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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r 14. 2022

두피로 느낀 성장의 기쁨

침묵의 응원과 칭찬 떠벌리기  


내 한마디에 일순간 새빨갛게 달아오른 귀 끝이 거울로 보였다. 뿌리 염색도 마무리되고 클리닉이 진행 중이었다. 지루한 시간도 서서히 끝이 보여서였을까? 고생했을 미용사들에게 별생각 없이 던진 내 말 한마디 때문에 잔잔하게 분주했던 미용실 사람들의 얼굴에 팝콘 같은 웃음이 팡하고 터졌다.      


내 말이 향한 곳은 담당 미용사의 어시스턴트 스태프. 이제 막 미용계에 발을 담근 초보 스태프를 보며 신입 특유의 ‘열심뿐인 열심’에 대해 글을 쓴 적도 있다. 그를 처음 본 게 11월이었으니 벌써 4개월이 흘렀다. 그때나 지금이나 듬직한 포스로 묵묵히 일을 하는 모습은 변함없지만 처음과 분명 달라졌다. 그분이 잠시 뭔가를 가지러 스태프 룸으로 사라진 사이, 수 년째 머리를 맡긴 담당 미용사에게 물었다.      


저분 지난 11월에도 있었던 분 맞죠?

그사이 무슨 일 있었어요?

손끝에서 자신감이 가득해요!

전이랑 확실히 달라요.  

실력이 일취월장이네요.     


손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거 처음이네요.

진짜 편안하셨나 보다.

이렇다 저렇다  잘하시잖아요.     


그니까요. 근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칭찬은 크게 크게 해야죠.      


내 말을 들은 미용사는 얼른 어시스턴트를 불렀다. 그리고 내 칭찬을 고스란히 전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분의 귀가 불타올랐다. 마스크로 가려 있긴 했지만 볼도 빠르게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모르긴 몰라도 입꼬리도 천장까지 닿을 듯 올라갔을 거다.      


선생님, 오늘 집에 가서 일기 써야겠다!     


그러게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감사하죠. 머리 편하게 해 주셔서.

J쌤이랑 오래오래 같이 해주세요.       


오래 머리를 맡긴 미용사가 지난 11월 독립해 새로 차린 곳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손발을 맞춘 초보 스태프. 처음 머리를 맡겼을 때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어색함이 두피로 닿았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힘은 잔뜩 들어갔지만 전혀 시원하지도, 피로가 풀리지도 않은 손길. 머리카락이 당겨지고, 귀에 물이 들어갔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미용사와 어시스턴트에게 머리를 맡겼지만 처음 느끼는 어설픔이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분은 진짜 초보 of 초보구나. 그러니 딱히 컴플레인을 할 것도 없었다. 베이스가 없으니 앞으로 성장할 일만 남은 사람이다. 샴푸대에 누워 초보 어시스턴트에게 머리를 맡기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내 신입 시절을 떠올리기 바빴다. 이 분보다 훨씬 우당탕탕, 삐걱삐걱, 안절부절못하던 그 시절의 나를.     


나는 그 초보 딱지를 완전히 떼는 데 몇 년이 걸렸는데 이 분은 고작 4개월 만에 눈부신 성장을 했다. 처음 머리를 맡겼던 그날, 섣부르게 불편함을 호소했다면 이만큼 성장했을까? 난 채찍보다 당근의 힘을 믿기에 그때 침묵을 택했다. 어설픈 조언보다는 묵묵하게 기다려주는 게 고마웠던 초보 시절의 내가 바랐던 응원이었기 때문이다.          


2시간의 대장정 후 제법 사람 꼴이 됐다. 계산하고 ‘사람 맹글어준’ 분들께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어느 때보다 힘찬 인사가 돌아왔다. 미용실 문을 나서며 벌써 다음번 미용실 갈 날짜를 꼽아 봤다. 다음번에 갔을 때는 또 얼마큼 성장했을지 궁금하고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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