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방, 그 어마어마한 한 끗 차이
요즘 내 일상 속 최대의 화두는 <머리 서기>다. 머리를 바닥에 대고 천천히 발을 올려 물구나무서는 자세. 영어로는 HEAD STAND. 요가에서 ‘살람바 시르사아사나(Salamba Sirsasana)’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자세는 요가 동작의 아버지로 꼽힌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각성하는 효과가 좋아 정신적으로 쉽게 지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
부모님께 유연성을 물려받은 타고난 ‘고무고무수저‘라 몸을 앞으로 폴더폰처럼 접거나 몸을 뒤집어 손발로 지탱하는 일명 ’ 엑소시스트 자세‘도 무난히 따라가는 편이다. 하지만 이 <머리 서기> 만큼은 만만치 않다. 몸을 구기고 찢는 건 잘하지만 근육을 이용해 끌어올리고 중심을 잡는 건 힘들다. 평생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산 사람이 팔과 머리로 몸을 지탱하는 일은 아래로 떨어지는 물을 거꾸로 되돌리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지도하에 몇 번을 시도하고, 집에 돌아와서 각종 동영상을 찾아보며 따라 해도 고꾸라져 바닥에 처박히기 일쑤다. 지구를 머리로 들어야만 하는 슈퍼 히어로의 임무 따위는 없지만, 그저 도전해 보고 싶다. 벽에 기대지 않고, 누군가의 손이 지탱해 주지 않고 오롯이 내 힘으로 달콤한 성공의 맛을 보고 싶을 뿐이다. 하루하루 낡아가는 몸뚱이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어서다.
<머리 서기>를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품고 허우적거리던 내 꼴을 본 요가 선생님은 말했다.
회원님. 누가 쫓아와요?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인생은 선빵이라고 했다. 기선제압. 넋 놓고 있다가 당하지 않으려면 상대방이 생각할 틈을 주지 말고 먼저 치라고 했다. 그래야 널 호락호락하지 않게 볼 거라고 했다. 얼추 맞는 거 같았다. 물어보기 전에 결과를 내놓으니 빠릿빠릿하다고 칭찬했다. 여유 없이 허둥거리는 게 싫어 일찌감치 움직이니 부지런하다고 했다. 미리 점검하고 대안을 품고 있으니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했다.
이렇게 늘 선빵을 날릴 자세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속도에 민감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선 속도에 쫓겨야만 했다. 뒤처지는 건 실패하는 거고, 게으른 건 죄악 같았으니까. 빠르게 결과를 얻기 위해선 옆을, 뒤를 돌아보는 일은 시간낭비에 가까운 사치다.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려야 한다. 문제는 일할 때의 우사인 볼트 모드가 습관이 되어 일상 속에서도 지속된다는 거다. 굳이 빨리빨리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도 조급함의 노예가 된다.
<머리 서기>가 100m 달리기도 아닌데,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얼른 결과를 내고 싶어서 안달일까? 중심도 제대로 잡지 않고 다리를 들어 올리니 올라갈 리가 있나? 배와 팔에 근육이 차지 않았는데 몸뚱이를 오롯이 지탱할 리가 있나? 몸도 제대로 풀지 않고 몸이 버텨주길 바라니 바닥에 고꾸라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미션 클리어에만 혈안이 된 인간이 다음 레벨로 올라가는 건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이다. 아무리 높이 올라간들 바닥이 탄탄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몸이 종이딱지처럼 바닥에 나뒹굴고 등으로 철퍼덕 떨어지기도 하다가 결국 와르르 무너진다. 머리로 몸을 받쳐 세운다는 눈에 보이는 목표에만 안달이 나서 정작 쌓아야 하는 기본들을 놓치고 있었다. <머리 서기>를 위해서는 머리와 양팔이 삼각 모양을 이뤄야 안전한 받침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척추를 바르게 펴고, 배의 힘을 이용해 다리를 들어 올린다. 나 같은 초보는 처음부터 다리를 일자로 펴서 시소처럼 올리는 게 아니라 일단 다리를 접어 낮은 지점에서 무게 중심을 잡고, 서서히 올려야 한다. 그 작은 도전들을 하나하나 이뤄야만 머리로 몸을 세우는 동작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제 ’ 선빵‘ 말고 ’ 선방(善防)‘에 집중하기로 했다. 세우기 무섭게 넘어가는 건 실패한 게 아니라 1초를 버틴 거다. ’이만하면 잘 견뎠다, 무너질 뻔한 걸 잘 막아냈다.’라는 자세로 볼 거다.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 성공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는 마음으로 다시 일어날 거다. 1초 겨우 서 있던 내가 머지않아 3초를 버틸 거고, 언젠가는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머리 서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선빵’ 날리는 데 연연하지 말고 ‘선방’에 만족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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