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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01. 2021

<내 글 구려병>을 위한 셀프 처방

글태기 시즌 면역력을 끌어 올리는 비결  


글 쓰는 사람의 몸은 종합병원 뺨친다. 두통, 허리 통증, 소화불량, 불면증, 디스크, 거북목 증후군, 손목 터널 증후군 등등 종류도 증상도 다른 병들이 한 몸에서 대환장파티를 벌이고 있다. 화석처럼 한자리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짜니 몸이 성할 리 없다. 그중에서 가장 지독한 놈은 ’ 내 글 구려병‘. 이름 그대로 자기의 글이 별로라고 생각해 완성을 못 하고 계속 엎고, 다시 쓰고를 반복하며 자괴감에 몸서리치는 병이다. 짧게는 한 꼭지를 쓰는 동안 앓기도 하지만 상태가 심하면 아예 한동안 글 자체에 손을 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악의 경우 영영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글을 쓰는 한 완치는 불가능하고 그저 병세가 악화되었다가 호전되기를 반복할 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소재를 찾아냈을까? 이걸 이렇게도 풀어내네? 이런 표현은 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이 신박한 결론은 뭐지? 한치의 흠결도 찾아볼 수 없는 영롱한 보석을 볼 때처럼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글을 쓰는 게 맞지. 나 따위가 감히 글을 써보겠다고 ’ 비벼‘ 보려는 게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정해진 마감이 있고, 써내야 할 글이 있을 때는 꼼짝없이 쓰긴 써야 한다. 보통 이럴 때 써지는 건 안타깝게도 '글'이 아니라 '용'이다. 빈 페이지에서 갈 길을 잃고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와 씨름을 하며 용만 쓴다. 다음에는 하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 깜냥도 안 되는 일은 덥석 물지 말자 다짐한다. 몇 시간 째 애꿎은 백 스페이스바에 화풀이하듯 부서져라 두드리며 쓴 글을 지우기를 반복한다. 도저히 답이 없다 싶으면 노트북을 닫아 버린다. 그리고 몇 가지 방법으로 ’ 내 글 구려병‘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책으로 도망간다. 세상의 많은 답을 품고 있는 책 안에 ’ 내 글 구려병‘의 치료제가 있다. 유명 작가들의 글쓰기에 비결을 담은 책에서 내가 찾는 건 글쓰기 스킬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이름난 작가들도 글쓰기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마감 앞에서는 쫄리는 건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현실의 무게감은 차이가 있겠지만 대문호도, 무명작가도 글 지옥 앞에는 평등하다는 진리 앞에 위안을 받는다. 또 내가 쓰고자 하는 내용과 비슷한 책을 2~3권 읽으며 힌트를 얻기도 한다. 어차피 세상에 완벽히 새로운 건 없다. 어떻게 포장하느냐의 문제다. 내용을 복사하는 게 아니라 이미 세상에 나온 포장지는 치워두고 결을 파악하고,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를 풀어 내고 표현할 실마리를 찾는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거리로 도망간다. 일종의 환기다. 몸과 정신의 환기. 텁텁한 공기나 코에 쑤셔 넣으며 노트북 앞에 돌하르방처럼 앉아 있는다고 답이 나오진 않는다. 몸을 움직여야 머리에 피가 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묶고,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무작정 걷는다. 의외로 글감은 길에 널렸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춰있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바깥공기를 마시면 신기하게 돌아간다. 흐르는 물, 불어오는 바람, 산책하는 강아지, 파전처럼 퍼진 채 배를 씰룩이며 낮잠 자는 고양이, 풀씨를 부지런히 쪼고 있는 비둘기, 걸음마를 막 시작하는 아이, 두 발 자전거로 신나게 질주하는 어린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뛰는 러너, 느릿느릿 걷기 데이트하는 연인, 개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할머니 등등 그들이 흘리는 소리, 움직이는 모양에서 소재를 얻고, 그 소재에 살을 붙여 글을 완성한다. 복잡한 미로를 뱅뱅 도는 것 같던 내 눈앞에 출구의 방향을 알리는 빨간 화살표가 나타난 거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칭찬 감옥으로 도망간다. 휴대전화에는 비밀스러운 폴더가 하나 있다. 이름은 <에너지 드링크>. 주로 내가 쓴 글의 댓글이나 글에 대해서 만큼은 오롯이 내 편이 되어주는 담당 편집자들이 보낸 메일 속 ’ 당근‘성 응원, 책의 리뷰 중 기분 좋아지는 문장들을 캡처한 사진들이 모여 있다. 평소에는 그 폴더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 내 글 구려병‘이 발병할 조짐이 보이면 <에너지 드링크> 폴더의 문을 두드린다. 한껏 쭈글쭈글해진 몸과 마음을 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초강력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것처럼 기운이 나는 칭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바닥난 자존감과 사라져 버린 자신감을 채우기 딱이다.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건 익명 게시판에 썼던 글에 달린 댓글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저 글만 보고 단 댓글이다. 본캐로는 말과 글을 다듬어 밥벌이를 했고, 부캐로 운 좋게 책까지 냈다. 하지만 익명 게시판에서 나는 본캐도, 부캐도 아닌 무수한 네티즌 1인일 뿐이다. 내가 살아온 배경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은 그저 글에 대한 순수한 반응이라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정도 필력이면 책 내도 되겠다 ‘는 댓글을 보며 혼자 피식거린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닿지 못할 혼잣말을 한다.


’익명 선생님! 이미 책 나왔고요.

절찬 판매 중이랍니다. 어서 서점으로 GO!‘

    

그럴 때 마다 나는 바다로 도망간다. 바다 이름은 ’그냥 해‘. 태생이 생각과 걱정이 차고 넘치는 나란 인간은 뭔가를 시작할 때부터 고비다. 하기도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만 이리저리 계산하고 결론을 짓는 버릇이 있다. 하나라도 플러스가 되는 게 있어야 몸을 움직이는 나쁜 습관이다. 그래서 인생의 대부분을 미적거리는데 시간을 다 써버렸다. 하지만 그렇게 앉아서 고민만 하다 텅 빈 채로 나이만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 몰라 일단 그냥 해’ 모드 버튼을 시도 때도 없이 누르며 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침표를 찍고 나서 다시 수정한다. 한번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스톱할 수 없는 생방송 같은 세상살이에 비해 글은 일단 써 놓고 수정할 기회와 시간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수십, 수백 번이고 내가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칠 수 있다. 완전무결한 글은 영원히 쓰지 못하겠지만 다듬으며 이전보다 나은 글은 얼마든 쓸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내 글 구려병’이 오는 낌새가 보여서다. 뭐라도 일단 쓰면서 머릿속으로 정리하니 ‘내 글 구려병’이란 놈이 마냥 두렵지 않게 됐다. 아니 발병한다 해도 면역력이 있다면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글을 쓰는 한 영원히 따라다닐 ‘내 글 구려병’. 11월 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 즉 ‘위드 코로나(with COVID-19)‘가 된 것처럼 완치가 불가능하다면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 위드 내 글 구려병‘ 모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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