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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Oct 19. 2021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신세계

겉모습에 휩쓸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 왔을까?


드디어 ’공기팟 프로‘가 내 품에 들어왔다. 몇 해 전, 유선 이어폰이 수명을 다할 때 다음은 무선 이어폰을 사야겠다 마음먹고 쓸만한 제품을 둘러봤었다. 정품 공기팟이 1순위였지만 몇 가지 이유로 쉽게 구매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쉽게 넘기 힘든 진입장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는 만만치 않은 '가격'. 쉽게 물건을 잃어버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절대 물건을 잃어버리지 않는 타입도 아니다. 그러니 잃어버릴 가능성은 언제든 활짝 열려 있다. 내 기준에 이어폰 치고 고가인 공기팟을 쓰다가 잃어버렸을 때의 그 정신적 충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최소 일주일 이불 킥 감이다. 잃어버린 그 순간을 수없이 리플레이하며 자책할 게 뻔했다. 손에서 놓치는 순간 영원한 이별을 했다는 공기팟 선배 사용자들의 눈물 어린 후기가 나를 멈칫하게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콩나물을 닮은 ’못생김’. 도저히 극복할 수가 없는 모양새 때문에 선뜻 카드를 긁을 순 없었다. ‘갬성’ 디자인하면 어디서도 뒤지지 않는 <사과 회사>는 왜 그런 극악무도한 디자인을 세상에 내놓은 걸까?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그 못생긴 이어폰을 산다는 게 내 머리로는 용납이 안 됐다.      


난 신상이 나오는 대로 족족 사모으는 얼리 어답터도 아니고, 소위 '사과 브랜드 제품 덕후'도 아니다. 결국 눈을 꼭 감고, 지갑 사정에 맞는 제품을 택했다. 정품 공기팟에는 못 미치지만 미친 가성비로 유명한 <대륙의 공기팟>이라 불리는 저가형 무선 이어폰으로 입문했다. 무선 이어폰의 세계는 놀라웠다. 거추장스러운 줄에서 해방된 자유로움은 충전의 번거로움을 이기고도 남았다. 그렇게 무선 이어폰 예찬론자가 된 후 알았다. 나는 무선 이어폰을 쉽게 잃어버리는 타입은 아니란 걸. 물론 분실은 ‘순간의 사고’이지만 어떻게 하면 분실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지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갔다. 그렇게 동고동락한 대륙의 공기팟도 3년이 넘어가니 슬슬 놔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배터리를 완충해도 금세 빨간 불을 깜빡였고, 좌우 배터리가 닳는 속도가 달랐다. 게다가 한 번씩 쇠꼬챙이로 귀를 긁는 듯한 노이즈가 신경에 거슬렸다.


아! 때가 왔구나.
공기팟을 사야 할 타이밍이다!


신상에 관심을 끊고 있는 사이 공기팟 디자인이 바뀌었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상품을 검색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분간 새로운 공기팟 출시가 없을 거라는 전문가들의 확신에 찬 의견은 선택지를 확 좁혀 줬다.(이 글을 어제 썼는데 간밤에 새로운 세대의 공기팟 출시가 발표됐다;;) 브랜드는 정해졌고, 일반 공기팟을 사냐 공기팟 프로를 사냐 둘 중 하나만 택하면 됐다. 둘 사이에 가격의 차이도 있고 디자인의 차이도 있다. 공기팟 프로에는 ‘노이즈 캔슬링‘이 있다. (물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다른 여러 브랜드 제품에도 있다) 기기에 내장된 소음 조절기가 외부 소음을 줄여줘 버스나 지하철 같은 소음이 심한 장소에서도 몰입에 방해받지 않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능이다. 소리에 예민한 내향형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다. 마지막까지 그 못생김 폭발하는 디자인이 마음에 걸렸지만, 눈을 꾹 감고 구매 버튼을 눌렀다.      


주문한 지 하루 반나절 만에 새 무선 이어폰과 마주했다. 대한민국 택배 시스템 만세. 조심조심 인내심을 갖고 치밀한 포장을 뜯었다. 단단한 박스 안에 곱게 자리 잡고 있는 공기팟 프로. 실물 첫인상은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하... 피다 만 강낭콩 꽃을 닮은 얘랑 최소 3년은 함께 해야 하는데... 하... 못생겼다. 공기팟 프로는 나라는 인간이 지독한 외모지상주의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못생김 공격에 혼미한 정신을 추스르고 일단 충전부터 했다. 잠시 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성능 테스트를 해봤다. 제일 궁금했던 노이즈 캔슬링 버튼부터 눌렀다. 띠릭 신호음과 함께 일순간 귀가 먹먹해졌다. 진공 포장된 삼겹살에게 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진공포장으로 신선함을 유지한다는 포장육의 기분을 상상하며 음악을 플레이했다.      


물속에 잠수할 때처럼 외부의 소리는 막에 쌓인 듯 흐릿하고, 음악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노이즈 캔슬링, 노이즈 캔슬링 노래를 부른 거구나... 이 기능을 켜는 순간, 시끄러운 스포츠카 소리부터 돌고래 주파수로 떠드는 사람들의 소리까지 완벽하게 차단됐다. 자갈치 시장 한복판에서도 드뷔시의 <달빛> 본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방에서 내방으로 넘어오는 늘 화가 잔뜩 나 있는 종편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위협하듯 달려드는 오토바이의 소리 공격으로부터 비로소 해방됐다. 꼭 음악을 틀지 않아도 이어폰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면 세상 소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막차 중의 막차를 탔지만 공기팟 프로 찬양하는 노이즈 캔슬링 전도사가 됐다. 아직 노이즈 캔슬링의 신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어린양들에게 영업을 하고 있다. 팀 쿡이 인센티브 한 푼 떼어 주지도 않는데도 참 열심히다. 나의 호들갑 어린 간증에 못 이기는 척 노이즈 캔슬링에 발을 들였지만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시큰둥 하지만 나처럼 일상 속 소음에 민감한 귀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만족도가 높다.


침이 마르도록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홍보하다가 잠시 현타가 왔다. 공기팟 프로의 디자인을 보고 절레절레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됐다. 호떡 뒤집듯 생각이 확 바뀌어 버렸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넘기 힘든 장벽, 디자인을 압도했다. 사실 내가 그 이어폰의 못생김과 마주하는 시간은 하루에 채 1분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케이스에서 충전하고 있거나 아니면 귀에 꽂혀있을 뿐. 이어폰은 핸드폰이나 신발처럼 종일 내 눈에 포착되는 물건이 아니다. 이어폰이 있어야 할 곳은 눈이 아니라 귀였다. 버튼 하나로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준 노이즈 캔슬링. 이 신비로운 기능을 탑재한 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생각한다. 그동안 나는 겉모습에 현혹되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쳐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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