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보이콧 사건의 전말
어릴 때부터 명절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다. 교통편도 만만치 않은 시절, 충청도 첩첩산중 시골 마을까지 가는 지겨움. 그건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는 즐거움, 그들이 건네는 용돈을 받는 기쁨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휴 후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명절 1+1 특별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다. 명절 동안 각자 차곡차곡 스트레스를 적립한 부모님은 사소한 삐걱거림을 불씨 삼아 어김없이 부부싸움을 벌였다. 명절 때마다 반복되는 냉기 가득한 집안의 공기를 마시는 게 숨 막혔고 눈치를 보느라 괴로웠다. 내가 머리가 커가는 속도에 비례해 할머니, 할아버지도 차근차근 늙어갔다. 그들을 대신해 어느 해부터 이 집안의 장남, 즉 아빠가 살고 있는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장손의 딸로 태어난 덕분에 명절의 그림자를 오롯이 온몸으로 체험했다. 덕분에 명절을 향한 분노는 해가 갈수록 크고 선명해졌다.
장손의 집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건 곧 맏며느리인 엄마와 그 식솔들이 제사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치우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명절이 있는 달이 시작되면 집 안과 밖을 정리한다. 차근차근 산더미처럼 쌓인 재료를 다듬고 잘라서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짬’이 차면서 차츰 손에 익었다. 우리는 비효율은 못 참는 한국인이니까. 비효율의 결정체인 제사 음식을 만들 때도 최소한의 시간과 에너지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기름 냄새와 싸우며 반나절 넘게 기계처럼 전을 부치고 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지만 이건 충분히 참을 수 있다. 명절이 끝나도 한동안은 묵은 명절 음식을 질리도록 먹어 치우는 일도 제법 익숙하다. 조상덕 본 사람들은 명절마다 해외여행을 하고 조상덕 못 보는 사람들만 제사상에 절한다는 웃픈 농담도 부처님의 미소를 머금고 넘어갈 수 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다.
한바탕 친척들이 다녀가고 나면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남았다. 성적, 대학, 외모, 연애, 취업, 연봉, 결혼, 육아, 집 등등 걱정 가득한 잔소리는 명절 선물세트와 함께 날아든다. 그런 걱정을 들을 때마다 뭔가 난 단단히 틀려먹은 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꿉꿉한 기분을 안고 내 방으로 들어와도 편치 않았다. 어른들이 가득한 거실을 피해 자그마한 내 방으로 몰려든 미성년자들 때문이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호기심 많은 미래의 주인공들은 내 방도 뒤집고 내 속도 뒤집기 충분한 존재들이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책장이며 화장대 위 반짝이는 물건들에 눈독을 들이던 호기심 많은 녀석이 사고를 쳤다. 지구 반대편 로망의 도시, 런던에서부터 조심조심 품에 안고 온 내 첫 유럽 여행의 전리품인 스노우볼을 깨뜨렸다. 그저 땅 위에 우뚝 서 있는 건물일 뿐인데도 이토록 감동을 줄 수 있구나 처음 느낀 빅벤, 런던의 상징 런던 아이, 빨간색 2층 버스 모형이 오밀조밀 들어간 스노우볼. 내 영국 여행의 모든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기념품이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말라비틀어진 빵 쪼가리를 씹으며 식사비를 아껴 모은 돈으로 과감히(?) 지른 스노우볼을 시원하게 깨뜨리고 말았다. 연약한 스노우볼에 조심성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 시절 아이들의 손이 닿는 순간부터 조마조마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걱정했던 일은 현실이 되고야 만다.
당황한 아이는 회색 시멘트 반죽을 뒤집어쓴 듯 딱딱하게 굳었고, 다른 녀석들은 남의 일이라고 놀리기 바빴다. 그 당시 나는 이미 대학도 졸업한 성인 of 성인이니 일단 놀랐을 아이부터 안심시켰다. 흘러나온 물에 양말이 젖을까, 날카로운 유리에 발이 찔릴까 일단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그 후 쓰린 가슴을 안고 내 마음처럼 산산조각 난 스노우볼의 잔해를 치웠다. 불 벼락같은 화를 낼 줄 알았던 스노우볼의 주인이 별다른 리액션이 없는 게 오히려 더 두려웠던 걸까? 도망치듯 내 방을 빠져나간 아이는 거실에 있던 부모의 품에 달려들었고, 울음이 터지기 직전인 아이를 보고 놀란 그들은 내 방으로 달려와 사건 현장을 확인했다. 소중한 내 새끼가 놀라 울먹이게 만든 몹쓸 정체가 뭔지, 또 다친 곳이 없는지 체크하 후 부모는 아이를 그대로 품은 채 돌아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전히 온기가 남아 있는 원래 자리에 앉았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지만 그렇게 내 가슴에는 크고 깊은 상처가 남았다.
보상은커녕 사과도 없었다. 돈 버는 사회인이니 놔둬봤자 먼지만 쌓일 그깟 장식품 따위는 내 돈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능력쯤은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좀 전까지 후려치기 바빴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올려치기 당했다. 오르내리는 속도가 롤러코스터 급이라 멀미가 날지경이다. 비슷한 물건이야 돈과 시간을 들이면 구할 수 있겠지만, 내가 직접 런던에 가서 고르던 추억이 담긴 그 스노우볼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미성년인 아이가 한 실수는 그렇게 조용히 넘어갔다. 친척들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 후 뒷정리를 하며 그 사건의 전말을 부모님께 공유했다. 명절 내내 손님 치르기에 지칠 대로 지친 부모님이 보기에 그 사건의 책임은 자기 물건 간수를 제대로 못한 내 잘못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물건이었다면 애초에 애들이 오기 전에 안 보이는 곳에 잘 뒀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를 탓했다. 그제야 생각났다. 몇 해 전 명절, 고등학생 시절의 동생이 용돈을 모아 샀던 게임기, 모자, 가방 등을 친척의 어린 자녀들에게 반강제로 빼앗겼을 때도 똑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나는 스노우볼을 잃었고, 동시에 아이의 실수에 관대하지 못한 속 좁은 어른이 됐다.
이 사소한 사건을 계기로 그간 쌓아온 명절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큰집의 ‘참한‘ 딸이 되는 걸 과감히 그만뒀다. K-딸내미들의 DNA에 깊숙이 박힌 책임감 따위는 냅다 던지고, 명절의 책임들로부터 도망쳤다. 내가 빠진 자리에는 또 누군가가 혹사당하겠지만 일단 딱 눈을 감기로 했다. 다년간의 사회생활을 통해 충분히 안다. 일할 사람이 없으면 일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걸. 산처럼 쌓인 명절 노동을 뒤로하고 근처 카페를 가거나 큰맘 먹고 호캉스를 가기도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멩이처럼 ’어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마음을 쿡쿡 찔렀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이 불편했다. 인자한 척, 너그러운 척 ‘좋은 사람 가면’을 쓰고 불합리와 불쾌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내 안의 어린이를 꾹꾹 누르고, 완숙한 어른인 척해야 하는 상황이 명절 때마다 반복 재생됐다. 나이를 먹는다고 꼭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나를 비롯한 주변의 많은 만 19세 이상의 남녀만 봐도 알 수 있다. 강요당하는 배려, 마음에 없는 희생, 일방적인 양보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정중히 사양하겠다. 진정한 어른이란 날뛰는 감정과 흔들리는 생각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난 여전히 철없이 없고, ‘덜 자란 나 새끼‘를 데리고 살기도 빠듯하다. 언제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다른 건 모르지만 명절의 ’ㅁ’이 빼꼼 발을 내밀어도 내가 몸서리치지 않으면 어른에 한 발짝 가까워졌다는 신호라는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