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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05. 2020

떠돌이 개의 기쁨과 슬픔

만남의 개 광장에서 만난 또 다른 나

     

매일 가는 산책길 중간, ‘만남의 개 광장’이 있다. 비슷한 시간에 산책 나온 개와 보호자들이 모여 물과 간식을 먹는 곳. 사람들은 모여 수다도 떨고, 개들은 뒹굴며 함께 뛰어논다.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친목도 다진다. 그곳엔 대부분 사람의 세심한 관리를 받아 털은 윤기가 반지르르하고, 표정은 해맑은 강아지들이 가득하다.

      

그곳을 지날 때면 언젠가부터 시선이 멈추는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꺼칠한 털에 표정은 시멘트 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은 황구 한 마리. 그 시간이면 만남의 개 광장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는 개다. 목줄도 가슴줄도 없고, 그 곁에 사람도 없는 걸 보니 떠돌이 개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 시간이면 자신에게 먹이와 관심을 나눠줄 사람들이 모인다는 걸 아는 똑똑한 개다.      


주인도 없이 거리 생활을 하는 황구가 안타까웠던 걸까? ‘만남의 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황구에게 종종 간식도 나눠주고,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모두가 황구를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는 건 아니었다. 혹시 ‘내 새끼’한테 나쁜 병균이라도 옮길까? 물지 않을까? 잔뜩 경계하며 황구를 멀리 쫓아내기 바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차가운 눈빛과 냉정하게 손을 휘젓는 상황이 황구에겐 낯설지 않았나 보다. 작은 움직임 혹은 사람들의 목소리의 톤이 조금만 올라가도 황구는 꼬리를 감추며 멀리 도망갔다. 몸은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시선만큼은 주인에게 살뜰한 보살핌을 받는 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주인의 보살핌을 받는 개들을 보던 황구. 매일 반복되는 그 장면을 지나칠 때마다 발끝이 무거웠다.     

  

주인 없는 떠돌이 개에게서 내 모습을 겹쳐 봤다. 떠돌이 개는 줄도 없이 자유롭게 뛰고 있지만, 전혀 신나 보이지 않는다.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 꼬리를 살랑이며 다가가지만, 경계하며 내쳐지기 일쑤.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냉정한 내쳐짐을 당해도 멀리 도망가지 못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간식 부스러기라도 나눠줄 마음 넓은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 잠시라도 자신을 쓰다듬어 줄 누군가를 계속 찾아야 한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소속이 없어 여기저기서 일하다 보면 ‘떠돌이 개’가 된 기분이다. 목줄이건 가슴 줄이건 나를 옭아맨 줄 하나 없다. 한때는 속박인 줄 알았던 그 줄은 사실 안전벨트가 될 때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책임과 의무를 져야 한다는 뜻. 그건 동시에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자유와 안정. 두 개를 한꺼번에 갖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스스로 나를 책임지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 내 밥그릇은 내가 간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얼굴이 두꺼워야 겨우 내 몫을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내향형 인간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이야 말의 무게도 실릴 연차가 찼고, 할 말은 하는 넉살도 생겼다. 하지만 이 구역의 제일가는 소심 왕 시절에는 끙끙 앓기 일쑤였다. 마음이 점점 무뎌졌을 뿐, 여전히 프리랜서의 차가운 현실과 마주할 때면 늘 쓰고 아프다.      


해가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각자 집으로 향한다. 만남의 개 광장이 마감한다는 신호다. 텅 비어 버린 만남의 개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늘 황구가 있다. 내일도 모레도 황구는 거기 있을 거다. 언젠가 황구에게도 주인과 함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갈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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