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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06. 2021

수가 읽히는 글의 딜레마

샤이 관종이라서 그래요


’호사’라는 부캐 뒤에 숨어서 몰래 글을 쓰던 시절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면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내가 쓴 글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 같은 일 말이다. 그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라는 ‘본캐‘는 비밀 일기장을 들킨 사춘기 중학생처럼 얼굴이 화끈거린다. 책을 내지 않았다면 영영 공개하지 않았을 ‘온라인 일기장’, 즉 내 브런치를 지인들도 알게 됐다. 그들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 따끔한 조언을 듣게 된다. 독자이기 전에 지인이었던 그들의 말은 다음과 같다.  

  

요즘 글이 ○○하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작가님 무슨 일 있었어요? 어제 올린 글 보니까 *%^#^#&하던데?

네 글은 ☆☆해서 아쉬워.

이번 글은 △△해서 사람들이 널 □□한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걱정스러워.   

   

부처나 성인군자가 아닌 그저 소심한 사람이니까 좋은 반응을 기대하며 글을 쓴다. 읽는 사람들이 내 글을 어떻게 느끼는지 선택할 순 없다. 호평을 들으면 어깨가 올라간다. 모두가 좋게 보진 않는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닿는 지점이 다를 테니 누구에겐 세모, 다른 누구에게는 동그라미 혹은 별 모양이 되어 느껴질 거다.  채찍 같은 조언을 듣게 될 때도 있다. 분명 좋은 글을 쓰는 훌륭한 작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말이다. 말하는 사람도, 표현법도 각기 달랐지만 조언을 모아 보면 결론은 하나에 닿았다.      


네 글은 수가 읽혀. 흐름도. 결론도. 보통 온라인 속 익명(?)의 독자들이 건넨 코멘트라면 그렇게도 생각하는구나 하고 넘긴다. 이제는 쌍욕 따위와 마주할 순간이 와도 ‘가슴속에 화가 많으신 분이구나’ 하고 스킵한다. 하지만 시차 없이 전해지는 지인들의 피드백은 안전주행을 하듯 써 내려가던 글에 급히 브레이크를 밟게 만든다. 최소 카톡으로 일상을 나누는 가까운 지인들이 전하는 얘기는 유독 여운이 길다. 분명 누가 보라고 쓴 글인데도 얼굴을 트고 지내는 사람이 건네는 피드백은 좀처럼 쉽게 넘길 수가 없다. 그런 말들이 내 귀에 닿을 때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되어 날아와 박힌다. 수가 읽히는 글은 나쁜 걸까? 흐름이든 결론이든 눈에 보이는 글은 문제가 있는 걸까? 지인들이 건네는 조언들을 한 번씩 들을 때마다 마음에 요동이 친다.      


어깨와 귀는 멀리!     


요가 수업 중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정확히는 어깨와 귀 사이를 멀리 떨어뜨리라는 의미. 현대인들의 고질병, 거북목의 고통에 시달리는 수강생들에게 선생님이 건네는 말의 뜻은 이거다. 의식적으로라도 어깨의 긴장을 풀고,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요가센터에서 요가를 하면서도 그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들었던 말부터 앞으로 가야 할 방향 등등 지난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오락가락하며 정신을 흩뜨리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의 이 말이 머리에 쾅하고 박혔다.      


좋은 말을 들으면 어깨를 으쓱해 귀를 막아버렸고,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한없이 아래로 처졌다. 사실 어깨가 있어야 할 곳은 귀와 먼 곳도 가까운 곳도 아니다. 그저 직각. 쥐며느리처럼 굽어 말려 들어갈 필요도 없고, 뒤로 젖혀져서도 안 된다. 어깨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으면 척추가 펴지고 반듯한 자세가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글을 쓰는 자세가 바르고, 메시지가 명확하면 충분하다. 어깨를 한껏 움츠리며 누군가에게 굽신거리며 쓸 필요도 없고, 어깨를 한껏 젖히고 뻐기며 쓸 필요도 없다. ‘귀와 어깨는 멀리’라는 요가 선생님의 말을 가슴에 새기며 다짐했다. 흐름과 결론이 예상되는 수가 읽혀도 당분간은 좀 그냥 뚜벅뚜벅 가기로. 나는 이제 겨우 몇 걸음을 뗀 초보 작가니까. 좀 더 색깔이 진해지면 그때 다시 고민해 보기로 했다.


손바닥 뒤집듯 답 없이 휘둘리기보다 지금은 내 글의 색깔을 다듬어 가는 시기니까. #변화, #도전, #혁신 같은 단어들을 시도하기에는 아직 난 내 색깔이 뭔지도 아직 모르니까. 새롭게 시도하기 위해서는 뭔가 제대로 갖추는 게 먼저니까. 무수히 쏟아지는 코멘트들을 '의식'하기보다 '인지'하기로 했다. 의식하며 쓰다 보면 내가 결국 어깨를 더 움츠리며 쓰게 될 테니, 그런 의견이 있었지 정도로 인지하고 쓰는 선으로 나 스스로와 타협한 거다. 그게 바로 이 구역의 소문난 샤이 관종이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 택한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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