 국물을 들이마셨다. 어? 이건? 이 맛은?? 그래 된장 칼국수! 한국 사람이라면 결코 낯설지 않은 맛이다. 젓가락을 휘저어 내용물들을 확인했다. 버섯, 배추, 양파, 단호박 등등 다양한 채소들의 영혼까지 우러난 국물이 진하고 깊을 수밖에 없다. 밀가루 면은 칼국수와 수제비 딱 중간 정도의 중용을 자랑했다. 뜨끈한 국물을 머금은 굵은 면발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며 언 몸을 녹여 주었다. 한국의 된장 칼국수처럼 든든한 한 그릇이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순대, 하기스


몇 해 전 스코틀랜드 여행을 할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에든버러 성과 더불어 낯설지 않은 이름의 음식이었다. 한국 사람들에게 기저귀스러운 그 이름, 하기스(Haggis). 양의 내장을 잘게 다져서 곡물과 섞은 것을 양의 위장에 채워 삶은 음식으로 스코틀랜드의 전통 요리라고 했다.

    

먼저 에든버러를 다녀온 친구를 통해 하기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평소 내장 요리를 즐기지 않는 친구는 말했다. “순대 같은 느낌이야” 에든버러와 순대... 결코 접점이 없는 단어들의 연속이었다. 막연하게 그 맛을 상상했지만 도무지 매치가 안 된다. 그럴 때는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전날 런던에서 메가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에든버러에 도착했다. 런던보다 훨씬 차가운 공기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나를 맞아 주었다. 뚝 떨어진 기온 탓에 도착한 첫날은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하기스와의 만남은 다음날로 미루고 감기약을 먹고 숙소에 뻗었다. 다음날 다행스럽게도 컨디션은 회복되었지만 아침부터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오전 일찍 에든버러 성에 갔다가, 점심으로 하기스를 먹기 위해 한국에서 떠날 때부터 점찍어두었던 식당 <더 로열 마일 터번 The Royal Mile Tavern>으로 향했다.     


초록 초록한 외부와 달리 실내는 펍답게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빈 좌석이 더 많다. 동양인 손님은 나뿐이었다. 쌀쌀한 계절임에도 민소매 차림으로 살벌한 문신과 피어싱으로 한껏 꾸민 고스족 웨이트리스는 메뉴판을 주고 돌아 섰다. 빠르게 메뉴판을 훑고 하기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감자튀김, 콜라를 주문한다. 하기스가 입에 안 맞을 경우를 대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주방은 12시부터 가능하다고 좀 기다리라고 한다. 콜라 먼저 주고 뒤돌아서는 그녀의 발걸음엔 츤데레의 매력이 뚝뚝 떨어졌다. 가본 적은 없지만 중세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구경하다 보니 콜라도 바닥이 났다. 마침 주문한 음식이 차려진다. 나무토막을 뚝 잘라 접시 위에 올려놓은 듯 무심한 세팅. 이게 하기스라고? 순대의 이미지를 생각했던 나는 좀 당황했다.     


조심스럽게 포크를 대고 귀퉁이를 슬쩍 떠먹어 보았다. 첫맛은 감자, 두 번째 맛은 향신료가 곁들여진 내장 맛. 매시드 포테이토 위에 순대 속만 얹어 놓은 맛이다. 위에 넉넉하게 뿌린 소스 역시 내장을 베이스로 한 듯 진한 내장 향이 느껴진다. 여행객들에게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라고 했는데 나에게는 최소한 불호는 아니었다. 그간 한국에서 단련해온 내장력(力)이 힘을 발휘한 듯싶다. 일반적인 당면 순대라기보다는 찹쌀과 채소가 듬뿍 든 아바이 순대 속을 먹는 느낌이라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며칠 째 건조하기 짝이 없는 뻑뻑한 빵, 기름진 피시 앤 칩스 등 그저 그런 영국 음식만 먹어 왔던 내 위장에 하기스가 들어오면서 잊고 있던 한식 유전자가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나에게는 구라파 땅에서 지내야 할 날들이 20여 일이 더 남아 있었다. 핸드폰 메모장에 한국에 돌아가면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탄자니아의 백설기, 우갈리


안타깝게도 식사 당시 사진 찍을 여유가 없어 우갈리 사진 대신 밤을 위로 해준 탄자니아 맥주 사진으로 대체 합니다  


운 좋게 기회가 생겨 지금까지 아프리카 땅을 세 번 밟아 보았다. 아쉽게도 모두 출장이었다. 탄자니아는 세네갈에 이어 내 인생의 두 번째 아프리카였다. 빡빡한 일정이긴 했지만 열흘 동안 탄자니아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에어컨도 고장 난 4륜 구동 자동차에 몸을 싣고 남한의 10배가 넘는 면적을 지닌 탄자니아 땅을 훑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불안정한 치안과 야생 동물의 습격, 부실한 인프라 때문에 이동은 오직 해가 떠있는 시간에만 가능했다. 탄자니아 하면 떠오르는 야생동물 가득한 사파리 따위는 근처에도 못 갔다. 그저 길을 가로막는 깡패 같은 야생 원숭이나 느긋하게 도로에 똥을 뿌리며 이동하는 물소 떼가 전부였다.    

  

흙먼지 날리는 도로엔 식당은커녕 변변한 휴게소를 찾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다. 촉박한 일정 때문에 해가 뜨면 숙소를 나와, 근처 작은 구멍가게에서 산 퍽퍽한 빵과 비스킷, 물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끼니때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거의 현지인 트럭기사들이 오가는 식당이었다. 관광지를 도는 여유로운 일정이 아니니, 허기만 잠재울 정도의 식사만 가능했다. 여행이라면 과감하게 현지 음식을 도전하겠지만, 출장이었기 때문에 여유도 없었고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보통 이방인이 두려움 없이 먹을 수 있는 로스트 치킨이나 감자튀김이 주요 메뉴를 먹었다.     


일정의 중반이 넘어갈 때쯤, 현지 가이드는 도착한 식당에는 치킨도 감자튀김도 떨어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그나마 한국인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우갈리뿐이라고 했다. 우갈리? 탄자니아 도착 전 사전 조사 때 들어 본 이름이다. 우갈리(Ugali)는 옥수수가루를 쪄서 만든 음식으로 탄자니아인 사람들의 주식이다. 탄자니아뿐만 아니라 케냐, 우간다, 말라위 등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먹는 음식이다.   

  

현지인 가이드의 조언을 듣고 우갈리 냐마(Ugali Nyama - 소고기 스튜를 곁들인 우갈리)를 주문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앞에는 소고기 스튜와 함께 뽀얀 백설기가 놓여 있다. 가이드는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먹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손으로 조물조물 우갈리를 뭉쳐서 스튜 국물에 콕 찍어 입으로 넣는다.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기로 한다. 조물조물 손으로 뭉쳐 찰기와 천연 간(?)을 더했다. 그리곤 스튜를 곁들여 맛을 보았다. 우갈리 자체는 딱 단맛이 빠진 백설기의 맛이다. 곁들인 스튜 속 소고기는 고무처럼 질겼다. 소가 재산이지 좋은 육질을 얻기 위해 공들여 키우지 않는 나라 출신다웠다. 한국에 돌아가면 갈비찜과 백설기를 함께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어떻게든 한식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임을 입으로 확인했다.    

 

+ 안타깝게도 몇 년이 지나도록 갈비찜과 백설기가 함께 등장하는 식단을 마주한 적이 없어 시도 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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