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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17. 2018

여행은 만병통치약일까?

 여행하고 나면 "답 없던 인생"에 뚝딱하고 답이 떨어지길 바라는 당신에게




     

TV를 봐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도,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도, SNS 피드를 훑어봐도 온통 ‘여행 이야기’가 넘쳐 난다. 공항, 터미널, 기차역 등등 가는 곳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 떠나고, 다시 돌아온다. 대한민국 역사가 시작된 이래 여행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이제 여행은 일상이 되었다. 여행 후기 속 화자들은 대부분 여행이 준 깨달음 덕분에 새사람이 된 것처럼 ‘간증’ 하기 바쁘다. 마치 ‘여행’이라는 만병통치약을 먹고 완쾌한 불치병 환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여행 덕분에 인생의 소화불량이 말끔히 나았어요 

여행 덕분에 삶의 만성 편두통이 사라졌어요

여행 덕분에 인간관계 알레르기가 완쾌되었어요

여행 덕분에 직장 스트레스가 깨끗이 지워졌어요

     

당신 역시 지난 글들에서 호들갑 떨며 그런 설렘과 환상만을 부각하지 않았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결코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


20대 시절, 남들 다하는데 나만 혼자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다. 이런 한국인들의 특성(!)에 충실해, 나 역시 핫하다는 여행지로 떠났다. 충실한 여행자답게 여행지에 가서 인증샷을 찍고 에너지를 충전해 돌아오면 한동안은 여행병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충전하기 무섭게 바닥을 치는 한겨울 아이폰 배터리처럼 점점 삶의 에너지 닳는 속도가 빨라졌다. 여행을 몰랐던 시절에 비하면 분명 바닥나는 속도가 현격히 빠르다. 다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횟수가 잦아지곤 했다. 여행 주기가 짧아지다 못해, 귀국 편 비행기를 타는 공항에서 다음 여행을 위한 계획하는 ‘발 빠른 진행‘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상태를 <여행 중독>이라 부른다.

     

여행에서 돌아온다고 해서 나를 둘러싼 환경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진 않는다. 아슬아슬 바닥을 보이는 통장에 숫자들의 맨 뒷자리에 0이 3개쯤 추가되는 마법은 결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저 먼지 쌓인 방과 변함없이 미친개처럼 짖는 상사, 묵직한 숫자들이 박힌 카드값 명세서, 여행에서 허리띠 풀고 먹고 마시느라 늘어난 뱃살뿐이다.  

     

내가 여행을 하기 전과 후 바뀐 건 단 하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뿐이다. 전전긍긍, 일희일비가 일상이었던 옹졸한 내 시선이 한 뼘쯤 넓어진 것이다. 변수의 연속인 여행을 할 때는 여행자는 오직 유연한 대처만이 살길이다. 가려고 했던 식당이 예고도 없이 문을 닫을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파업으로 철도가 멈출 수도 있다. 최근 발생한 홋카이도 지진 같은 천재지변은 언제 여행자를 덮칠지 모른다. 물론 당황이야 하겠지만, 이런 돌발 변수는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Go or Stop! 단 두 개뿐이다. 가느냐 멈추느냐 두 가지 선택권을 쥔 여행자가 자신이 믿고 선택한 대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여행도 끝이 나게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상처가 나고 아물고, 새살이 돋고, 흉터는 남는다. 마치 사람의 인생을 짧게 압축한 ‘여행’을 통해 나는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갈 방향과 방법을 가늠하게 됐다.     

     

여행을 다녀온다고 답 없던 인생에 뚝딱 답이 생기진 않는다. 여행은 결코 그 자체로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행은 거들뿐! 나에게 여행은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 진짜 만병통치약은 내 마음이다. 내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곳도 지옥이 되기도, 천국이 되기도 한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행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떠나는 것일 뿐이다. 내 안에서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감지하지 못한다면 여행은 그저 길에 돈을 뿌리고 오는 일이다. SNS 업로드용 인생샷을 찍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 시간보다 더 많이 할애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여행은 물리적으로 낯선 환경에 나를 내던져 놓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 나를 기쁘게 하는 건 뭔지, 어떤 자극에 내가 어떤 반응하는지 등등 내가 몰랐던 나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나를 조금 더 알아 가는 여행이라는 이름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당신은 보다 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자신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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