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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9. 2021

나의 숫자들

일주일을 채우는 나의 루틴

   

<청포도>, <광야> 유명한 민족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 그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필명 이육사는  수감 때의 수인번호(264)에서 왔다. 책에서  구절을 읽고 생각했다. 지금 나를 둘러싼 숫자는 뭘까? 숫자로  ‘부캐 이름을 다시 짓는다면 뭐가 될까?


1번의 점심 식사

일주일에 한 번은 엄마와 함께 바깥에서 점심을 먹는다. 엄마는 외식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나가서 먹는 일이 귀찮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여행을 가서 알았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 남이 해 주는 음식‘이라는 걸. 평생 가족을 먹이느라 지겹도록 해 온 집밥에서 엄마에게 해방의 시간이 필요했다. 언젠가 이렇게 나란히 손잡고 나가 밥을 먹는 일이 몇 년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 좀 더 부지런해지기로 했다. 몇 년 남지 않은 기회를 알뜰하게 만끽하고 싶었다. 이기적이지만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시간을 낸다.       


집에서 매일 먹는 밥과 반찬 같은 한식이 아니라 가능하면 다른 나라의 음식을 먹으러 간다. 해외로 가는 하늘길이 막히면서 음식으로나마 여행의 기분을 내기 위해 택한 방법이다. 난 날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엄마가 좋아하니 초밥집에 간다. 익힌 재료가 올라간 초밥을 골라 먹으면 되니까. 때로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멕시코 음식 전문점에 간다. 비행기를 타면 12시간이 훌쩍 넘는 멕시코에 언제 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 라임즙이 듬뿍 들어간 과카몰레와 시즈닝이 듬뿍 뿌려진 파히타를 먹으며 대리 만족한다. 이국적인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백화점 식당가의 고급 아시안 음식점이 아닌 시장 근처로 향한다.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이 많은 동네다 보니 로컬에 가까운 현지식을 파는 음식점이 많다. 그곳의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된 값비싼 요리가 아니다. 태국의 골목이나 베트남 노상 식당에서 먹을 법한 꾸밈없는 현지식이다. 그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함께 동남아 여행을 갔던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다. 백번도 더 한 얘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신나서 수다를 떤다. 먼 훗날 분명 난 이 시간이 있어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거다.     


2번의 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두 번은 글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주로 월, 목 아니면 화, 금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그 두 번의 글을 위해 나머지 날들은 글감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레이더를 열어 놓고 산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산책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도 툭툭 글감을 캐내야 한다. 숨겨진 금맥을 찾는 광부처럼 글감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헤집고 다닌다. 거리의 간판에서, 책의 문장에서, 중구난방 수다 속에서 언젠가 글이 될 생 날것의 단어들을 메모한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쌓인 글감 중 겨우 1~2개만 글로 피어난다. 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보면 이걸 왜 적었나 싶은 문장이나 단어, 표현들이 메모장에 가득하다.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쓰다 보면 처음 생각한 방향과 정반대의 결론에 닿을 때도 있다. 글 하나를 쓰기 위해 부팅하는 시간이 1시간, 쓰고 다듬는 시간이 1시간 반.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글 한 편이 나온다.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래도 올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어쨌든 뭐라도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니까. 애초에 완벽한 글이란 있을 수 없으니 자꾸 쓰면서 다듬고, 고친다. 그런 날들이 쌓이면 언젠가 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으로 부끄러워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다독이며 쓴다.  

    

2~3권의 책

짬이 날 때마다 그리고 틈틈이. 주말에는 스트레이트로 1~2권. 잠자기 전에는 무조건 한 챕터. 그렇게 읽다 보면 평균 일주일에 2~3권 정도가 된다. 그래서 한 달이면 10권 내외가 된다. 쉽게 지루함을 느끼는 타입이라 여러 권의 책을 돌려 가며 읽는다. 내용이 섞이지 않게 가능하면 장르를 다르게 읽는다. 주로 에세이. 그 외에 미술에 대한 책도 좋아하고 심리학 책도 자주 읽는다. 잡지식이 가득한 인문학, 뼈 때리는 사회학 책도 가끔 읽는다. 이과(理科) 맛이 나면 몸서리가 쳐지는 뼛속까지 문과인 사람이다. 하지만 내 수준에 맞게 풀어쓴 이과 책도 가끔은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책 안에서 인용된 책 제목을 메모해 둔다.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기도 하고, 산책 때 듣는 책 관련 팟캐스트에서 다음 책을 찜해두기도 한다. 웹서핑을 하다가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 생기면 캡처나 메모를 한다. 그렇게 기록해 두지 않으면 미래에 읽을 책이 쌓인 곳간이 금세 바닥이 난다. 책을 읽는 속도보다 그렇게 앞으로 읽을 책 이름이 쌓여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러니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 책을 읽을 시간을 내가 만든다.      


3번의 요가

가장 최근에 생긴 숫자다. 요가를 시작하게 된 건 누군가의 추천 때문이었다. 생각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 생각을 비워내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 요가‘가 잘 맞을 거라고 했다. 몸을 늘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60분이라는 수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푹 빠져 버렸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내게 선생님은 말했다. “처음이라 많이 힘들었죠?” 난 잠시 생각해봤다. 그리고 입을 뗐다.  “힘든데 재밌어요. 지금은 몰라서 재밌는 거겠죠? 근데 알면 100배 더 재밌을 거 같아요.” 이 말에 열정적인 강의로 지쳐 있던 선생님의 얼굴이 봄꽃처럼 활짝 피었다.


그동안 나름 몸을 움직이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첫 수업을 하고 다음날 바로 몸살이 났다. 근육통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달려들었다. 여기서 포기할 거라면 시작도 안 했다. NN년 동안 제대로 쓰지 않은 근육을 이제야 겨우 세상 빛을 보게 됐는데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다. ’ 요가계의 하룻강아지’를 귀여워해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내 몸이 이렇게도 구겨지고 펴진다는 걸 알게 됐다. 내 몸의 한계를 서서히 늘려가는 그 즐거움 때문에 다음 요가 시간이 벌써 기다려진다.        


6번의 산책  

나의 숫자들 중 가장 오래된 습관이다. 날씨만 도와준다면 일주일에 무조건 여섯 번은 산책을 간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가고 싶지만, 다리를 쉬게 해야 해서 일부러 하루를 뺐다. 앞으로 더 오래 산책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 하루쯤은 쉬어 가기로 했다.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귀에 이어폰을 끼고 중랑천을 따라 걷는다. 청량 미 넘치는 아이돌 노래를 들을 때도 있고, 라임의 묘미가 폭발하는 힙합이 플레이될 때도 있다. 말발 좋은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 같은 팟캐스트를 듣기도 하고 뉴스를 들으며 하루 동안 쌓인 대한민국의 오늘을 파악하기도 한다. 걸음걸음마다 무거운 생각들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거의 매일 산책하냐고. 같은 길을 걷는 게 지루하지 않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소가 슬며시 퍼진다. 매일 똑같은 길을 걷지만 한 번도 똑같은 풍경을 본 적은 없다. 잔디밭에 파전처럼 널찍하게 뱃살을 펼친 채 졸고 있는 길고양이도 구경하고, 세상 달관한 표정으로 개모차에 앉아 편히 산책하는 늙은 반려견도 훔쳐본다.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맺히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텅 빈 나뭇가지에 눈이 쌓이는 걸 지켜본다. 조금씩 다리에 근육이 차고, 힙 업도 된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듯 그 길에는 매일 다른 볼거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기다리는 어제와 다른 오늘의 산책길이 있기에 산책 시간이 되면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설렘을 가득 채워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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