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관종이라서 그래요
’호사’라는 부캐 뒤에 숨어서 몰래 글을 쓰던 시절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내가 쓴 글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일 말이다.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라는 ‘본캐‘는 비밀 일기장을 들킨 사춘기 중학생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책을 내지 않았다면 영영 공개하지 않았을 ‘온라인 일기장’, 즉 내 브런치를 지인들도 알게 됐다. 그들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 따끔한 조언을 듣게 된다. 독자이기 전에 지인이었던 그들의 말은 다음과 같다.
요즘 글이 ○○하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작가님 무슨 일 있었어요? 어제 올린 글 보니까 *%^#^#&하던데?
네 글은 ☆☆해서 아쉬워.
이번 글은 △△해서 사람들이 널 □□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걱정스러워.
부처나 성인군자가 아닌 그저 소심한 사람이니까 좋은 반응을 기대하며 글을 쓴다. 읽는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느끼는지 선택할 순 없다. 호평을 들으면 어깨가 올라간다. 모두가 좋게 보진 않는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닿는 지점이 다를 테니 누구에겐 세모, 다른 누구에게는 동그라미 혹은 별 모양이 되어 느껴질 거다. 채찍 같은 조언을 듣게 될 때도 있다. 분명 좋은 글을 쓰는 훌륭한 작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말이다. 말하는 사람도, 표현법도 각기 달랐지만 조언을 모아 보면 결론은 하나에 닿았다.
네 글은 수가 읽혀. 흐름도. 결론도. 보통 온라인 속 익명(?)의 독자들이 건넨 코멘트라면 그렇게도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긴다. 이제는 쌍욕 따위와 마주할 순간이 와도 ‘가슴속에 화가 많으신 분이구나’ 하고 스킵한다. 하지만 시차 없이 전해지는 지인들의 피드백은 안전주행을 하듯 써 내려가던 글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게 만든다. 최소 카톡으로 일상을 나누는 가까운 지인들이 전하는 얘기는 유독 여운이 길다. 분명 누가 보라고 쓴 글인데도 얼굴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 건네는 피드백은 좀처럼 쉽게 넘길 수가 없다. 그런 말들이 내 귀에 닿을 때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되어 날아와 박힌다. 수가 읽히는 글은 나쁜 걸까? 흐름이든 결론이든 눈에 보이는 글은 문제가 있는 걸까? 지인들이 건네는 조언들을 한 번씩 들을 때마다 마음에 요동이 친다.
어깨와 귀는 멀리!
요가 수업 중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정확히는 어깨와 귀 사이를 멀리 떨어뜨리라는 의미. 현대인들의 고질병, 거북목의 고통에 시달리는 수강생들에게 선생님이 건네는 말의 뜻은 이거다. 의식적으로라도 어깨의 긴장을 풀고,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요가센터에서 요가를 하면서도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들었던 말부터 앞으로 가야 할 방향 등등 지난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오락가락하며 정신을 흩뜨리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의 이 말이 머리에 쾅하고 박혔다.
좋은 말을 들으면 어깨를 으쓱해 귀를 막아버렸고,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한없이 아래로 처졌다. 사실 어깨가 있어야 할 곳은 귀와 먼 곳도 가까운 곳도 아니다. 그저 직각. 쥐며느리처럼 굽어 말려 들어갈 필요도 없고, 뒤로 젖혀져서도 안 된다. 어깨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으면 척추가 펴지고 반듯한 자세가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을 쓰는 자세가 바르고, 메시지가 명확하면 충분하다. 어깨를 한껏 움츠리며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며 쓸 필요도 없고, 어깨를 한껏 젖히고 뻐기며 쓸 필요도 없다. ‘귀와 어깨는 멀리’라는 요가 선생님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다짐했다. 흐름과 결론이 예상되는 수가 읽혀도 당분간은 좀 그냥 뚜벅뚜벅 가기로. 나는 이제 겨우 몇 걸음을 뗀 초보 작가니까. 좀 더 색깔이 진해지면 그때 다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손바닥 뒤집듯 답 없이 휘둘리기보다 지금은 내 글의 색깔을 다듬어 가는 시기니까. #변화, #도전, #혁신 같은 단어들을 시도하기에는 아직 난 내 색깔이 뭔지도 아직 모르니까. 새롭게 시도하기 위해서는 뭔가 제대로 갖추는 게 먼저니까. 무수히 쏟아지는 코멘트들을 '의식'하기보다 '인지'하기로 했다. 의식하며 쓰다 보면 내가 결국 어깨를 더 움츠리며 쓰게 될 테니, 그런 의견이 있었지 정도로 인지하고 쓰는 선으로 나 스스로와 타협한 거다. 그게 바로 이 구역의 소문난 샤이 관종이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택한 최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