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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10. 2021

칭찬 폭격기의 이면

남들이 안 해주면 내가 하지 뭐


표현하는데 서툰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일까? 학교에서 스티커와 함께 칭찬하는 말을 들을 때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몸은 배배 꼬였다. 그 어색한 순간이 싫어서 조용히 눈에 띄지 않고 졸업하는 게 학창 시절 모토였다. 칭찬을 받으면 ‘고맙습니다.‘ 라는 한마디 인사면 될 걸, ’아니 운이 좋았죠‘라거나 ’제가 뭐한 게 있나요? 누구누구가 다 한 건데요.‘ 따위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곤 했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건 쉽다. 조금만 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를 조련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난 지적하고 다그치고 채찍질하면 더 움츠러드는 성향이다. 대신 격려와 지지를 해 주면 알아서 몸을 갈아(?)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 칭찬의 효능(?)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 칭찬에 늘 목이 말랐다. 그런데 다들 자기 살기 바빠 갈수록 칭찬에 인색했다. 나이가 들고 얼굴이 두꺼워지면서 난 칭찬을 구걸하고, 강요하는데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주말 저녁, 메인 요리로 <불고기>를 한 접시를 올리며 아빠께 묻는다. 답은 정해져 있고, 아빠는 답하기만 하면 된다.      


“어때 맛있지?” 

“응”

“나 잘했지?”

“응 잘했네”     


영혼 없는 짧은 답. 내가 원하는 말이다. 내가 한 거라고는 각종 채소를 썰고, 양념에 재운 고기를 넣고 볶은 것뿐. 양념도 대기업의 연구원들이 수년간의 연구 끝에 찾아낸 황금 비율의 양념장이 다 했다. 그런데도 내가 들인 수고에 대해 콕 짚어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한마디로 칭찬을 듣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세상에 칭찬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몇 마디 말이면 상대방의 얼굴에 함박꽃 같은 미소를 피운다. 고작 말 몇 마디. 큰 에너지나 비용이 드는 일도 아니다. 칭찬의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칭찬의 힘을 믿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넘치게 투척한다. 사람들이 칭찬을 잘 안 해 주니까 나라도 한다. 1만 해도 10배의 리액션으로 칭찬을 쏟아낸다.      


후배가 정리한 페이퍼를 본다. ’ 오 역시 멋져!! 기대 이상이야. 잘했어. 고생했다 ‘라고 톡을 보낸다.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게 보이지만 나쁘지 않다. 이 연차에 난 이 정도는 못했을 거다. 구멍 난 곳은 내가 메우면 된다. 아는데 구멍을 보낸 게 아니리라 믿는다. 늘 더 잘하고 싶어 하는 후배니까. 안보이니까 그대로 보낸 거다. 그 연차에 보이는 건 거기까지니까. 선배가 해야 할 몫을 남겨준 게 감사하다.      


어버이날에 초등학생 조카에게 봉투를 받았다. ㅅㅎ은행에서 나온 봉투에 까만색 매직으로 삐뚤빼뚤하게 쓴 ’ 이모‘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봉투를 여니 천 원짜리가 몇 장이 들어 있었다. 한 달에 몇 만 원을 받는 용돈을 쪼개 나를 위한 봉투까지 준비한 거다. 녀석을 낳은 어버이는 아니지만, 친척 어른(?)을 향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데 이모한테 어떻게 돈봉투를 줄 생각을 했을까? 그간 때가 되면 지갑을 열어 표현했던 애정들이 이렇게 돌아오다니... 뿌듯했다. 봉투를 확인하고 조카에게 말했다. ’ 우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어? 이모는 너 나이 때 과자 사 먹기 바빴는데. 대단하다.‘ 부끄러움에 빨개진 얼굴을 숨기려 제 엄마 뒤로 숨는 걸 보니 얘도 우리 집안 핏줄이 확실하다.       


후배가 상담을 요청했다. 임신과 출산으로 한동안 필드를 떠나 있다가 오랜만에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일도 육아도 잘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었다. 자괴감으로 샤워하며 매일 울면서 출근한다고 했다. 시간에 쫓겨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던지다시피 맡기고,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게 매일이었다. 겨우 지하철 좌석에 세이프하면 이미 몸은 진땀에 절어 있다고 했다. 아침에 나오며 샤워한 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미혼에 출산, 육아 경험도 없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이미 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내가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고 못 하고 싶어서 못하는 게 아니라고. 난 네 상황이라면 감히 이렇게 시작조차 못 했을 거라고. 근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도, 또 일을 시작한 것도 대단한 거라고. 늘 시간에 쫓기고 뭐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조금씩 씻어내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그제야 시멘트처럼 칙칙했던 낯빛에 서서히 홍조가 물들었다.      


언젠가 누군가 물었다. '작가님 혹시 학원 다니세요? 칭찬 학원?' 이렇게 귀가 달달 해지는 말을 이렇게 잘하냐고 했다. 사실, 누가 안 해 주니까 나라도 하자 싶어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명줄을 쥔 윗사람보다 앞으로 더 크게 자랄 어린 친구들에게 더 격한 칭찬을 쏟아낸다. 윗사람에게 하는 칭찬은 자칫 아부가 될 수 있지만, 다음 세대에게 하는 칭찬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 믿는다. 난 미래의 주인공들이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그래서 내 칭찬 한마디가 그들이 쑥쑥 크는데 햇빛이 되고, 물이 되고, 영양제가 되길 빈다.  

     

난 남들이 해내는 결과물이 늘 대단해 보인다. 나는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잘 캐치해 하나의 결과로 만드는 게 놀랍다. 오는 길에 예뻐서 사 왔다는 꽃 한 송이부터 마음속에만 품었던 사직서를 던지고 과감히 인생 2라운드를 시작한 결단력까지... 순간의 선택이건 오랜 고민의 결과건 무엇이든 열매를 맺는 건 분명 박수받을 일이다. 넘치게 칭찬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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