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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06. 2021

그날의 악수

남의 불행을 먹고 자란 자의 후회


악수를 하자며 크고 검은손이 불쑥  앞에 다가왔다. 내민  손을 앞에 두고 순간 고민했다. 짧았지만 멈칫했던  분명했다.  생애 처음 만난 에이즈 환자. 지금보다 경험도 적었고, 생각도 닫혀 있던 서른 초반의  앞에 그가  있었다. 손을 덥석 잡고 악수를 했다. 아기 손처 부드러웠다. 정수리를 뚫을  뜨거운 바깥 날씨와 정반대로 바로 전까지 얼음이라도 쥐었던 것처럼 차가웠다. 냉큼 그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알면서도 0.00001초도    짧은 시간, 멈칫했던  모습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다.      


흔히 말하는 ‘스토리가 되는 사람’이 필요했다. 사연이 있고, 이야깃거리가 될 사람. 그 까다로운 기준에 맞는 인물을 찾아 아프리카 오지의 낙후된 마을을 돌고 돌았다. 해가 뜰 때부터 시작해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온종일 휘젓고 다녔다. 망망대해에서 바늘을 찾는 우리의 여정은 해가 지고서야 끝난다. 숙소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욕실로 들어간다. 거울 속에는 뽀얀 흙먼지가 머리에 내려앉아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덩그러니 서 있다. 먼지야 물로 씻어내면 되지만 찌든 피로와 오늘도 ‘스토리가 될’ 적합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는 자책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답사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엉덩이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돌아다녀도 이렇다 할 수확이 없던 날이 이어지던 그때, 우리를 도와주던 현지인 가이드가 말했다.      


“너희가 원하는 사람을 찾은 거 같아”     


그는 포장도로에서도 한참은 더 진흙탕 길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속 가난한 마을로 우리를 안내했다. 이미 세계의 구호 단체들이 다녀갔는지 유명 NGO 단체의 로고가 박힌 건물이며 안내판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의 이름을 K라 하자. 잘 정돈된 NGO 건물 한쪽에서 현지인 가이드의 소개로 K와 처음 인사를 했다. 가이드가 에이즈 환자라고 소개하지 않았다면, 그동안 흔히 봐왔던 훤칠한 보통의 현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조그만 동양인을 향한 눈빛에는 그 어떤 격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낯선 사람을 대하는 의례적인 친절함과 어색함이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었다.      


여유롭게 인사하는 K에 비해 난 좀 긴장했다. 생애 처음 만나는 에이즈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다. 전날 K를 만나러 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후 차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수없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나의 무지를 티 내지 말자. 성급한 호의도, 선을 넘는 배려도 필요 없다. 그저 사람 대 사람. 그거면 충분하다고 다짐했다. 하지지만 어색한 말과 행동에서 K는 분명 느꼈을 거다. 내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막상 에이즈 환자 K를 앞에 두고서 생각처럼 ‘쿨하게’ 대하기란 어려웠다. 단순한 신체 접촉이나 공기로는 감염되지는 않는다는 에이즈의 상식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두꺼운 벽이 있었다. 머리에 뿔이 달리거나 온몸에 붉은 반점이 있는 누가 보기에도 남다른 외적인 차이는 없다. 그런데도 ‘에이즈‘라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염성 강한 불치병이 막연히 두려웠다.      


K는 국제 NGO 단체의 지원받아 운영되는 에이즈 환자 자활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에이즈 환자였던 부모에게 바이러스를 물려받은 수직감염으로 평생을 에이즈 보균자로 살아왔다.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현재 고아라고 했다. 친척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살아오다 운명처럼 이 단체를 만나게 됐다고 했다. 여기서 배운 미싱 기술로 아프리카 느낌 가득한 각종 수예품을 만들어 선진국에 수출한다고 했다. 에이즈가 흔한 그 마을에서도 에이즈 환자는 보통의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어울려 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직업을 구하는 일은 불가능했고, 운 좋게 NGO 단체의 도움을 받아 직업인으로 살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평생을 함께해 온 바이러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K의 모습은 NGO단체의 성과를 보여주기에 딱 맞았다. 현재 후원자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고 미래의 후원자들을 끌어들이기 좋은 스토리였다.       


K의 타고난 불행이 우리에겐 좋은 ‘이야깃거리‘였다.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매만지면 불운한 제2의 K, 제3의 K에게 ’ 미래‘라는 기회를 선물할 수 있겠다는 얕은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까지만 해도 가난과 질병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미약하나마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과 마주하고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 내 욕심을 채우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이야깃거리가 되는 소재를 찾느라 정작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남의 불행을 갉아먹고 자라는 나라는 사람의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구멍 뚫린 옷을 입고, 온갖 이물질이 섞인 흙탕물을 식수로 사용하는 그들의 삶을 불행이 기본값인 양 깔고 바라봤었다. 고무 타이어로 얼기설기 만든 허름한 슬리퍼를 신은 그들의 발 앞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튼튼한 운동화를 신은 내 발이 있었다. 강한 햇빛에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고운 진흙을 물에 개 바른 그들 앞에 명품 브랜드의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도 모자라 모자에 등산용 쿨 마스크까지 중무장한 내가 있었다. 한국의 재활용 의류 수거함에서 왔을 한글 로고가 선명한 어느 조기축구회 티를 입은 그들 앞에 무슨 뜻인지도 모를 외래어 가득한 새하얀 티셔츠를 입은 내가 있었다. 하루를 48시간처럼 쪼개 쫓기듯 사는 내 앞에 해가 지면 자고, 해 뜨면 일하는 심플한 삶을 사는 그들이 있었다. 선명하게 사진이 찍히는 사과폰을 가진 내 앞에 난생처음 사진을 찍어 보곤 까만 네모 상자 안에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지러지게 웃는 아이들이 있었다.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있다. 가진 게 많이 없다고 불행한 게 아니다. 많이 가졌다고 행복할 리 없다. 불행 이전에 사람이 있다. K는 알까? 그날의 악수가 지구 반대편에 살던 무지한 동양인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걸. 지금 K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토록 바라던 자기 가게를 갖게 됐을까? 가정을 꾸렸을까? 에이즈가 더는 불치병이 아닌 난치병이 된 시대니 어쩌면 K의 꿈이 이뤄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부디 그의 삶이 그가 바라는 대로 차근차근 이뤄지길 빈다. 그가 원하는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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