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오답 노트에 한 줄 추가요
집에 도착하니 21세기 산타, 택배기사님이 놓고 간 택배 상자가 나를 반겼다. 며칠 전 주문한 향수가 도착했다. 몇 년째 쓰고 있는 복숭아 향 향수. 이젠 내 코에는 그 향이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오래된 친구다. 반가움에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방만 겨우 내려놓은 후 박스를 뜯었다. 포장 쓰레기를 줄이는 문제로 거대한 두루마리 같은 에어캡(일명 뽁뽁이)도 없고, 불필요한 비닐 포장도 없다. 지그재그로 잘린 종이 완충재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런데도 쓰레기는 적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향수를 하나가 내 손안에 들어오기까지 택배 박스, 종이 완충재, 다시 향수 박스까지 쓰레기가 쌓인다. 산더미 같은 종이 쓰레기 박스가 나온 김에 방 안에 있는 재활용 종이 쓰레기를 함께 내다 버리기로 하고 방을 둘러봤다.
선물 받은 만년필 포장 케이스, 여름맞이 기분 전환용으로 산 팔찌를 품었던 단단한 종이로 된 주얼리 박스, 재발급된 카드와 함께 온 카드사의 팸플릿, 생필품처럼 쟁여 놓고 먹는 알레르기 약과 두통약 박스, 얼마 전 다녀온 전시회 팸플렛, 두툼해서 언젠가 쓰기 좋지 않을까? 하고 남겨둔 각종 쇼핑백 등등 끝도 없이 종이 쓰레기가 나왔다. 나오는 대로 버린다고 생각했는데 방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종이 쓰레기만 이 정도인데 일반쓰레기까지 합치면 대체 이방은 얼마나 많은 쓰레기로 채워져 있는 걸까?
코로나 19로 꽤 오래 만나지 못했던 분을 우연히 만났다. 못 본 사이 어떤 면에서는 그대로였고, 또 어떤 면에서는 변하기도 했다. 첫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함께 있는 분들의 외모 지적을 하는 그 ‘괴팍함‘은 변함없었다. 당사자는 당황스러움에 귀 끝이 달아올랐고, 불편한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예전 같으면 그분의 성격이니까, 좀 과격하지만 관심의 표현이니까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영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의도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깔아뭉개기 위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의 화법일 뿐. 의도가 어찌 됐든 듣는 사람은 불쾌해지는 언행이었다. 본인은 쿨하고, 직설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그가 느끼는 반가움과 내가 느끼는 반가움의 정도는 온도 차가 컸다. 그에게 친근함의 표현인 외모 지적이 내게는 영 불편했던 것처럼. 간단히 인사를 전하고 서둘러 자리를 뜨기 전, 몇 마디를 던졌다. 당신을 웃으면서 다시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각오로.
어머 코로나가 나빴네. 나빴어.
사람들 너무 안 만나셨나 보다.
요즘 이렇게 외모 지적하시면 큰일 나요.
고춧가루가 이에 꼈거나,
마스카라 가루가 눈가에 떨어진 것처럼
당장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면 쉿!
지방흡입술 비용 대줄 거 아니고
보톡스 놔줄 거 아니면
책임질 수 없는 잔소리는 금물!
이런 센스는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이거 습관 되면 큰일인데...
한 번 생각해 보셔야겠어요.
그렇게 톡 쏘고 돌아가는 길, 어쩌면 이분을 다시 웃으면서 만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 안에서 내다 버릴 쓰레기처럼 내 인생의 쓰레기를 내다 버린 기분이었다. 그간 얼마나 오래 인연을 이어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품고 있어 봤자 짐만 되고 먼지만 쌓일 쓰레기라면 일찌감치 버리는 게 내 삶의 쾌적도를 높이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입으로 쓰레기를 내뱉는 순간은 없을까? 내 딴에는 따뜻한 관심의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불쾌하고 불편한 말로 다가온 적은 없었을까? 이 질문에 나는 결코 당당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도 의식하고, 조심하고,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누군가 나처럼 얘기해주지 않은 한 알 수 없으니 귀를 활짝 열어두고 산다. 10번 실수할 걸 8번, 5번으로 줄이려고 애쓰고 있다. 스스로 쓰레기를 내뱉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오면 분명히 사과한다. 상대방은 까맣게 잊었더라도. 누군가의 말, 행동, 생각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겠다. 내 인생이라는 방에서 쓰레기를 하나 내보냈고, 인생의 오답 노트에 한 줄이 더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