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61개의 도시락>을 보고서
겨울밤은 길고 깊었고, 배는 고팠다. 하지만 난 어느새 그 시간에 뭘 먹는 걸 허락하지 않는 늙고 까다로운 위장을 가진 사람이 됐다. 요동치는 뱃속을 달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랜만에 넷플릭스에 들어가 눈으로 허기를 채울 영상들을 뒤졌다. 여기저기 기웃거린 끝에 호기심의 불꽃이 반짝하고 들어온 건 일본 영화 <461개의 도시락>. 특별한 사전 정보도 없었다. 그저 제목만으로 461개의 화려한 도시락 열전이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 영화는 이혼 후 사춘기 아들을 위해 고등학교 3년 내내 도시락을 싸준 아빠의 이야기다. 일본의 힙합 밴드 ‘도쿄 넘버원 소울 세트’ 멤버 와타나베 토시미의 에세이 [461개의 도시락은 아버지와 아들의 남자와 약속]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제목에 충실하게도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정성 가득한 도시락이 나온다. 약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끝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내게 남은 건 일본의 사계절이 담긴 도시락도, 봄 햇살 같은 꽃소년의 미소도, 서툴지만 찐한 아빠의 사랑도 아니었다. 야리야리한 생김새를 가진 조연 배우의 대사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뮤지션 아빠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열심히 도시락을 싼다. 하지만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사춘기 아들이 아빠의 정성을 고스란히 알아줄 여유란 없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게 좋다며 정성들여 싸준 누에콩을 넣은 밥이 더운 날씨에 상하는 바람에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 제대로 망신을 당한 아들. 집으로 돌아와 아빠를 원망하며 사춘기의 예민함을 한껏 폭발한다. 도시락도, 아들과의 관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빠. 일상은 엉망이어도 일은 해야 하니 여느 때처럼 녹음실로 향한다. 심란한 마음을 다독이며 녹음한 후 스태프들에게 괜찮은지 묻는다. 어린 스태프는 한참을 뜸을 들이며 답하기를 주저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예민해진 뮤지션의 자존심을 긁는 건 아닐까? 억눌렸던 뮤지션의 감정이 폭발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하지만 한없이 잔잔한 이 일본 영화는 뾰족한 갈등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일본 영화 특유의 착하지만 묵직한 한방을 남겼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다음 테이크가 베스트일 거 같아요
아! 이렇게도 말할 수 있구나. 지금 테이크가 별로라는 걸 이토록 부드럽고 희망적이게 말할 수 있구나. 내가 만약 이번 테이크가 어떻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아마 난 ‘음... 나쁘지 않아요. 괜찮은데요...’ 하면서 어물쩍 넘어갔을 게 분명하다. 별로라고 말하기엔 상처 주는 것 같고, 좋다고 하기에는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나는 상대와 나를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변명 뒤에 숨어서 얼마나 많은 미적지근한 ‘괜찮은데요?’를 남발했던가? 조금 더 일찍 이 영화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나란 인간의 대부분은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 어제보다 오늘은 뭐라도 하나 더 경험하고, 얻고, 깨닫는다.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이 덜 예민하고, 어제 보다 오늘이 덜 무식하고, 어제 보다 오늘이 덜 까다롭다. 퇴보, 퇴화, 후퇴 같은 단어는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1g이라도 나은 인간이 된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거다. 이런 믿음을 주문처럼 외우며 산다. 저 스태프의 말이 내게도 적용된다면, 지금의 흐름이라면 나도 다음 테이크가 베스트일 게 분명하다. 포기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고, 손을 놓고 싶다가도 분명 베스트일 다음 테이크를 위해 한 번 더 단전에 힘을 빡 주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뗀다. 포기하지 않는 한 분명 베스트 테이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