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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01. 2020

책이 눈에 안 들어올 때면 난 ‘힙합’을 들어

중년을 코앞에 두고 힙합 늦덕이 된 이유

머리 아픈 일이 있을 때, 유튜브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 공연 영상을 찾아본다. 드뷔시의 <달빛>이나 그의 전매특허, 쇼팽의 곡들이 주를 이룬다. 조성진의 연주야 설명이 필요 없고, 사실 난 그의 연주보다 더 집중해서 보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피아노와 한 몸이 되어 연주하는 조성진의 표정. 연주에 몰입한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바람 한 점 없는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에 올라탄 기분이다. 배 위에서 유유자적 풍경을 즐기다가 낮잠에 빠져드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평온해진다. 그냥 귀로 음원을 듣는 게 아니라 굳이 연주 영상을 찾아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최근 한동안 조성진의 연주 영상을 눈이 아프도록 봤다. 그만큼 내 머릿속에는 헝클어진 실뭉치가 가득했다. 조성진의 연주 영상을 보며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다 보니 어느새 문제는 스스륵 해결됐다.


잠자기 전에는 주로 가사가 예쁜 달콤한 음악을 듣는다. 그런 음악을 듣다 잠들면 왜인지 악몽도 꾸지 않고, 청량하고 달달한 맛의 꿈을 꾸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대가 생긴다. 최근에는 반짝이는 감수성의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에 폭 빠져 있다. 오프온오프(offonoff), 우효, 알레프, 크래커, 레인보우 노트, nokdu, TETE 등등 이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딱 이런 망상이 차오른다. 구름 한 점 없이 쨍한 하늘이 가득한 날, 물기 탁탁 털어 바싹 말린 바스락 거리는 이불속에서 뒹굴 거리며 향긋한 섬유 유연제 냄새를 맡는 기분이 든다. 그간 마음속에 켜켜이 쌓였던 찌든 때가 말끔히 지워지는 상태가 된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이 노래의 분위기처럼 상큼 발랄한 하루가 시작될 것 같다.


나에겐 상황마다 장소마다 듣고 싶은 음악이 따로 있다. 책 속의 활자들이 무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몇 번을 읽어도 눈앞에서만 뱅뱅 맴돌 뿐 머리나 가슴에 다가와 박히지 않을 때 말이다. 그럴 때면 과감히 책을 덮는다. 그리곤 힙합 곡의 재생 버튼을 누른다. 래퍼가 비트 위에 흩뿌려 놓은 가사를 한 자 한 자 곱씹는다. 그러면 그 안에 담긴 래퍼의 아픈 상처, 솔직한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는 슬플 때
힙합 춤을 춘다지만  
 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힙합 음악을 들어



최근 몇 년 사이, 내 음악 플레이 리스트의 가장 큰 변화는 ‘힙합‘ 장르의 지분이 커졌다는 사실이다. 그 변화는 몇 해 전, 우연히 힙합 관련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시작됐다. 그전까지 나는 누가 봐도 힙. 알. 못. 힙합을 전혀 알지 못하는 흔한 기성세대 중 하나였다. 평생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 수도 없었던 힙합의 세계에 발을 들인 후 힙합의 매력에 흠뻑 빠져 버렸다.


그 전까지만 해도 내게 힙합은 딱 그런 이미지였다. 엉덩이의 절반까지 내려온 통 큰 바지, 껄렁한 걸음걸이, 욕설이 가득하거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성적인 가사, 값비싼 외제차나 블링블링한 명품으로 도배한 투머치 패션, 레이블 간의 세력화 혹은 총성 없는 편 가르기, ‘디스‘라는 이름의 상대방을 향한 무차별적 공격 등등 결코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나의 부정적인 느낌과 달리 힙합 뮤지션들이 음원 순위 상위권을 휩쓸었고, 과감한 힙합 패션이 유행했다. 힙합 공연이 성행했고, 힙합 클럽에는 사람들이 넘쳐 났다. 자본주의 엔터테인먼트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TV 매체에서 <쇼 미더 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 래퍼> 등등 연이어 힙합 프로그램이 히트를 치는 모습을 보며 뒤늦게 힙합이 ’ 요즘 것들의 취향‘이구나 깨달았다. 힙합은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 ’잘 팔리는 ‘ 문화의 한 장르로 성장했다. 힙합이 이미 대세가 된지도 한참이었지만, 머리가 딱딱한 기성세대인 나에게 멀게만 느껴졌다. 힙합은 나에게 통역 없이는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처럼 여겨졌다.


힙. 알. 못 꼰대는 예상치도 못하게 하루아침에 힙합과 민낯으로 마주하게 됐다. 알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힙합 관련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급히 주입식으로 힙합을 공부했다. 힙합의 탄생 배경부터, 최신 한국 힙합의 트렌드까지... 책을 읽고, 영상을 봤다. 계보를 분석하고, 권위자들을 만나고, 매일매일 그들이 추천한 힙합을 들었다. 그렇게 힙. 알. 못이 하얗게 불태우며 몇 개월간 달려들었던 힙합 프로젝트는 별 성과 없이 끝났다. 하지만 내게는 벼락치기로 배운 힙합이 덩그러니 남았다.


내가 느낀 힙합의 가장 큰 매력은 ‘가사’다. 힙합 뮤지션이 한 곡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적 있다. 곡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힙합 뮤지션들이 가장 많은 시간 머리를 쥐어짜는 부분이 ‘가사‘였다. 다른 음악 장르와 힙합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가사는 자기가 직접 써야 한다는 전통. 힙합의 세계에서 래퍼가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쓰지 않으면 가짜로 취급받는다. 거짓말이 아닌 나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 이게 바로 힙합의 핵심이다. 그래서 힙합 씬에서는 자기 가사는 자기가 직접 쓰는 게 옳고, 그래야 떳떳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과거의 나를 비롯한 많은 힙. 알. 못들이 허세와 과시욕에 찌든 사람이라 생각했던 힙합 뮤지션들. 그들이 쓴 가사를 천천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각자 자신만의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물론 힙합은 화려한 플로우나 재치 있는 라임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가사 안에 담긴 내용이다. 래퍼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가사를 보면 마치 한 권의 자서전이나 철학책, 시집을 읽는 기분이다.


누가 봐도 성공한 힙합 뮤지션의 빛나는 오늘이 있기까지 가난에 짓눌리고, 편견에 얻어맞았던 회색빛 과거가 있었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 힘차게 일어서는 강인한 잡초처럼 시련이 자신을 짓밟을 때, 오기와 깡을 원동력 삼아 우뚝 일어선다. 차곡차곡 쌓인 고민과 상처는 결국 진심 어린 가사가 담긴 힙합 곡으로 태어난다.  그 과정을 상상해 보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구한 생활 밀착형 히어로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비트 위에 흩뿌려 놓는 래퍼는 ‘21세기의 철학자’이자 ‘스마트 시대의 시인’이 아닐까 싶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답 없는 문제를 안고 같은 자리만 맴돌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귀에 이어폰 꽂아 세상의 모든 소음을 차단한다. 그리고 플레이 리스트에서 힙합 곡을 찾아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먼저 고민의 길을 걸어갔던 힙합 뮤지션들이 쓴 가사를 천천히 되뇌어본다. 곡이 끝나고 멀지 않은 시간 안에 나는 희미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한다.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과 새로운 마음가짐이 가슴속에 자리 잡는다. 많은 힙합 곡들은 말하고 있다. 답은 늘 내 안에 있고, 그 답을 찾을 힘 역시 나에게 충분히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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