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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13. 2021

회전초밥의 속도

뜻밖의 1+1 혜택


  

잔뜩 흐린 토요일 점심. 엄마 아빠를 모시고 집에서 10분 거리의 동네 회전 초밥집에 갔다. 날음식을 좋아하시는 엄마와는 몇 번 와봤지만, 아빠와는 처음이었다. 이 구역의 소문난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인 아빠. 여행이 아니라면 집 근처에서 굳이 날음식을 먹는 일은 없었다. 아빠 인생에 회란 여행 가서 접시 가득 나오는 초장 찍어 먹는 회가 전부였다. 함께 일본 여행을 갔지만, 회전 초밥집에는 가지 않았다.    

  

아빠 딸답게 나 역시 날음식을 즐겨 먹진 않는다. 근데 그날은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아빠랑 회전초밥집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로 내켜하지 않는 아빠의 손을 이끌었다. 가면 날생선 초밥만 있는 게 아니고 새우튀김도 있고, 멘보샤도 있고, 소고기 초밥도 있다고 꼬셨다. 칼국수나 먹자는 아빠의 의견을 다음에 먹자고 미뤘다. 나의 강력한 의지와 엄마의 부추김에 아빠는 못 이기는 척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왠지 그날의 정답은 회전초밥이었으니까.      


좌석이 채 20석도 안 될 작은 회전 초밥집. 평소 이 시간이었다면 사람이 바글바글했을 텐데 토요일이라 한산했다. 휴일에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 건 다 아침잠 없는 노년의 부모님 덕분이다. 젊은이들이 이제 겨우 잠을 털어낼 토요일 정오에 우리는 밥을 먹으러 왔다.      


난생처음 회전초밥집에 입성한 아빠. 흔들리는 동공에서 아빠의 당황스러움을 엿봤다. 4인석에 배정된 우리 가족. 회전 초밥 레일 가까운 곳에 아빠와 엄마를 앉히고 난 그 옆에 앉았다. 엄마는 익숙한 듯 간장 종지에 회간장과 고추냉이를 덜었고, 나는 녹차를 따랐다. 따끈한 녹차가 담긴 잔을 아빠 쪽으로 건네며 말했다.

      

아빠! 레일에서 접시가 오지?
보다가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집어서 드시면 됩니다.     


어린 조카에게 설명하듯 회전초밥집의 룰을 간단히 설명했다. 놀이동산에 처음 온 아이처럼 레일이 한 바퀴 넘게 돌도록 한참 바라보던 아빠. 그 사이 엄마와 나는 이미 몇 접시를 해치웠다. 신중한 눈으로 접시를 고르던 아빠. 마음에 든 접시를 발견했는지 떨리는 손(가슴이 떨려서가 아니라 진짜 수전증이 있으시다)으로 접시를 집었다. 목표는 토치로 위를 살짝 그을린 우삼겹 초밥이다. 그런데 아빠의 손보다 레일의 속도가 빨랐다. 기계에 손이라도 낀 것처럼 도망가는 접시를 따라 아빠의 몸이 움직였다. 70대 중반. 내일모레면 여든에 가까운 아빠에게 회전초밥집 레일의 속도는 람보르기니보다 빨랐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그래 우리 아빠 할아버지지?     


회전초밥집의 레일 속도에 대해  번도 생각해   없었다. 그게 빠르다고 느낀 적도 물론 없었다. 하지만 노화가 한창 진행 중인 아빠에겐 빨랐다. 조카들이 벌써 중학생, 초등학생이니 공식적인 할아버지가   한참 지났다. 그래도 평상시에는 그렇게 할아버지라고는  느낀다. 나에게 아빠는 아빠니까.  나이를 생각하면 아빠는 당연히 할아버지지만 막연히  머릿속에는 50 늙중년 정도의 이미지다.


하지만 이렇게 집 밖에 나오면 알게 된다. 부모님이 얼마나 노쇠해 가고 있는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젊은 시절 빈 손이었던 부모님은 자기 집이 생겼고, 네 명의 자식과 그 자식이 낳은 손주들이 생겼다. 하지만 총기를 잃고, 시력을 잃고, 청력을 잃고, 활기를 잃었다. 집 밖에서 본 아빠는 한해 한해 갈수록 허리가 굽고, 걸음이 느려지고, 고집이 세졌다. 귀가 어두웠던 말년의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빠는 몇 번 더 레일 위의 접시를 집어 올리기를 시도했다. 번번이 옆 접시의 음식에 미처 빠지지 못한 아빠의 느린 손에 닿았다. 엄마가 얼른 그 접시를 내려 모녀가 먹어 치웠다. 그 접시 위에 뭐가 올라가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먹어야만 했다. 뜻밖의 1+1의 혜택. 생각보다 배가 일찍 찼다. 그래도 대낮부터 맥주 한 병을 시켜 셋이 나눠 마셨다. 맥주가 유독 썼다.   

  

맥주를 바닥까지 싹 털어 마시고 카페로 가면서 물었다. ‘아빠 이번엔 몇 점?’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새로운 곳을 갔을 때마다 내가 묻는 만족도 검사다. 85점. 이 정도면 우수다. 다음에 또 와도 된다는 뜻이다.


카페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넓은 창 바로 앞의 좌석. 아까는 잔뜩 흐렸던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갰다. 각자의 최애 메뉴를 앞에 두고 수다를 떨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엄마는 샷 1개 뺀 뜨거운 아메리카노. 아빠는 아포가토. 셋이 앉아 한가로운 토요일 오후를 즐겼다. 아이처럼 조심조심 에스프레소 샤워를 한 아이스크림을 떠드시는 아빠를 보며 생각했다.


다음번에 회전초밥집에 가면 내가 레일 쪽에 앉아야지.

아빠가 말로 주문하면 내가 바로 대령해야지.

아빠의 전용 서빙 직원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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