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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30. 2019

나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게 뭔지 찾아봐

늘 남들과 비교하던 나를 바꾼  한 통의 전화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손재주가 좋은 친구가 있었다. 검정 뿔테 안경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H는 흔한 컴퓨터 사인펜과 얇은 하이테크 펜만 있으면 뚝딱뚝딱 근사한 캐릭터 그림을 완성해냈다.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해서 연애편지가 될 편지지며 심심한 책 표지에 그림을 그려줄 것을 의뢰받기도 했다. 그녀만의 캐릭터들이 들어간 각종 책과 문구 용품은 귀여운 것이라면 껌뻑 죽는 여고생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H표 캐릭터로 커스텀한 책 표지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왜 H처럼 그림을 못 그리지?


나의 베프 S는 사진을 잘 찍는다. 신문방송학과였던 그녀는 대학시절 한 학기 정도 [사진학 개론] 수업을 들은 것 외에 별도로 전문적인 사진 공부를 한 적은 없다. 다만, 당시 디지털카메라 시대가 도래하면서 동년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렴한 디지털카메라로 시작한 사진 찍기 취미가 아마추어 수준은 훌쩍 뛰어넘게 되었다. 그 사진을 썩히기 아까워 블로그까지 운영했고, 많은 팬들은 S의 사진을 보기 위해 꼬박꼬박 S의 블로그에 발도장을 찍었다. 나 역시 S가 찍은 사진을 보기 위해 그녀의 블로그에 갈 때마다 감탄하면서도 생각의 끝은 꼭 나를 향했다. 나는 왜 S처럼 멋진 사진을 못 찍지?


늘 그런 식이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며 남들은 뭐든 잘하고, 쉽게 이루는데 그에 비해 나는 잘하는 거 하나 없는 무능한 존재로 여겼다. 학창 시절 성적은 그냥저냥, 달리기는 늘 하위권이었고, 사진 실력도 별로고, 그림실력은 더더욱 형편없었다. 몸 쓰는 것도 머리 쓰는 것, 손재주도 어느 하나 가지지 못한 인간이라고만 생각했다. 어차피 내 것이 되지 못할 것들을 가지지 못했다고 안달복달했다. 내 주머니 안의 다이아몬드를 보지 못하고, 남들이 가진 큐빅이 더 반짝이는 것만 같아 늘 바깥만 바라봤다. 내가 가진 것은 하찮고, 남들의 재능은 늘 대단하게만 느꼈던 나를 바꾼 건 전화 한 통이었다.


***씨죠? M사 라디오국 ***작가인데요.
혹시 라디오 작가 해볼 생각 없나요?


그 당시, 라디오 덕후였던 나는 내 사연이 DJ의 입을 통해 세상에 퍼져 갈 때의 그 쾌감 때문에 일기를 쓰듯 매일 라디오 게시판에 사연을 썼다. 그 날들이 쌓여 ‘라디오 작가가 되보겠느냐’는 전화까지 받게 된 것이다. 글짓기로 상을 받은 건 딱 한 번.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후기를 써서 우수상을 받은 것 외에는 없다. 글쓰기와는 영 거리가 먼 줄 알았던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라디오 작가’가 되진 못했다. 난 당시 겨우 대학교 2학년 꼬꼬마였고, 졸업이 한참 남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전화를 계기로 내가 글을 쓰는 것이 (다른 일에 비해) 다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전화 한 통 덕분에 처음으로 세상으로부터 나도 몰랐던 나의 능력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 날 이후, 내 삶의 방향을 확실히 정했다. 남들이 그런 것처럼 막연히 ‘회사원’이 될 거라 생각했던 장래희망을 좀 더 구체화하게 된 것이다. 라디오국 근처는 못 갔지만 그 언저리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브런치에 공개적인 일기를 쓰듯 꾸준히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근래에 진로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들과 얘기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팍팍한 현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그들은 나에게 물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들보다 밥 좀 더 먹고, 몇 년 더 살아 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은 뻔했다.


나를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게 뭔지 찾아봐


그러면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는 게 당연하다.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은 없다. 시도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결과가 나올까?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100세 시대라는 말이 흔하게 퍼져 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10대, 20대들은 그 나이에 벌써 뭔가 대단한 결론을 지으려고 한다. '뭘 해야 하지? 실패하면 어떡하지? 시간 낭비하는 거 아니야?'라는 단단한 생각에 갇혀 시도조차 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 머릿속으로 고민만 한다. 기껏해야 인터넷에서 찾은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며 “금수저네, 운이 좋았네, 백이 있으니까 그렇지 “라며 남들의 성공을 쉽게 평가절하하는 방구석 비평가가 될 뿐이다.    


삶은 꾸준히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죽을 때까지도 완벽히 알 수 없는 나를 탐구하는 긴 여정이다. 그래서 시선과 관심을 밖으로 돌려 남과 비교할 게 아니라, 나를 향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나의 성향과 강점을 파악하고 자신만의 무기를 만드는 시간이 청춘들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 밖으로 나와 경험하고, 부딪히고, 성취하고, 깨닫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노년의 방황'은 주책이라 비난 받지만 '청춘의 방황'은 훌륭한 인생의 밑거름이 된다.


그림을 그려봤더니 난 재능이 없었고, 사진을 찍어 봤더니 내세울 만한 결과가 없었다. 난 그림이나 사진 대신 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비교적 쉬웠다. 이렇게 세상에 완벽한 실패는 없다. 실패라고 해도 늘 그 끝에는 깨달음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실패는 아프지만 실패가 안겨준 깨달음들은 그 누구도 훔쳐 갈 수 없는 자신만의 인생 자산이 된다. 당신이 청춘이라면 성공에 자만할 필요도 없고, 실패에 좌절할 필요도 없다. 아직 당신이 갈 길은 멀고, 기회는 많다. 시작 없이 얻는 것은 없다. 첫 발을 떼는 것은 분명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실패가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오래 시간을 허비하기엔 청춘은 찰나에 불과하다. 당신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재능 있고, 또 가능성이 넘치는 사람이란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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