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가난했던 자의 고백
지상 최대의 행복이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는 게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10대부터 20대 중반까지 그랬다. 학교 숙제가 아니라면 굳이 책을 들춰보는 일은 없었고, 라디오와 TV를 붙들고 살았다. 방학 때면 밤 늦은 시간까지 TV와 라디오에 빠져 지냈다. 그 안에는 뭐든 다 있었다. 빛나는 스타도 있고, 가슴 설레는 로맨스도 있고, 짠 내 나는 현실도 있었다. 작은 브라운관을 통해 지구 반대편 뉴욕 패션쇼의 백스테이지에도, 미슐랭 별 세 개의 레스토랑에도 갈 수 있었다. 아프리카 사막을 걷는 일, 남극의 빙하를 타고 바다를 떠도는 일 등등 상상하는 모든 걸 할 수 있었다. 고된 과정은 깔끔하게 편집된 프로그램들을 보며 내가 사는 이 땅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대리체험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살이 찌면 차라리 안 먹고, 안 움직이는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던 지극히 게으른 인간. 그런 나에게 딱 어울리는 세상을 탐험하는 방법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후 ‘브라운관 안 개구리’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자그마한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란 고만고만한 세계를 벗어난 거다. TV 속에서나 사는 줄 알았던 날고 기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있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서야 처음 외국계 패밀리 레스토랑에 발을 들인 나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을 안방 드나들 듯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치는 차원이 달랐다. 언니들이 차례로 분가를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 방’이라는 걸 가져 본 나와 졸업 선물로 차를 받는 사람들의 세계는 출발점이 달랐다. 겉으로는 웃으며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그들 모습을 흉내 낼수록 속이 텅 빈 나와 마주하게 됐다. 나라는 인간의 세계가 이토록 좁아터진 지 깨닫게 될 때마다 부끄러웠다. 번듯한 명품백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렇다 할 경험이 없어서. TV에서 눈으로 본 그것들은 아무리 많이 본다 한들 내 것이 될 수 없었다. 내가 몸으로 부딪쳐 얻은 경험이 아니었기에. 그 차가운 현실과 마주할 때마다 벌어진 이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생각해 보면 타고난 집안 환경이나 돈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라난 환경이 비슷한 사람도 분명 있었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그 누구도 훔쳐 갈 수 없는 ‘경험치’를 쌓아온 사람이 넘쳐났다. 문제는 성향이었다. 내향형 인간에게 낯선 환경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지금도 괜찮은데 뭐. 이만하면 됐지 뭐. 같은 비겁한 말 뒤에 숨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수많은 ‘처음’이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안전한 집안에 틀어 앉아 웅크린 채 ‘탈출’을 회피하며 살았다. 성공에 확신이 없으면 시작조차 하지 않던 내가 자초한 결과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실패할 여유란 없다. 실패는 곧 추락, 절망, 회복 불가 같은 단어로 자라나 나를 땅속에 파묻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과 마주하면 마음속 저울을 소환한다. 왼쪽에는 나의 노력을, 오른쪽에는 결과를 올려놓는다. 노력이라는 추가 몇 개가 더해져야 저울이 수평을 이루는지 가늠해 본다. 필요한 노력의 개수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면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돌아섰다. 내가 포기하는 게 하나둘 늘어날수록 내 세계는 점점 더 좁아졌다. 잘하고 싶어서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잘하지 않아도, 실패하더라도 남는 게 있다는 걸 먼 길을 돌고 돌아 알게 됐다. 어리석게도. 실패를 너그럽게 봐주던 청춘의 유예기간이 다 지난 후였다. 그때 거울 속에는 경험은 없고, 고집만 센 어른이가 한 명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시간이 없었다. 시작 앞에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우선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하겠다고, 모르니까 해 보겠다고. 낙관주의자와 거리가 먼 나의 눈에는 늘 누추한 결과가 보였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기로 했다. 한 단계 경험치를 쌓아 올릴 기회라 믿고 불안해하는 나를 다독였다.
기회가 오면 우선 잡고 봤다. 결혼도 출산도 해본 적 없지만 육아하는 부모의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젝트를 덜컥 맡았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아프리카 사막 위 마을에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한 건물을 지었다. 물에 들어가는 걸 지독히 싫어하면서 배를 만들어 띄웠다. 사무실 문 밖을 나서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섬에서 살았다. 할 줄 아는 중국어는 고작 ‘니하오’ 밖에 모르면서 8개월간 중국에서 일했다. 벌레에 물리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는 이상한 체질이면서 햇빛도 들지 않을 만큼 빽빽한 밀림을 휘젓고 다녔다. 드라마도 잘 안 보면서 겁없이 드라마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다 하다 출판의 ‘ㅊ‘도 모르면서 책까지 냈다.
시작이란 단어는 여전히 내 발목을 잡는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머뭇거리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하지만 처음이 없으면 다음도 없다. 세상의 문은 내가 두드리지 않는 한 열리지 않는다. 가까이 서는 것만으로 내게 절로 열리는 자동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튼튼한 돌다리도 세네 번 두드리는 내 성향 역시 바뀌지 않았다. 다만 흔들리는 돌다리에서 자칫 떨어진다고 해도 끝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툭툭 털고 다시 일어날 ‘깡’이 생긴 거다. 돌다리를 끝까지 못 건넌다고 해도 천천히 발을 내디딘다. 중간에 오면 이 정도 깊이의 물이니 빠져도 죽지 않는다는 경험치가 +1 된다. 그걸로도 충분하다. 나라는 세계가 한 뼘쯤 넓어졌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