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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Dec 08. 2021

볼 빨간 후배 H에게

이 세상 모든 후배들에게 전하는 위로

  

답장이 많이 늦었지? 일주일 전,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내밀던 와인 선물 속 큼직한 카드 안에 또박또박 적어 내려간 너의 편지에 이제야 답장을 쓴다. 3년 전, 마지막 만났을 때처럼 우린 또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만났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만 보면 기뻐 꼬리에 프로펠러를 장착한 강아지처럼 달려들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해 주는 널 보니 오래 묵었던 불안한 마음이 사르르 녹았어. 3년 사이 난 주름이 늘었는데 넌 생기가 흘러넘치더라.      


3년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사실 말은 안 했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네 모습을 보고 신경이 많이 쓰였어. 손끝만 닿아도 바스러질 거 같은 과자, 쿠크다스 같았다고나 할까? 구체적으로 뭘 말하진 않았지만 텅 빈 눈빛에서, 피로가 겹겹이 쌓인 얼굴에서, 축 늘어진 어깨에서 무슨 일이 있긴 있구나 짐작했어. 처음 널 만났던 8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면 분명 한 줌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때 우린 프로젝트팀의 막내와 선배로 처음 손발을 맞추게 됐지. 이제 막 일을 시작했던 넌 사무실에서 나는 모든 소음에 토끼처럼 귀를 바짝 세우고 눈을 똥그랗게 뜨며 반응했었잖아. 그 시절의 너를 단 하나의 단어로 기억한다면 ‘새빨간 볼‘이야. 한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나 한결같은 채도를 유지하며 불타오르던 그 볼 말이야. 충청도의 어느 작은 읍 출신인 넌 스스로 이 증상이 ‘촌년병’이라고 말했었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지만 단지 꿈 하나만 믿고 서울로 올라왔던 너의 수많은 처음을 우린 함께 했잖아. 까다로운 출연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부터, 층층이 쌓인 팀원들 사이의 크고 작은 트러블을 다독이는 일까지. 쉽지만은 않았을 10개월 동안,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 모습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프로젝트가 끝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됐을 때, 연신 아쉬워하던 너. 마지막에 헤어지며 앞으로도 계속 선배한테 질척거릴 테니까 내치지 말라고 울먹이던 그 모습이 생생해.     


그 후, 각자 먹고살기 바빠 많아야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였잖아. 사실 24시간 항시 대기 모드의 막내 생활을 하면서 내 맘대로 시간 빼기가 어디 쉬운 일이니? 근데 오랜만에 역전의 용사들이 뭉치는 약속이 잡히면 단 10분이라도 볼 수 있는 상황이면 1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왔잖아. 그때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눈에 선하다. 너도 연차가 쌓이고, 나도 내 길을 가면서 예전보다 만나는 주기는 점점 멀어졌고, 겨우 겨우 시간을 맞춰야 다시 볼 수 있게 됐지. 10개월을 거의 붙어살다시피 하다가 띄엄띄엄 보게 되면서 너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더라. 뭘 해도 귀엽게만 보이는 막내 전용 ‘애착 렌즈’가 서서히 빠지는 거지. 네게도 막내가 생기고, 어느덧 팀의 허리가 되어야 할 연차임에도 여전히 막내 시절의 업무강도와 대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느꼈을 때 안타까웠어. 열심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너였지만 사람에게 ‘운‘이라는 게 너와는 멀어도 한참 멀게 보였거든. 이제야 하는 얘기지만 그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가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 그 생지옥에서 널 구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난 그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니까.  


그래서였을까? 추석인지 설인지 명절에 카톡으로 오랜만에 연락한다며 불쑥 설산이 품은 드넓은 호수 사진을 보내줬을 때 안심이 되더라. 네가 드디어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려고 멀리 여행을 갔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넌 상상치도 못한 답을 내게 던졌잖아. 지금 워홀로 뉴질랜드에 와있다고 했으니까. 그전까지 항상 돈과 시간에 쫓기면서도 병약한 부모님, 넉넉하지 않은 형편 때문에 작고 조그만 막내 월급을 쪼개서 집으로 보냈었잖아. 네게 뉴질랜드행이 얼마나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을지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 말도 안 통하고 기댈 곳 하나 없는 그곳에서 네가 부딪혀야 할 난관들 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아지지 않는 한국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다시피 떠난 워홀이었을 테니까 말이야.     


1년을 계획했던 워홀이 코로나19와 비자 문제로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고, 다시 3년 만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게 됐지. 뱅글뱅글 돌아가며 노릇노릇 익어가는 양꼬치를 앞에 두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널 한 참 봤어. 천천히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가 함께하지 못했던 그 시간 동안 쪼그마한 막내였던 네가 거인이 되어 있더라. 함께 했던 프로젝트가 끝난 후 크고 작은 팀들을 거치며 넌 마음의 병이 생길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고, 말 그대로 살기 위해 ’ 잠시 멈춤’을 택해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탄 거였으니까. 그곳에서 운 좋게도 다시 못할 경험도 하고, 애써 이쁨 받으려, 잘 보이려, 칭찬받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널 있는 그대로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으니까. 물론 외노자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찡긋 웃으며 말하는 네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몰라. 그제야 마음이 놓이더라. 순두부처럼 흐물흐물하고 순둥순둥 하기만 했던 네가 이제는 티타늄 벽돌처럼 단단해진 거 같아서.     


헤어지기 직전, 가슴에 곱게 품고 온 내 책 두 권을 내밀며 사인을 부탁할 때 말이야. '선배가 하고 싶은 일을 이뤄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멋져요 선배!’라고 카페 안 사람들의 이목이 다 모일만큼 큰 소리로 말했을 때 사실, 귀 끝이 불타오를 만큼 부끄러웠어. 근데 그 민망함은 순식간에 뿌듯함으로 바뀌더라.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살아온 네가 부끄러워 하지 않은 선배가 된 거 같아서. 아니 자랑스러운 선배가 된 거 같아서. 다시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긴 수다로 지칠법도 한데 발끝에 힘이 가득하더라. 네게 잘 보이고 싶어서, 네가 ‘이 사람이 내 선배다’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도 게으름 피우지 말고 살아야겠다 다짐했어. 그래야 다음에 만났을 때, 나보다 내 성과를 더 기뻐해 주는 너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 많은 사람들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서른의 문턱에서 물론 많은 고민이 있겠지?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설렘, 걱정보다는 도전, 불안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너의 내일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분명 넌 잘해 낼 수 있을 거야. 다음에 만날 때, 우린 또 어떤 모습일까? 분명 안갯속을 걷는 것 같은 날들이겠지만 그 안개는 언젠가 걷힐 테니 헤매더라도 우리, 포기하지 말고 가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를 만큼 숨도 차고, 버겁기도 하지만 이렇게 가끔 만나 서로 에너지도 채워주면서 가보자.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끝에는 분명한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 ‘선배가 후배보다 돈을 많이 받는 이유는

  후배가 힘들 때, 맛있는 거 사주면서

  힘든 얘기 들어주기 위해서‘라는

  내 입에서 나왔지만 나도 잊고 살았던 이 말을 

  오래도록 기억해 줘서 고마워.

  그 말을 너도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했을 때,

  내가 제법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어.

  네가 전해 준 이 기쁨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후배들에게 열린 지갑과 열린 귀를 가진

  선배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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