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Feb 02. 2021

버릇의 발견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기쁨


폭발 직전의 나와 상황 진화에 나선 선배가 마주한 시간. 어찌어찌 이야기가 마무리될 무렵 선배가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네가 생각한 대로 일이 안 풀리면

펜으로 탁탁 두 번 테이블을 치는 버릇이 있는 거?     


전혀 생각도 못 한 얘기였다. CCTV 카메라가 되어 회의하던 그날들로 시간을 되감아 봤다. 무거운 분위기에 날 선 말이 오가던 그 상황에 얼굴 가득 먹구름이 낀 나. 회의 페이퍼를 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 커피를 들이켜며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펜의 촉을 테이블에 톡톡 두드리고 머릿속에 품었던 말을 내뱉는다. 그래 분명 선배가 말한 그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의식하지 못한 내 버릇을 알려준 선배는 말을 덧붙였다. 예리한 바늘처럼 따끔한 한마디를.  


네가 펜 톡톡 두드릴 때마다 다들 너 눈치 본다고.

그 펜 소리가 얼마나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데.

그 버릇 고쳐야 해.      


의식하지 못한 내 버릇을 발견해 준 선배. 그의 말에 한동안 뒤통수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듯 얼얼했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의도도 없고, 누가 내 사소한 행동을 신경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더군다나 그 행동이 튀어나올 때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이 자리를 통해 변명하자면 내 그 행동은 머릿속 생각을 정리한 후 아이디어를 밖으로 내보내며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일종의 ‘노크‘다. 생각을 부팅하는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문제가 일어났다는 이상 신호처럼 받아들여졌다는 걸 선배의 직언을 통해 알게 됐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A는 상대를 이해시킬 때, ‘상황적으로’라는 말을 버릇처럼 쓴다. B가 크건 작건 끊임없이 카드를 긁는다는 건 스트레스가 최고치에 도달했을 때 나오는 버릇이다. 내 책에 ‘뭐를 먹던 옷에 흔적을 남기는 C‘에 대해 쓴 이후 그는 같이 식사를 하며 뭔가를 흘릴 때마다 버릇처럼 나와 눈이 마주친다. D는 상대방을 칭찬할 때면 본인을 하염없이 낮추는 방법을 버릇처럼 쓴다. E가 자르기, 붙이기 같은 단순 노동에 몰입한다는 건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F는 뭔가 생각할 때 버릇처럼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꽂으며 집중한다. G는 흘러내린 안경을 올릴 때 버릇이 손목을 한 바퀴 반 돌려 우아하게 안경을 원하는 위치에 고정시킨다. 둘러보면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는 버릇을 타인들은 귀신같이 알아채곤 한다.          


의도가 어떻건 다수의 사람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 습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배의 말을 듣고, 의식적으로 여럿이 모이는 회의 때는 딱딱한 펜을 멀리하게 됐다. 부딪히면 딱딱 소리 내는 펜 말고, 고무가 달린 연필을 손에 쥐었다. 이게 내가 찾은 방법이다. 하루아침에 버릇이 바뀌진 않을 테니 두드릴 때 두드리더라도 불필요한 소음을 덜 내는 필기구를 찾은 거다. 가벼운 연필을 쥐고, 바닥을 톡톡 두드리고 싶을 때면 머릿속에 선배의 그 말을 떠올린다. 언젠가 이 나쁜 버릇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 의식적 행동은 계속될 거다.   

    

NN년을 살았지만 난 여전히 나를 모른다. 나도 모르는 내 버릇을 발견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내 나쁜 버릇. 나이를 더 먹어 몸도 마음도 딱딱해져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라며 무시해버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알게 됐으니 말이다. 아직 몸도 마음도 말랑하니 잘못된 건 고치고, 좋은 버릇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아직 내겐 많이 남아 있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나를 발견하게 될까? 내게 남은 날들엔 나를 발견하는 기쁨이 알알이 채워져 있다고 생각하니 불투명한 내일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아니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이 말하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