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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10. 2018

공항 밥은 왜 맛이 없을까?

'맛'을 잃은 공항 음식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고찰


 


비행기를 타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서 공항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또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들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청결한 시설, 세련된 인테리어, 호텔급의 서비스, 이용객들을 향한 다양한 편의 시설 등등 그저 눈부시게 발전하는 공항을 볼 때마다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공항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은 단 하나다.

     

공항 밥은 왜 이리 맛이 없을까?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이 생기면 그런 생각을 한다. “공장식 산란계 농장에 사는 닭의 기분이 이렇겠지? “ 좁은 우리에 갇혀 알 낳는 닭처럼, 비행시간 내내 좁은 의자에 묶여 영화를 보고, 기내식을 먹고, 잠들기를 반복한다. 거의 ‘잔인한 사육‘ 수준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기내식은 보통 간단한 과일식으로 별도 주문하는 편이다. 그래서 땅에 발 닿는 때 편히 밥을 먹고 싶어서 공항 안을 돌아다녀 본다. 그러다 탑승시간을 감안한 최후의 시간이 돼서야 메뉴를 선택하곤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대를 안고 식사를 한 후, ’역시나‘란 씁쓸한 결론을 얻고 나온다. 여행의 시작점이자 마침표가 되는 공항, 그곳의 음식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입맛을 잃은 여행자의 혀

보통 공항 오는 날은 거의 둘 중 하나다. 떠나거나 도착하거나. ‘설렘’으로 포장된 평소와는 다른 기운들이 여행자를 감싸기 마련이다. 떠나는 날의 설렘 때문에 전날부터 잠을 못 자기도 하고, 끝까지 자신의 발목을 붙드는 각종 일들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게 당연하다. 빠진 짐은 없는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지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홍콩에서 코타키나발루로 넘어가던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공항철도 첫차를 타야 예정된 시간에 공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전날 잠을 설쳐 가며 짐을 쌌다.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호텔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철도가 있는 센트럴 역까지 가야 했다.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면 옥토퍼스 카드를 반납하고 환급금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비행기표 발권을 한 후, 짐을 붙여야 했다. 전날 잠자리에 들며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자칫 변수가 생길 경우 차례로 도미노처럼 무너져 최악의 경우 비행기를 못 타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긴장한 이유는 내가 탈 비행기는 까탈스럽기로 악명 높은 저가항공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고군분투한 덕에 무사히 출국 수속을 마치고 면세 구역에 들어섰다. 그때가 8시경이었고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제야 허기가 몰려들어 뭘 먹어야 하나 공항 안을 둘러봤는데 마음 가는 곳이 없었다. 홍콩 공항 오면 애정 하며 들렀던 완탕면의 명가(?), 호흥키(何洪記)는 다른 터미널에 위치해 있었다. 시간에 쫓겨 푸드코트의 이름 모를 가게에서 완탕면과 벚꽃새우 덮밥(?)을 주문했다. 별기 대도 안 했지만 지금까지 홍콩에서 먹은 음식 중 최악을 만나게 되었다. 완탕면은 힘없이 축 늘어진 면발에, 국물은 미지근했다. 새우 완탕의 속은 해동이 덜 됐는지 내 마음처럼 차가웠다. 벚꽃 새우 덮밥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덮밥은 새우에 분홍 색소를 입혔는지 밥 위로 색소들이 흔적을 남겼고, 소스는 니맛도 내 맛도 아니었다. 채 반도 먹지 못하고 트레이를 반납하고 말았다. 허기진 배는 스벅에서 라테와 쿠키로 달랬다.

     

평소와 다른 상황은 평소와 다른 컨디션을 만들게 마련이다. 입안이 까칠하고, 속도 더부룩한 게 뭘 먹어도 만족스럽지 못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항에 갈 때, 정상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쩌면 난 늘 공항에서의 식사가 만족스럽지 못했었나 보다.  

     


충격 때문이었을까? 사진 찍을 의욕조차 잃었던 것일까? 당시 돈가스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공항의 비싼 임차료

도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나리타공항은 예상보다 한산했다. 일본은 크리스마스가 법정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항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마지막 생맥주를 먹기 위해 우리 일행은 돈가스 전문점을 택했다. 시내에도 여러 분점이 있는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우린 그때까지 몰랐다. 일본의 돈가스도 이렇게 맛없을 수 있구나란 그 사실을 말이다. 된장국은 소금을 들이부은 듯 짰고, 돈가스는 너무 튀겨 겉은 벽돌처럼 딱딱해서 씹기 불편할 정도였다. 프랜차이즈 식당에 간다는 건 일정 수준의 맛과 가격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 중 제일 자주 일본을 오갔던 A 역시 “이 브랜드가 이런 맛 일리 없는데? “라는 듯 당황한 동공을 감추지 못하고 한입 베어 문 돈가스를 그대로 접시 위에 내려놓았다. 그나마 제 컨디션을 유지한 유일한 메뉴였던 생맥주로 얼른 입을 헹궈 냈다.

     

그렇게 프랜차이즈의 배신 아닌 배신을 당한 우리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왜 음식이 그 지경이었는지에 대해 토론을 펼쳤다. “공항이 임차료가 비싸니까 좋은 재료를 수급하지 못한 것이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저급 재료를 이용한 것이다 “ ”뜨내기손님들인데 고객관리가 무슨 소용? 그것도 다 돈이지 “ 긴 격론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공항의 비싼 임차료가 이 사태를 불러왔다 “ 비전문가들의 망상에 가까운 추측일 뿐이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느껴졌다. 프랜차이즈도 이럴 텐데, 소규모 일반 개인 사업자들은 또 어떨까? 좋은 원재료에 투입되어야 할 자금들이, 비싼 임차료를 감당하는데 쓰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맛없는 집만 선택하는 불운

바르셀로나를 떠난 비행기는 잠시 나를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려 주었다. 이곳에서 나는 다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 도착 전 마지막 EU 국가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세금 환급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공항 밖을 나갔다 다시 세관 신고 후 공항에 들어오는 복잡한 루트였다. 워낙 한국 사람이 많아서인지 세관 공무원은 지친 나를 위해 헤어질 때 스윗하게 한국말 인사를 건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꽁돈 아닌 꽁돈이 생겨서일까? 이 돈으로 유럽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기로 한다.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수프와 샐러드, 샌드위치를 골라 공항 구석에 자리 잡았다. 파리를 뜨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유럽 여행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본식사 전, 수프를 한 입 맛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다음은 샐러드, 신선하기만 하다면야 나쁠 게 없는 아이템이다. 열일 하는 냉장 시스템 덕분에 샐러드 역시 무사통과. 마지막으로 이번 식사의 메인인 샌드위치를 기대에 차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잉? 이보시오 프랑스 양반들, 당신네 자존심은 빵 아니었소?
왜 샌드위치에서 사포 맛이 난단 말이오?  

     

예쁘게 포장된 샌드위치는 수분 하나 없이 거칠고, 메말랐으며 그 안의 채소는 빈약했고, 치즈는 소박했다. 가난한 여행자였기에 유럽 여행을 하며 무수히 많은 샌드위치를 먹어 왔지만 그중 단연 최하위였다. 파리 공항이 나에게 똥을 줬구나 싶었다. 몇 입 먹지도 않은 샌드위치를 쓰레기통에 쳐 넣으며 생각했다. “역시 공항에서 뭔가를 맛있게 먹겠다는 생각 자체가 사치다. 그저 허기만 면할 정도의 돈만 투자해 음식을 고르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그런 면에서 과일을 제외하고 맛이 예상 가능한 가공 식품으로 가득한 피지 공항에서의 식사는 비교적 현명했다. 시리얼, 우유, 오렌지, 머핀, 커피, 딸기잼, 버터, 구운 식빵으로 이뤄진 구성이었다. 첫 비행기라 공항 안에 거의 문 연 식당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배를 곯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내 기억 속에 공항에서 밥을 맛있게 먹는 기억은 단 두 번뿐이다. 한 곳은 앞서 말했듯 홍콩 공항 호흥키(何洪記)에서 먹은 완탕면. 또 한 번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다시 남태평양으로 가는 길 중간, 한국의 인천 공항에서 먹은 음식(인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튀김만두)였다. 전자는 인생 최초의 완탕면이었기에 그 후 먹은 완탕면들의 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시간과 거리가 허락하는 한 홍콩 공항에선 잊지 않고 호흥키를 가는 편이다. 후자는 오랜 타국 생활을 하다 오랜만에 만난 본토의 맛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수히 많이 먹었던 공항 밥 중 단 두 번의 식사만이 만족감을 주었다는 건 그만큼 성공 타율이 낮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아예 공항 음식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 비싼 돈을 주고 실망감을 사느니, 딱 허기만 면할 정도의 음식만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서운 기세로 발전하고 있는 공항의 성장세를 보면 언젠가 공항에서도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게 될 날도 멀지 않았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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