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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03. 2021

쿨 라임 피지오의 배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밥 먹는 건 귀찮은 적이 많아도 커피 마시는 게 귀찮은 적은 없을 만큼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커피를 향한 치과 의사 선생님의 협박성(?) 조언, 각종 매체에서 쏟아내는 위협적 정보가 밀려들자 쫄보의 마음에 빨간불이 깜빡였다. 커피가 만드는 치아 변색도 두렵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 든 카페인이 문제였다. 카페인이 몸 구석구석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생각하니 쓰던 커피가 더 썼다. 과유불급의 아이콘, 카페인. 과하게 마시면 수면장애부터 역류성 식도염 등의 위장질환, 공황장애 등의 정서 질환, 심할 경우 심장마비나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에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대책 없이 마셔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하루에 2잔으로 기준을 정했다. 그 이상은 마시지 말자 나와 약속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처럼 쉽지 않다. 미팅이나 회의, 약속 등 하루에도 수없이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래서 2잔까지는 허용하지만 그 이상이 됐을 때는 커피 이외의 음료를 택해야 한다. 보통은 물로 해결하고, 그게 아니라면 허브티나 둥굴레차를 고른다.  

    

하지만 그럴 때가 있다. 별다방에 갔는데 물을 돈 주고 사긴 아깝고 둥굴레차는 없고 허브티는 당기지 않을 때. 그럴 때는 '쿨 라임 피지오'라는 꽤 ‘쿨’한 이름의 음료를 택했다. 라임 베이스로 만든 일종의 스파클링 음료다. 이것저것 많이 들어간 단 음료를 좋아하지 않아 카페에 가면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아메리카노를 시켰기에 알 수 없었던 메뉴. 2012년 첫 출시 이후 단종되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나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알던 음료였다. 지인의 추천으로 처음 맛본 '쿨 라임 피지오'의 상쾌함에 홀딱 빠져 버렸다. 투명한 연한 연둣빛의 그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면 천년 묵은 마음의 체증까지 싹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커피를 더 마실 수 없을 때 별다방 한정 내 선택은 늘 '쿨 라임 피지오'가 됐다.      


그날도 이미 내가 허락한 2잔의 커피를 이미 점심 전에 다 마셨다. 그러니 커피 이외의 음료를 택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별다방에 왔으니 고민하지 않고 '쿨 라임 피지오'를 시켰다. 마침 1+1 쿠폰까지 있었기에 거하게 '쿨 라임 피지오' 파티를 벌였다. 얼음이 찰랑하게 들어간 연한 연둣빛 음료를 빨대로 휘휘 저은 후 있는 힘껏 쭉 빨아들여 목으로 넘긴다. 캬... 하루 동안 겹겹이 쌓였던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상쾌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첫 번째 컵을 다 해치우고, 두 번째 컵의 1/3쯤 마셨을 무렵 불현듯 쿨 라임 피지오의 성분이 궁금해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 호기심이 어떤 충격을 몰고 올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데...      


별생각 없이 ‘쿨 라임 피지오‘를 머금은 빨대를 입에 문 채 별다방 어플에 들어가 음료 소개 부분을 클릭했다.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가던 음료가 턱 하니 목에 걸렸다. 하... 방금 전까지 즐겁게 마시던 '쿨 라임 피지오'에게서 싸늘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일말의 의심 없이 깨 송편인 줄 알고 깨물었는데 설컹한 콩이 치아에 닿는 순간, 콩 송편임을 알아챘을 때처럼. 카페인을 더 몸에 들이지 않기 위해 선택한 '쿨 라임 피지오'의 소개 내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린 빈 추출액이 들어간 라임 베이스에
건조된 라임 슬라이스를 넣고
스파클링 한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음료입니다.
(카페인이 함유된 탄산음료입니다)      


네? 카페인이요?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다 못해 다져졌다. '쿨 라임 피지오'의 카페인 함량은 110mg (355mL Tall 사이즈 기준). 같은 사이즈의 아메리카노가 150mg인걸 감안하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걸까? 카페인을 피하고자 굳이 돈과 노력을 들여 '쿨 라임 피지오'를 택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흑백 화면으로 스쳐 갔다. 아. 제대로 헛수고했구나. 시커먼 커피를 피해 영롱한 빛깔의 '쿨 라임 피지오'를 처음 만났을 때, 카페인 세상에서 날 구원해 줄 청량한 동아줄이 내려온 줄 알았다. 근데 그 동아줄은 썩어도 제대로 썩어 있었다. '쿨 라임 피지오'는 맑고 투명한 액체 속에 생커피콩에서 추출한 카페인이 들어 있다고 한다. 그것도 듬뿍.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고(高) 카페인 함량의 에너지 음료 색깔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실을 떠올리니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반전 스릴러의 교과서,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엔딩을 봤을 때만큼 충격적이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쿨 라임 피지오'의 맑고 순수한 자태를 한 번이라도 마주한 사람은 안다. 그 순결하고 청량한 모습 안에 카페인을 그리 많이 품고 있을 거라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포털 사이트 자동 검색어에 '쿨 라임 피지오'와 함께 ’ 카페인’이라는 단어가 붙어서 나왔다. 여기저기 뒤져보니 배신감에 부들부들 떠는 사람들의 후기가 적지 않았다. 나만 몰랐던 게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이 몰려들었다.      


안도감은 안도감이고 배신감은 배신감이다. 이제 내 선택지가 줄었다. 커피를 대신해 택했던 ’ 쿨 라임 피지오‘를 이제 커피와 같은 선상에 두고 선택해야 한다. ’ 쿨 라임 피지오’를 마시고 싶다면 내가 나에게 허락한 2잔의 커피 중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 이 계산법이라면 난 아마도 또 커피를 택하겠지. 아마 ‘쿨 라임 피지오’를 당분간은 마시지 못할 거 같다. ‘쿨 라임 피지오‘의 탓은 아니다. 애초에 카페인 110mg을 안고 태어난 이 음료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비 카페인 음료라고 생각한 내 설레발이 문제였다. '쿨 라임 피지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영롱하게 태어났다는 거? 악독한 카페인 같은 놈들이랑 접점이 없어 보이는  순수한 외모가 '유죄'일 뿐이다. 


뭐든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자 수없이 다짐했다. 유명인의 사람 좋은 미소에, 귀를 폭격하는 달콤한 말에, 끝이 없이 0이 늘어난 숫자에, 상품의 번지르르한 포장에, 건물의 화려한 인테리어에, 가게의 번듯한 간판에 수없이 속았다.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겉모습이 눈길을 이끌면 '쿨 라임 피지오'를 떠올려야지. 그 안에 품고 있는 고함량 카페인의 숫자를 기억해야지. 속더라도, 배신당하더라도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는 말아야지. 제대로 알아보고, 확인하고, 체크하자. ’ 쿨 라임 피지오‘는 그렇게 나에게 귀한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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