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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6. 2021

왜 말을 안했냐고요? 묻지도 않았잖아요

털어놓는 속마음의 양이 친분과 비례하는 걸까?



넌 속을 참 모르겠어. 나를 오래 알아 온 사람들은 내게 종종 말한다. 내가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서운하다고 했다. 혼자 고민하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애써 벽을 치지 말라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꽤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느새 들어도 무덤덤한 말이 됐다. 충격의 강도는 연해져도 변하지 않는 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크게 잘못한 사람이 된 기분이라는 것. 그때마다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좋아하는 거 외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말주변도 없고, 삶이 단조로워 대화거리가 넉넉지도 않다. 그러니 듣는 역할이 내겐 더 잘 맞는다. 프로 청자(聽者), 그게 바로 나다. 관계에 있어 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택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종종 오해를 받는다. 일부러 숨긴다거나 입을 닫고 있다고. 할 말이 없으니까 안 하는 것일 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게 왜 말을 안 하냐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끼어들 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기 얘기를 털어놓다 문득 정신이 들었던 걸까? 너무 나만 얘기했나 싶었나? 그리고 내게 말한다. 넌 왜 말을 안 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속으로 생각한다. 난 열심히 네 얘기 듣고 있었는데? 홀리듯 쏙 빠져서. 내가 말할 틈도 없었어. 내가 말을 끊을 만큼 대단한 얘기가 없어. 그리고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왜 그리 수동적이냐고? 물어야만 답을 할 거냐고? 네가 궁금한 게 뭔지를 모르는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지?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털어놓는 속마음의 양이 친분과 비례하는 걸까?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휩싸여 정말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건 아닌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쉽게도 난 그 정도로 착한 사람은 아니다. 할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없어서, 몰라서 못 하는 거지 알고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주량체력이 다르듯 말을 털어놓는 깊이와 양은 천차만별이다. 소주  잔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알코올 쓰레기인 내가 소주  잔을 먹은  최선을 다한 거다. 평소  밖을  나서지 않는 집순이가 1시간 산책을   그날의 활동량을 모두  거지만,   시간 반을  걸어야 다리가  풀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해도 상대방은  갈증을 느낀다. 나의 기준과 상대의 기준이 다르다. 고객님의 니즈를 만족시킬  없다는  인정하고서는 굳이 애쓰지 않는다. 네게는 부족하겠지만 이게  최선이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오늘도 한참 누군가의 얘기를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들었다. 나는 모르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를 상대방의 입을 통해 여행했다. 말을 하는 상대의 얼굴엔 때로는 행복한 미소가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고, 쓰디쓴 후회가 드리우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그 순간을 재상영이 불가능한 영화를 보듯 숨죽이고 지켜봤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 재미에 빠져 상대방에게 자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어땠는데?
왜 그랬는데?
결국 어떻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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