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신의 마음을 찰랑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은 날들. 어렵게 만난 자리라 그럴까? 그 시간이, 또 그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고맙고 또 소중하다. 그런데 요즘 통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다. 직업 불문, 세대 불문, 성별 불문. 누구를 만나건 대화의 주제는 깔때기처럼 거의 하나로 모인다. 돈. 세부적으로는 주식 또는 코인 또는 부동산. 이 세 단어를 빼놓고 대화를 이어가기 쉽지 않다.
오래전 자식의 돌잔치에 들어온 금반지를 팔아 샀던 주식이 대학 들어갈 때쯤 열어 보니 집 몇 채 값이 되어 있더라는 도시 전설. 코인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몇 해 전,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샀어야 했다는 뒤늦은 후회. 주택 청약 가점을 위해 아이를 낳는 건 미친 짓이 아닐까 하는 답정너스러운 고민 등등 본인의 투자 상황, 건너 건너 들은 대박 에피소드, 뜬다는 대박 아이템 정보까지... 판에 박힌 이야기들이 오간다. 세 가지다 할 여력도 없고, 관심도 없고, 계획도 없는 나는 저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게 된다. 내가 가진 어설픈 정보로 끼어들어봤자 금세 이야깃거리가 바닥나버린다. 입을 닫은 대신 귀를 연다.
주식. 코인. 부동산. 이 세 단어에만 반응하는 반짝이는 눈들을 본다. 갈수록 사는 건 빠듯하고, 살아갈 날은 까마득하다. 그러니 저 세 단어에만 목을 매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을 누가 대신 책임져 줄 수 없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지금을 투자하는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 다만 그저 아쉬울 뿐이다. 마음 가는데 돈이 가고, 돈이 가는데 마음이 간다. 지금 당신들의 심장을 뛰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관심사가 붕어빵 틀에서 찍혀 나오는 붕어빵처럼 똑같은 딱 저 세 가지뿐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쓰인다.
그러니까 네가 그렇게 궁색하게 살고 있는 거야. 라고 얘기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저 내가 선택한 거니까. 대단한 신념까지 갈 필요도 없다. 난 그저 내 돈복은 내가 일한 만큼이라고 믿고 산다. 그 이상의 돈을 얻을 운명이 아니란 걸 안다. 그래서 옆도 앞도 보지 못하고 그저 지금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그에 합당한(?) 근로소득이 쥐어지는 것에 만족한다. 행여 만에 하나 운이 좋아 불로소득이 생겼다 해도, 언젠가 그와 비슷한 가치의 무언가를 내 인생에서 잃을 거라 믿는다.
요즘 무슨 책을 읽었는지? 재미있게 본 영화는 뭔지? 기분이 울적할 먹으면 힘이 나는 음식은 뭔지? 잔잔한 마음에 훅하고 들어온 최애는 누구인지? 장바구니에 넣어둔 결제 직전의 물건은 뭔지? 최근에 무슨 일로 눈물을 흘렸는지? 코로나가 끝나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바다 건너 땅은 어디인지? 당신의 일상 속 기쁨과 슬픔을 채워주는 하찮은 것들에 대해 듣고 싶다. 실존하는지 알 수도 없는 벼락부자 얘기 말고. 다른 차원에 사는 사람들의 얘기 말고. 숫자에 인생이 덜컹거리는 개미들 얘기 말고. 지금 당신의 마음을 찰랑이게 하고, 가슴을 간질이는 게 뭔지 알고 싶다. 그런 사소함을 나누며 웃고 울고 위로받고 응원하며 살고 싶다.
작고 꾸준한 것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일순간에 세워진 것들은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금세 무너진다. 쉽게 들어온 돈은 쉽게 나간다. 하지만 작은 것들이 촘촘하게 박힌 일상은 일순간 무너지지 않는다. 나이를 들면서 좋은 건 내 인생이 하루아침에 180도 반전을 맞이할 일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거다. 어떻게 말하면 단념이 빠른 거고, 좋게 포장하면 주제 파악이 빠른 거다. 더 이상 허황된 꿈을 꾸지 않는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내가 투자하는 만큼의 결과만 와도 성공이다. 그 이상이면 운이 좋았다는 증거. 그만하면 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