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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20. 2021

다정한 오지랖을 부려야지

반 오지랖 주의자의 변신

      

늦은 오후의 산책길. 건너편에서 걸어오던 한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슴팍에 조심스럽게 안고 가는 털 뭉치... 멀리서 보기엔 무슨 동물이긴 한 거 같은데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혹시 위급한 상황인 걸까? 섬뜩한 기분이 몰려왔다. 그 사람이 가까이 올수록 신경이 바짝 날이 섰다. 가까이 올수록 축 늘어져 걸을 때마다 시계추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동물의 상태가 걱정됐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동물은 대부분은 목줄을 하거나 개모차에 탄 개다. 가끔 배낭형 이동장의 투명창에서 밖을 구경하는 고양이, 어쩌다 어깨 위에 올라탄 앵무새가 있다. 그 외의 동물을 만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날, 주인의 품에서 축 늘어진 채 산책하던 동물은 페럿이었다. 허리가 긴 족제빗과의 육식동물. 장난기도 많고, 잠도 많은 페럿을 SNS에서나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처음이었다. 따뜻한 전기매트 위에서 잠들어 녹은 듯 흐물흐물해진 페럿의 모습을 기억한다. 주인이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페럿. 그 영상을 생각하니 잠에 빠진 페럿을 산책길에 만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싶다. 산책을 나왔다 잠이 들었을 수도 있고, 잠이 든 페럿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길일 수도 있다. 주인과의 단란하고 편안한(?) 산책을 난 위급상황으로 오해했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급박한 상황이 아닐까 싶어도 정작 본인은 평온한 상황일 때가 있다. 반면, 나는 평온하다고 생각했는데 밖에서 보기엔 그렇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바깥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제야 내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걸 깨닫곤 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에게 ‘괜찮아 ‘라고 다독여 왔다. 그런데 그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었다. ’ 괜찮다 ‘는 말로 문제를 덮는 일이었다. 정작 해결되지 않고, ’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라는 말로 나를 잠시 마취시킨 거다. 하지만 그 마취는 언젠가 깨기 마련이다.       


사람은 모두 자기 기준에서 생각이 출발한다. 내가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괴로웠으니까 상대방도 그런 상태는 아닐까 괜한 오지랖을 부리게 된다. 별일 아니라고 되레 나를 다독이는 상대의 말을 들을 때마다 다짐한다. 선 넘지 않는 ‘다정한 오지랖’을 부려야지 라고.     


‘오지랖’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지금보다 철이 없을 때는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 간섭하고 참견하는 일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책임져 주지도 않을 거면서 내 삶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 인생에 지분 없는 사람들이 오지랖을 부리는 건 싫어한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만든 지분이 1%라도 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오지랖은 사랑한다. 그게 다 관심이고 애정에서 나왔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다정한 오지랖’을 부리게 된다.      


미약한 내가 당신의 인생을 단번에 구원해 줄 순 없겠지만, 손 닿는 곳에 언제나 내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어필한다. 손 내밀면 때론 힘 나는 음식으로, 활짝 연 귀로, 따뜻한 위로와 응원으로. 잠시 일상의 궤도를 이탈한 당신이 정상 궤도로 진입할 수 있게 돕는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걸 강조한다. 당신들의 ‘다정한 오지랖’ 덕분에 내가 정상 궤도로 돌아온 것처럼.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 ‘무겁지 않은 오지랖’을 귀찮아하다가 크게 후회하고 싶지 않다. 이기적이지만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더 부지런히 다정한 오지랖을 부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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