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주의자의 변신
우습고, 유치해
세상 모든 게 하찮게 보이는 중2병 말기 증상은 성인이 되어도 변함없었다. 쿨 & 시크를 모토로 20대를 살았다. 당시 신비주의가 엄청난 유행이었고, 어린 마음에 그게 꽤 멋있어 보였다. 속을 다 터놓는 일은 나를 발가벗기는 일 같았다. 호들갑을 떨며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영 어색했다.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꽁꽁 닫아둔 마음은 어두컴컴한 곳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한 프로젝트가 끝난 후 서로의 수고와 감사를 전하는 식사 자리가 있었다. 무사히 프로젝트를 끝냈다는 후련함에 발걸음도 가볍게 그 자리에 갔다.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는 동안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했다.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상대방은 작은 쇼핑백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런 센스는 약에 쓸래도 없는 나. 왜 이런 준비를 못 했을까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부끄럽지만 덥석 받아 들고, 대신 찐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집으로 돌아와 쇼핑백을 여니 작은 방향제가 들어 있었다. 어느 향 전문 브랜드에서 나온 KYUJANG(규장)이란 이름의 제품이었다. 조선 시대 왕실 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었던 규장각. 그 규장이 맞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품의 히스토리를 읽어 보니 [ 오래된 종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향 ]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제야 그분이 왜 이 향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됐다. 좋은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었다. 종이와 시간, 글자가 어우러진 '향'으로 조용히 그리고 진하게 나를 응원하고 있었다.
규장의 향을 폐 끝까지 가득 채워 마신 후 감사의 메일을 썼다. 이 ‘향기로운 채찍’을 고르기 위해 아끼지 않았을 수고와 작지 않은 마음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곧 상대에게서 답장이 왔다. 큰 건 아니었는데 이렇게 고맙게 받아줘서 감사하다고. ‘앞으로 고마운 마음이 생길 때는 작가님처럼 이렇게 표현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는 말이 답장 메일 끝에 붙어 있었다. 메일을 읽고 잠시 머리가 띵했다.
이게 무슨 콘크리트 같은 캐릭터가 붕괴되는 소리일까? 왜냐 내 인생의 모토는 쿨 & 시크니까. 나란 인간은 속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는 그다지 소질도 없고, 노력하지도 않는 게으른 사람이니까. 그런데 나처럼 표현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니... 내가 생각하는 나와 바깥에서 보는 나 사이에는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
그분의 말을 듣고 일상생활 속에서 표현하는 일에 좀 두려움이 사라졌다.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뭔가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게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앞서 걱정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표현하지 않고 묵혀 버리던 감정을 주저 없이 꺼내 세상에 내놓는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좋으면 좋다. 고마우면 고맙다. 멋지면 멋지다. 힘들면 힘들다. 싫으면 싫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표정과 목소리에 감정을 가득 담아 말한다. 쿨 & 시크의 계절을 떠나보내고 좀 더 투명하고 수다스럽게 살고 있다.
세상이 나를 향해 등을 돌린 거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등을 돌린 건 나였다. 상처 받기 싫으니까, 실수한 모습 보여 주고 싶지 않으니까. 나약한 모습 들키기 싫으니까. 그런데 어차피 나를 상처 줄 사람은 상처 주고, 비난할 사람은 비난한다.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고 금방 들켜 버리는 내 심약한 재질을 포장해 봤자 소용없다. 쿨 & 시크한 척해봤자 넘치게 생각이 많아 전전긍긍하는 내 ’ 본캐‘는 변하지 않는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몽롱해진 정신을 잠시나마 조여줄 카페인을 수혈해 주신 분이니까. 카톡으로 요청한 자료를 받자마자 보내주신 분께 ’ 감사합니다 ‘ 모양의 캐릭터 이모티콘을 보낸다. 덕분에 풍성한 내용이 완성될 테니까. 은행 측의 실수로 헛걸음을 하게 된 상황을 파악하고 민원 메일을 넣었다. 문제가 있으니 개선해 달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의례적인 답장이 오겠지만 나만 불편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누군가 나처럼 또 헛걸음하지 않길 바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오지랖을 부린다. 솔직하게 표현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미리 판단하지 않고 후회 없이 내 감정 앞에 투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