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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Nov 29. 2021

엄마, 이거 복수는 아니야

일흔 살 엄마의 요가 입성기


유치원도 안 다녔던 나의 본격적인 사회생활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입학식 다음 날, 전날처럼 엄마 손을 잡고 학교로 향했다. 딱딱한 새 책가방 안에 <우리들은 1학년> 책과 필통이 나뒹구는 소리가 날정도로 발을 통통 굴렀다. 사실 신생아급 낯가림을 하는 나에게 낯선 것 투성이인 곳, 즉 학교를 가는 게 즐거울 리 없다. 하지만 발을 구를 만큼 신난 이유가 분명 있었다. 바로 내 손을 잡고 있는 엄마. 장사를 하며 4남매를 키우느라 잠잘 시간도 모자랐던 엄마는 늘 돈과 시간에 쫓겼다. 엄마를 다른 자매, 형제와 나눠 갖지 않고 오롯이 독점할 수 있는 이 순간이 세상 그 어떤 사탕보다 달콤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 없이 혼자 교실에 들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 거다. 낯선 선생님과 어색한 친구들로 가득한 그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징징거리며 뭉그적거리는 나를 교실 안으로 떠밀던 엄마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
엄마,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확신에 찬 눈빛으로 말하던 엄마의 단단한 목소리에 겹겹이 쌓였던 불안을 금세 지웠다. 마음이 놓이자 바닥에 붙어 붙어있던 발이 저절로 움직여 교탁에 바로 붙은 맨 앞자리에 멈춰 섰다. 거기가 바로 어제 선생님이 알려준 반에서 제일 키가 작은 내 자리. 가방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려 힐끔 창문 밖을 보니 엄마 얼굴이 보였다. 엄마가 나를 두고 어디 가지 않는다는 믿음이 차올랐다. 그렇게 3일이 지난 후, 수업이 끝나고 교실 밖으로 나오니 엄마가 없었다. 적응 기간은 끝났고, 이제 혼자 등하교를 해야 하는 시간 온 거다. 빠른 년 생이라 학교를 일찍 들어간 걸 감안하면 엄마는 7살 아이를 3일 만에 혼자 등하교시켰다. 당시만 해도 한 반에 50명이 훌쩍 넘을 아이들 중 제일 작을 만큼 '조그만' 나를 세상에 내던졌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그 시절‘의 이야기다.        


걱정하지 마, 엄마! 내가 같이 가니까.      

NN 년이 흘러 거의 비슷한 말이 다시 모녀 사이에 오갔다. 이 말의 발신자는 ’나‘고 수신자는 ’ 엄마‘. NN 년 사이 정반대가 됐다. 장소도 학교가 아니라 요가 센터로 바뀌었다. 몇 번 슬쩍 미끼를 던졌는데 엄마가 덥석 물어 버렸다.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 노인네가 가면 괜히 민폐 아니냐고 조심스러워하셨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요가 센터 오전 수업에는 오래전부터 엄마 또래의 어르신이 여럿 계셨다. 최근에는 왼쪽 굳어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도 오셔서 열심히 수련하고 계신다. 정확히 그분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다.       


수련 기간이 길지 않은데도 또래보다 유연한 편이라 고난도 자세를 비교적 무리 없이 해낸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격한 찬이 쏟아 진다. 그 좋아  신나게 몸을 구기고 찢는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겸연쩍어 ’ 고무고무 유전자 물려받은 덕이라고 공을 부모님께 돌렸었다. 내가 노력한  아니라 타고난 거니 엄마도 요가를 하면  맞겠다 생각했다. 평소 티브이를 보면서 스트레칭도 종종 하고 계시니 체계적으로 배우면 쉽게 활용하기 좋겠다 싶었다. 특히나 바깥 활동이 쉽지 않은 겨울에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있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앞으로 누워 있을 날이  텐데 그날을 하루라도  미룰  있기를 기대하며 요가센터로 엄마를 이끌었다.      


혹시 안 맞으면 안 해도 된다며 테스트나 한 번 해보자고 가볍게 ’ 당일 수강권’을 끊었다. 미리 큰 그림을 그려둔 나는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난이도 ‘하’의 <힐링 요가>를 공략했다. 내게는 좀 순한 맛이었지만 엄마를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이 숨어 있는 선택이다. 수십 년 전 교실 창 너머로 햇병아리 학생이 된 딸을 지켜보던 엄마처럼, 수업 중간중간 고개를 살짝 돌려 엄마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아직 좀 어색하지만 제법 잘 따라 하신다. 칭찬 폭격기인 선생님은 당근을 퍼부으며 노년의 요가 꿈나무를 이끌었다. 수업이 끝나고 모녀가 나란히 집으로 향하는 길, 엄마께 소감을 물었다. ‘생각보다 재미있네. 선생님도 친절하시고.’ 속으로 ‘Yes!’를 외쳤다. 시작이 반인데 시작을 해버렸다. 시작이 좋다. 성공이다.      


내가 생각한 적응 기간은 3회. 3번까지는 엄마와 함께 수업을 들어 볼 생각이다. 입학 3일 만에 7살 꼬맹이를 세상에 홀로 내던지며 강하게 키웠던 엄마를 향한 귀여운 복수... 는 아니다. 노년의 요린이를 강하게 키울 생각은 없다. 그저 나와 생활 패턴이 달라서일 뿐이다. 내가 주로 듣는 밤 9시 수업은 초저녁 잠이 많은 엄마가 숙면을 취할 시간이니 각자의 생활 패턴대로 요가를 하기로 한다. 내가 요가를 시작하며 얻게 된 안정과 에너지를 엄마도 경험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생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모를 엄마의 그 시간이 덜 아프고, 더 행복한 것들로 채워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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