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놓는 속마음의 양이 친분과 비례하는 걸까?
넌 속을 참 모르겠어. 나를 오래 알아 온 사람들은 내게 종종 말한다. 내가 속내를 털어놓지 않아 서운하다고 했다. 혼자 고민하고 있을까 봐 걱정된다고 했다. 애써 벽을 치지 말라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꽤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젠 어느새 들어도 무덤덤한 말이 됐다. 충격의 강도는 연해져도 변하지 않는 건 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뭔가 크게 잘못한 사람이 된 기분이라는 것. 그때마다 생각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까?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좋아하는 거 외에는 일절 관심이 없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말주변도 없고, 삶이 단조로워 대화거리가 넉넉지도 않다. 그러니 듣는 역할이 내겐 더 잘 맞는다. 프로 청자(聽者), 그게 바로 나다. 관계에 있어 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역할을 택한 것일 뿐이다. 그런데 종종 오해를 받는다. 일부러 숨긴다거나 입을 닫고 있다고. 할 말이 없으니까 안 하는 것일 뿐.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게 왜 말을 안 하냐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끼어들 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기 얘기를 털어놓다 문득 정신이 들었던 걸까? 너무 나만 얘기했나 싶었나? 그리고 내게 말한다. 넌 왜 말을 안 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속으로 생각한다. 난 열심히 네 얘기 듣고 있었는데? 홀리듯 쏙 빠져서. 내가 말할 틈도 없었어. 내가 말을 끊을 만큼 대단한 얘기가 없어. 그리고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왜 그리 수동적이냐고? 물어야만 답을 할 거냐고? 네가 궁금한 게 뭔지를 모르는데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거지? 물음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털어놓는 속마음의 양이 친분과 비례하는 걸까?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휩싸여 정말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건 아닌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쉽게도 난 그 정도로 착한 사람은 아니다. 할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사람은 아니다. 없어서, 몰라서 못 하는 거지 알고는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주량과 체력이 다르듯 말을 털어놓는 깊이와 양은 천차만별이다. 소주 한 잔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알코올 쓰레기인 내가 소주 석 잔을 먹은 건 최선을 다한 거다. 평소 집 밖을 잘 나서지 않는 집순이가 1시간 산책을 한 건 그날의 활동량을 모두 쓴 거지만, 난 한 시간 반을 더 걸어야 다리가 좀 풀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해도 상대방은 늘 갈증을 느낀다. 나의 기준과 상대의 기준이 다르다. 고객님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서는 굳이 애쓰지 않는다. 네게는 부족하겠지만 이게 내 최선이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오늘도 한참 누군가의 얘기를 눈과 귀를 활짝 열고 들었다. 나는 모르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를 상대방의 입을 통해 여행했다. 말을 하는 상대의 얼굴엔 때로는 행복한 미소가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했고, 쓰디쓴 후회가 드리우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그 순간을 재상영이 불가능한 영화를 보듯 숨죽이고 지켜봤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 재미에 빠져 상대방에게 자꾸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어땠는데?
왜 그랬는데?
결국 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