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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12. 2017

혼자 여행, 할까? 말까? (1) 왜 혼자 여행할까?

 

'혼행족’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여기저기 혼자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의 후기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혼자 여행, 꼭 해야 하는 걸까?


혼자 여행을 왜 할까?

학기초면 거의 한 달은 입을 닫고 사는 사람. 주목받는 게 싫어서 식당에서 “이모”라고 부르며 주문하는 것을 못했던 사람. 낯선 사람이 말 거는 게 싫어서 가게에 가면 직진해서 물건만 딱 골라서 돈 내고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사람. 환경 바뀌는 게 싫어서 여행은 꿈도 안 꾸던 사람. 그게 바로 나다. 20대 중반까지 그렇게 예민하고 소극적인 삶을 살았다. 당연히 사회생활을 할수록 그런 성격이 나를 더 힘들고 괴롭게 만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내가 사회 부적응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휩싸여 괴로움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나는 폭발했고, 도망치듯 여행을 떠났다. 그것도 혼자서.


 

그곳에서 나는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익숙한 환경, 익숙한 사람들에서 떠나와 보니 난 오롯이 내가 보였다. 소심함의 극치인 나.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나에게 먹는 문제, 자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음식 주문을 할 수도, 숙소를 구하는 일도 할 수 없다. 식당에서 밥 주문하는 게 두려워 김밥 하나를 포장해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김밥을 씹고 있으니 뭐 하는 건가 싶다. 내가 돈이 없나, 입이 없나… 혼자 밥 먹는 게 뭐가 창피하다고 식당에 앉아 밥을 못 먹지? 먹던 김밥을 쓰레기통에 내던지고 바로 식당으로 갔다. 그리고 김치찌개 백반을 주문해 먹었다. 배고픔에 정신없이 먹고 나와 보니 내가 두려워서 피했던 것들이 너무도 별게 아니었다. 이게 뭐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지? 후회가 밀려왔다.  


혼자 여행이 익숙해지면서 혼밥의 끝판왕이라는 혼자 패밀리 레스토랑 가기, 혼자 뷔페 가기, 혼자 고깃집 가기는 물론 미슐렝 쓰리 스타까지는 아니어도 고급 코스 요리가 나오는 레스토랑에 앉아 와인을 곁들여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초보 혼밥족이 가기 좋은 식당
국내 : 분식집, 기사식당, 중식당 등   
해외 : 패스트푸드점, 푸드코트, 일식집 등  

그곳에서 나는 여행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좋다. 함께 하는 여행도 좋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지만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함께 그 여행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공통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배려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여행을 가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를 종종 본다. 유럽 맥도널드에서 유료였던 케첩을 사느냐 마느냐로도 의견이 갈려 큰소리가 났다는 지인의 이야기는 그냥 나온 얘기가 아니다. 혼자 여행은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내 맘대로 해도 된다. 별 관심도 없는 명품 매장을 안 가도 되고, 그 대신 그 시간에 벼룩시장에 가서 손 때 묻은 물건들을 구경해도 된다. 사진 찍고 싶지도 않은데 애써 썩소를 짓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지 않은 회를 먹지 않아도 된다. 대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봐도 되고, 좋아하는 커피를 3잔 연속 마셔도 된다.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내가 혼자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곳에서 나는 예상치도 못한 인연들을 만나게 되었다.

혼자 여행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제주도의 유명한 전복요리 전문점. 워낙 사람이 많아 줄을 서는 건 기본. 그래서 난 브레이크 타임이 끝난 직 후를 노렸다. 오픈 20분 전쯤에 가서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넣고 기다리다 보니 저녁 장사를 오픈하자마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가족 손님, 친구 손님, 연인 손님 등 북적이는 가게 안에 혼자 4인 테이블을 잡고 앉으니 좀 뒤통수가 뜨거워지려는 찰나! 직원이 혼자 오신 분이 있는데 합석을 해도 괜찮겠냐고 물으신다. 혼자 여행 온 고독한 미남자쯤을 예상했는데 현실은 20, 30대의 여성분 각각 1명. 같은 처지의 여자 셋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마음의 문을 열고 ‘여행’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수다를 떨었다. 가보니 좋았던 곳, 혼자 가도 좋은 식당 등등 과부 마음은 홀아비가 안다고 혼자 여행 정보 꿀팁을 공유했다. 전복돌솥밥이 바닥이 보이고 줄 선 손님들을 위해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또 각자의 길을 갔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겠지라는 말로 인사를 하고 서로의 여행을 응원했다.


통영의 버스 정류장에서 귤을 쥐어주던 할아버지, 혼자 야구 보러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엄지손가락 두 개 치켜세워주던 부산 게스트하우스 주인 언니, 런던 작은 동네 찻집의 호호 아줌마를 닮은 수다스러운 주인아줌마, 감기 몸살에 골골거리는 나를 위해 따끈한 차를 직접 타서 한 잔 내어주던 에든버러의 유쾌한 호스텔 직원, 프랑스 니스에서 길을 잃은 나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던 젊은 연인, 식사를 다 마치고 서야 지갑을 놓고 왔다는 걸 알았을 때 웃으며 지갑을 가져오길 기다려줬던 교토 돈카츠 집 사장님 등등 크고 작은 인연들이 나의 혼자 여행을 빛나게 해주는 보석들이다.


+ <비포 선라이즈> 같은 이야기는 영화다. 여행지에서의 영화 같은 로맨스는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될놈될. 안될 놈 안될. 난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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