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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an 19. 2022

이름 모를 독자님께

#2021년독서기록을 검색했을 때 생긴 일


안녕하세요. 남들의 기록을 훔쳐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자 독자님이 꼽아 주신 올해의 책 중 하나를 쓴 호사 작가입니다. 매년 새해 전후로 연례행사처럼 실천하는 습관이 하나 있어요. 바로 다른 사람들은 올 한 해 어떤 책을 읽었나 독서 정산 목록을 검색해 보곤 합니다. 누군가가 읽었던 책 목록을 훑어보며 1년 365일 똑같이 주어진 시간 더 많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새해에는 더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야지 다짐하며 다음에 읽을 보석 같은 책을 골라내기도 합니다. 2021년을 책으로 채운 사람들의 기록 속에서 우연히 낯익은 책을 발견하게 됐어요. 제가 쓴 책도 독자님이 꼽은 <올해 읽은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로 당당히 한 자리 차지한 거죠. 제가 이렇게 놀란 건 저는 제 책 제목으로 검색한 것도 아니고 그저 #2021년독서기록 이라는 키워드를 넣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제가 쓴 책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터라 이 상황이 믿기지 않더라고요. 1년이면 수천, 수만 권의 책이 나오고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읽었던 여러 책 중에서도 제 책이 있다니. 세상에 이런 일도 생기네요. 혹시나 지인이나 지인의 지인이 아닌가 다른 포스팅도 뒤져 봤는데 성별, 나이, 사는 곳, 직업, 취미 어느 하나 저와 공통분모가 없는 분이더라고요. 공통점이라면 동시대에 대한민국 땅에 사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뿐. 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언젠가 독자님께 닿을 거라 믿으며 일단 씁니다.     


책을 펼치기 전까지 ‘호사’라는 작가를 알지도 못했고, 그저 서점에서 표지가 맘에 들어서 책을 샀다고 하셨죠? 근래에 읽었던 비슷한 류의 에세이 중에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고, 삶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친구들한테도 추천을 많이 해줬다는 코멘트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광대와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혼났습니다. 특히 그 후에 읽은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님의 베스트셀러 책 보다 제 책이 더 좋았다는 부분에서는 육성으로 큰 웃음이 터지고 말았어요. 네. 그래요. 저는 속물이니까요. 비교해서 칭찬해 주시니 한 방에 딱 와닿더라고요. 한여름 쏟아지는 국지성 폭우처럼 아낌없이 퍼부어주신 칭찬에, 독자님이 어디 계셨는지 몰라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모두 큰절을 올렸어요. 물론 마음으로요.


운 좋게 글자들을 다듬어 먹고살곤 있지만 저는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업계의 톱클래스도 아니고 그렇다고 인생의 풍파를 헤쳐온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러니 책을 내는 일은 제 인생에 없는 일인 줄 알았어요. 많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인생에 한 번쯤 꿈꾸는 막연한 로망쯤으로 치부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다 덜컥 책을 내게 된 건 제가 특출 나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그저 꾸준히 존버(존중하며 버틴)한 덕에 결과를 얻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언젠가 책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계산을 깔고 브런치의 문을 두드렸어요. 처음에는 얼른 결과를 내고 싶어서 약은 글을 썼어요. 그런데 현실은 차갑더군요.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글을 쓰며 이게 무슨 헛짓거리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폭풍우 치던 마음이 잔잔하고 고요해지는 경험을 하며 그게 좋아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했어요. 누가 보든 말든 일기를 쓰듯 꾸준히 글을 쓰면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글 근육이 차올랐나 봐요. 반응도 생기고, 구독자도 늘고, 여기저기 글이 공유되고 그러다 출판사의 제안을 받는 믿을 수 없는 일까지 생겼어요.    

  

일기는 일기장에나 쓰지 종이 아깝게 책은 왜 내냐는 비난이 두려워 몇 번은 출판사의 제안을 고사했어요. 도망치기 선수다운 선택이었죠.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 책들을 종종 만났던 독자의 입장으로 이런 글이 책이 된다는 게 의아했거든요. 막연하게 내 이름 박힌 책을 내고 싶었던 건 사실이었지만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더라고요. 당장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글도 멘털도 탄탄하게 단련한 후에 책을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삶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제겐 책을 내는 일도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중 하나였어요. 정신 차려 보니 저는 이미 계약서를 썼고, 약속을 지키려 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다듬으니 어느새 실물 책이 나왔더라고요. 이런 일은 인생에 한 번 뿐이겠구나 싶었는데, 희한하게 또 두 번째 책까지 내게 됐어요.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보다는 ‘일단 해보자!‘라고 몸이 먼저 실행하니 얻을 수 있는 결과였어요.  


사실 글을 쓰는 동안은 창문 하나 없는 사방이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방에 갇혀 쉼 없이 벽을 두드리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내가 손 아프게 두드린다고 이 소리가 누군가의 귀에 닿을까? 여기서 이 글 지옥에서 탈출할 날은 올까? 막막하고 그저 답답하기만 했어요. 편집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서로를 쪼아가며) 더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고 그들의 가슴에, 머리에 가닿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수많은 제작진 중 1인으로 슬쩍 묻어가도 되는 제 밥벌이 판, 방송과 출판은 분명 다르더라고요. 둘 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출판에서는 오롯이 ‘호사‘라는 필명 하나에 의지해 독자들 앞에 글로만 서야 하는 거죠.   

   

솔직히 말하면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딱 1초 기쁩니다. 지금까지 겪었던 경험과 해왔던 내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다고 인정받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 이후 대부분의 시간은 괴롭습니다. 제 돈 들여 책을 냈다면 망해도 오롯이 제가 감당하면 되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돈이 들어갔다면 ’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작가에게 있으니까요. 모자란 아이디어, 부족한 필력, 한 없이 떨어지는 인지도 등등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작가가 쓴 책을 선택해주시고, 감동해 주시고, 다른 분들에게 추천까지 해주셨다니 회색 글 지옥 방에서 괴로워하던 날들이 씻은 듯 사라져 버려요.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감사의 말을 모아다가 독자님 품에 안겨 드리고 싶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또 언젠가 독자님의 마음에 점이 찍히는 글을 꾸준히 쓰는 작가가 되는 거겠죠.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지만 저는 마음을 먹으면 언제가 됐든 어떻게든 결과를 내는 사람이니까. 지금처럼 포기하지 않고 게으름 부리지 않고, 글을 쓰겠습니다. 한 해를 수놓은 수많은 책 중 제 책을 애써 꼽아 주신 독자님의 그 애정과 정성이 부끄럽지 않게 꾸준히 달려가겠습니다. 날이 춥네요. 건강 잘 챙기시고요. 언제나처럼 안전하고 따뜻한 날들 되시길 빕니다. 또 다른 새책을 펼칠 날을 기다려 주세요.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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