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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1. 2022

코로나19로 인한 미각 상실의 시대

유일한 삶의 낙을 잃은 자의 절규


 

이거 맛있어?     

산에 갈 때 가져가려고 간편하게 개별 포장된 약밥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총알 배송의 나라답게 주문한 지 하루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묵직한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떨리는 가슴을 안고 조심조심 박스를 열었다. 5열로 가지런히 선 위풍당당한 ‘약밥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포장 겉면에 적힌 ‘맛있게 먹는 법’부터 읽어 내려갔다.     


실온에서 1시간 정도 자연해동해 주세요.

전자레인지 사용 시 40초 정도 가열하시면 됩니다.
 

1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은 없으니 봉지째 들고 전자레인지로 향한다. 띠로리. 40초 후 갓 쪄 낸 듯 김이 폴폴 풍기는 약밥이 완성됐다. 후~하고 입김을 불어 뜨거운 기운을 몰아낸 후 한입 베어 물었다. 국내산 찹쌀이 쫄깃하게 씹히고, 중간중간 오독오독한 견과류와 쫀득한 마른 과일이 느껴진다. 그런데,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일반 밥보다 탱글하고 고슬고슬한 질감은 느껴지는데 어떤 맛인지 느껴지지 않는다. 같이 시식했던 동생에게 물었다.      


“이거 무슨 맛이야? 맛이 있긴 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최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3월 초, 덜컥 코로나에 걸렸다. 2년 넘게 조심하며 살면서도 언젠가 걸릴 줄은 알았지만 이때 걸릴 줄은 몰랐다. 며칠 전부터 몸이 축축 처지더니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목이 칼칼했다. 자가 진단키트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일어났을 때도 목의 불편함은 여전했다. 보통 목감기가 아니구나 싶은 ‘쎄‘한 기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서 신속 항원 검사를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는 나를 조용히 불렀다. ’ 확진’이니 어서 PCR 검사를 받으러 가라고 했다. 의사가 쥐여준 소견서를 품에 안고 10여 분 거리의 선별 진료소로 향하는 동안 기분이 얼떨떨했다.   

    

곧바로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면도칼로 만든 주스를 들이켜는 듯한 고통이 목을 괴롭혔다. 확진 3일 차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인어공주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그날을 정점으로 증세는 나아졌고, 무사히 자가격리를 끝냈다. 일주일간의 격리를 마치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 있는 힘껏 들이 마신 바깥공기는 다디달았다. 코로나에 걸릴까 조마조마하며 지냈던 시간. 확진자가 되고 보니 그 두려움은 씻은 듯 사라졌다. 숨죽이며 보낸 2년의 시간이 억울할 만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격리 기간 동안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 둔 <To Do List>들을 클리어해 갔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이 나열되어 있는 그 페이지에서 단연 가장 많은 건 먹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알던 맛이 아니었다. 커피도, 떡볶이도, 샐러드도, 맥주도, 냉면도, 갈비도, 치킨도. 기존의 내가 알던 맛이 100%라고 쳤을 때 심하면 30%, 대부분은 70%,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85%를 넘지 못했다. 모든 음식의 맛은 벤티 사이즈 컵에 에스프레소 샷 하나만 넣은 후 물을 가득 부은 것처럼 흐릿하고 밍밍하기만 했다. 냄새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거라고는 오직 식감뿐이었다. 미각이나 후각 상실에 따른 식욕부진. 코로나 후유증의 대표 증상이다.     


음식에서 향과 맛이 지워지니 일상도 맹맹해졌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누구와 먹을지는 하루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미각상실. 일평생 맛있는 음식에 지배된 삶을 살아온 나라는 인간에게 이보다   독한 벌은 없다. 딱히 식욕도 없고, 속이 쓰리기 전까지는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못한다. 남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 입안에 침이 고여야 하는  정상인데  몸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눈을 뜨면  숟가락이라도 밥을 밀어 넣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음식이 보이면 먹는다. 하지만 예전만큼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없다.      


무슨 맛인지 몰라서 늘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거 무슨 맛이야? 맛이 있긴 있어? 내 입에는 지우개로 맛을 싹싹 지운 것 같은 심심한 백지 같은 맛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없던 맛도 조금은 더 느껴지는 기분이다. 좀 더 섬세하게 맛을 하나하나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잠든 미각 세포를 깨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언제쯤 미각이 돌아올까? 돌아오긴 할까?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삶이 얼마나 맹숭맹숭할까? 덜컥 겁이 났다. 사는 맛도 잘 모르겠는데 먹는 맛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고무타이어 같은 빵을 씹고, 연탄가루 푼 것 같은 커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계속 글을 쓰면서 글 쓰는 감각이 예민해졌던 것처럼, 아무 맛이 안 난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먹다 보면 잃어버렸던 미각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안고 일단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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