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가 여행 짐을 싸는 시점은 바로 떠나기 바로 전날 밤이다
수많은 출장과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수많은 스킬이 있다. 그중에서도 주변인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드는 하나는 바로 <짐을 싸는 것>이다.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짐을 싸는 몇 가지 방법을 공유한다.
어떻게 보면 감성의 끝인 것 같은 여행도 사실 일정한 법칙과 고정적인 패턴이 있다. 그래서 한 번 마음먹고 시간을 투자해 여행 짐 리스트를 작성해 두면 생각 다음의 모든 여행이 편해진다. 핸드폰 메모장에 저장해 둔 나의 여행 짐 싸기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2박 정도의 단기 여행(세면도구/ 잠옷/ 양말 & 속옷/ 선글라스/ 안경/ 휴대폰 배터리 & 충전기 & / 샘플 위주 화장품 일체)
5박 이상의 중기 여행(단기여행 짐은 기본 + 비상약/ 시트팩/ 플립플랍 슬리퍼/ 공병에 담은 화장품/ 손톱깎이/ 여벌의 옷/ 지퍼팩 여분/ )
10박 이상의 장기 여행(중기 여행 짐은 기본 + 반으로 자른 세탁비누/ 반짇고리/ 세탁소 옷걸이/ 영양제)
해외여행 : 여권 복사본 &증명사진 여분, USB 멀티 어댑터
더운 시기 or 더운 나라 : 벌레 물린데 바르는 약/ 햇빛 가리기용 얇은 카디건
추운 시기 or 추운 나라 : 경량 패딩/ 1회용 포장된 생강차, 유자차
호텔 여행 : 거품 입욕제
호스텔 여행 : 스포츠 타월, 와이어 락, 자물쇠
여행자들 사이에서 도는 말 중 '여행에서 짐의 무게는 전생의 업의 무게다'라는 말이 있다. 혹시나 하고 넣은 짐의 80%는 사실 여행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쓰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부피는 작으면서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들 위주로 짐을 꾸린다. 자신의 피부 타입에 맞는 일회용 포장된 세면용품, 화장품 샘플 위주로 꾸린다.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메이크업 베이스, 입술도 물들이고 뺨도 혈색을 불어넣는 립&치크 등 멀티 아이템으로 화장품의 개수도, 여행지에서 화장하는 시간도 줄인다. 옷 역시 어느 아이템과도 자유롭게 매칭 되는 무난한 것들로 챙기는 것이 짐을 줄이는 방법이다. 사진 찍힐 때 안 보이는 양말이나 속옷 같은 경우 수명을 다한 녀석들을 챙겨가 입고 버릴 수도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뜨거운 한여름이나 열대 지방으로 여행을 가지 않는 이상 A4용지 사이즈의 전기 찜질팩을 가지고 다닌다. 무게감은 약간 있지만, 한국 같은 완벽한 난방시설이 없는 타국에서 뜨끈한 구들장 파워를 충전할 수 있다. 한국에서 커피 하면 늘 설탕도 크림도 넣지 않는 아메리카노 위주로 마시지만, 불현듯 한국이 그리워질 때는 믹스 커피 한 봉으로 얕은 향수병을 치료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디서나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한국식 믹스 커피는 어디서도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보자기 정도 크기의 얇은 면 스카프 하나만 있으면 추위도, 더위도, 창피함도 다 막을 수 있다. 햇빛이 뜨거울 때는 팔을 가리고, 에어컨 바람이 차가울 때는 담요로 몸을 덮고, 밤에는 바람을 막는 목도리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짧은 바지로 입장을 할 수 없는 사원이나 궁 같은 곳에서는 허리에 두르면 치마로도 변신한다.
내가 여행 짐을 싸는 시점은 늘 떠나기 전날 밤이다. 비행기, 숙소 예약이나 루트 짜는 것은 미리미리 하면서 늘 짐 싸는 것만큼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미룬다. 내가 이 부분에서는 게으르다는 걸 알 고 있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캐리어를 방구석에 비치해 두고 생각 나는 아이템들을 툭툭 던져 놓는다. 사야 할 것이 있으면 미리미리 사놓아야 한다. 그리고 여행 전날이 되면 차곡차곡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캐리어를 닫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비로소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