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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17. 2021

가까이서 보면 ‘상극’, 멀리서 보면 ‘자극’

나쁜 예를 수집하는 이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기 전의 일이다. 사무실에 들어선 팀장님이 사무실을 뒤집고, 막내들을 잡기 시작했다. 너저분하게 늘어서 있던 종이 뭉치들을 탈탈 털고, 막내들에게 까마득한 시절에 시켰던 일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했다. 팀장님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화기애애하던 사무실 공기가 금세 싸늘해진다. 언제 비수가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 진상 파악을 위해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소수의 동료들만 모인 채팅방의 문을 두드렸다.      


왜? 왜? 갑자기 무슨 일이야?

동료들이 목격한 팩트들을 조합해 보니 조금 전, 부장님 면담이 도화선인 듯했다. 부장님과 얘기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 벌어진 일이다. 얼굴이 시뻘게져 들어오시는 걸 보니 쓴소리를 들었나 보다. 호탕한 웃음소리만큼이나 목소리도 크고 성격이 불같은 팀장님. 얼굴에 말투에 행동에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람이다. 중간이 없다. 기분이 화창할 때는 따뜻하다 못해 뜨겁고, 천둥·번개 칠 때는 돌풍과 폭우가 어김없이 이어진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개복치인 내게 이런 상황은 괴롭기 짝이 없다. 연차가 쌓이면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이런 상황은 늘 불편하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오들오들 떨며 폭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겁쟁이 양처럼 노트북 뒤에 숨어 사무실 분위기가 정상 온도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동시에 노트북 너머로 팀원들의 표정을 훔쳐본다. 얼굴 가득 ’또 저러네 ‘라고 쓰여 있는 듯 해탈한 표정의 A, 무슨 소리가 들리건 상황이 어떻건 자기 할 일에 열중인 돌부처 B, 두 손을 꼭 쥐고 사태 진정을 빌고 있는 웨하스 멘털 C, 눈치는 쌈 싸 드셨는지 스마트폰 얼굴을 박고 킥킥거리는 막내 D, 모든 게 다 자기 잘못 같아 얼굴이 흙빛이 된 또 다른 막내 E, 그리고 눈을 빠르게 굴리며 분위기 파악에 나선 미어캣 모드의 나까지. 팀장님이 사무실에 던진 감정의 돌멩이는 하나지만 다른 크기와 깊이로 각자의 가슴에 박히고 있었다.      


사무실이 정상 온도로 돌아올 때까지 짧지 않은 시간 사무실 안 사람들을 스캔하고 얻은 결론은 하나다. ’ 팀장님처럼 저렇게 감정적으로 일하지 말아야지.’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감정이 앞선 신경질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개인 공간이 아닌 사무실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가까이서 보면 ‘상극’인 팀장님의 성격은 이렇게 멀리서 보면 나에게 ‘자극’이 된다. 이렇게 일상 속의 ‘나쁜 예’는 나를 한 뼘 더 성장시킨다.        


왜 저러지? 짜증 섞인 궁금증이 피어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살다 보면 내가 가진 상식과 기준으론 이해 못 할 일들이 수없이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열을 내고, 분노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내 이마에 주름만 늘고, 혈압만 오를 뿐이다. 나만 감정적인 사람, 자기감정 컨트롤 못하는 사람이 됐다. 열 오르는 상식 밖의 일들과 마주할 때는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왜 저래?’를 부르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쁜 예’들을 수집한다. 일종의 타산지석(他山之石) 효과를 노리는 거다. ‘왜 저래?’ 하고 넘겨 버렸던 나쁜 예들을 차곡차곡 모은다. 모으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 나쁜 예의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지 시뮬레이션해 본다. 문제와 답을 동시에 묶어 둬야 한다. 그리고 내가 비슷한 상황에 닥칠 위기에 처했을 때, 기억 저장고에 넣어 둔 나쁜 예를 소환한다. 내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 또 누군가에게 ‘나쁜 예‘로 남지 않기 위해 차분히 대처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앞서면 늘 후회가 따라온다. 내가 의도한 바보다 훨씬 큰 상처를 남긴다. 나는 체기가 내려가라고 바늘로 손가락을 찔렀지만, 상태가 안 좋은 상대방은 그 바늘에 찔린 상처가 곪아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는 거다.  


누군가에게 ’ 좋은 예‘가 된다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 나쁜 예‘와 정반대로 행동하는 건 그보다 쉽다. 티브이 속에도, 거리에도, 채팅창 안에도,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에도, 온라인 게시판 안에도 ’ 나쁜 예‘들이 넘쳐난다. ’ 나쁜 예‘들과 마주할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구겨지는 미간을 의식해서 팽팽하게 편다. 오늘도 ’ 나쁜 예‘ 저장소에 데이터가 하나 더 쌓였다고 생각의 방향을 재빨리 돌린다. 불쾌한 감정을 품기보다, 뭐라도 나은 방향으로 매만져 저장하는 게 나를 위해서는 좋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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