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입긴? 쭈굴미 없는 당당한 사람이 입지!
평일 대낮, 경기도의 남쪽 끄트머리 낯선 신도시 한복판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첫 번째 미팅이 예상보다 일찍 끝났고, 다음 미팅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미 커피는 마실대로 마셨으니 몸에 카페인이 더 들어갈 곳이 없다. 다음 미팅 시간까지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근처 대형 쇼핑몰로 향했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쇼핑몰 공기인가? 코로나19 여파로 사람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해 다녔고, 대부분의 쇼핑은 온라인으로 대신했다. 행여 필요하더라도 예전처럼 여유롭게 아이쇼핑하는 일은 불가능했고, 적을 향해 돌진하는 용맹한 전사처럼 목표한 물건만 딱 구매하고 매장을 빠져나오곤 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각종 해제들이 풀리고, 서서히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이 변화가 아직 어색하긴 하지만 서서히 적응 중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한창 옷을 사들이던 시절 문턱이 닳도록 갔.었.던 SPA 브랜드 매장으로 향했다. 여느 때처럼 입구 앞에는 이번 시즌을 대표할 반계절을 앞서 나온 신상 템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곧 시작될 여름을 대비해 강렬한 색감, 가벼운 소재의 옷들이 즐비했다. 당장 어느 산호섬 해변가에서 나뒹굴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의 옷들이었다. 살 건 아니지만 다른 손님들에 뒤섞여 옷들을 구석구석 들춰봤다. 그런데 이상했다. 옷이 대부분 반 토막이었다. 블라우스도, 티셔츠도 손바닥만 한 했고, 반바지나 치마도 겨우 한 뼘을 넘을 뿐이었다. 키즈 섹션에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고개를 들어 표지판을 봤다. 성인 여성 섹션이 맞았다.
배꼽 위까지 훤히 보이는 짧은 상의와 팬티만 간신히 가리는 초미니 스커트가 대세라고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세기말 패션’ 혹은 ‘와이투케이(Y2K) 패션’의 흔적들이 올 봄·여름에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번 생은 죽었다 깨도 감히 입기 어려운 사이즈의 옷들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아동복이 아니고 성인 여성 옷이라고?
아이고 배 시리겠다.
저런 옷 입으면 배탈 나겠는데?
근데 이런 옷을 일상에서 입고 다니는 진짜 사람이 있을까?
이런 나의 꼰대스러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건 정확히 3일 후의 일이었다. 주말 홍대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은 교복이라도 되는 듯 배꼽이 슬쩍슬쩍 보이는 크롭 티 아니면 아슬아슬한 사이즈의 스커트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패션잡지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팔딱이는 활어처럼 생기 넘치는 패션으로 중무장한 젊은이들이 거리에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냉동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머리도 몸도 꽝꽝 얼어버린 냉동인간의 몸에는 소매에 볼펜 자국과 먹다 흘린 커피 자국이 선명한 맨투맨 티셔츠와 어중간한 폭의 생지 데님이 걸쳐져 있었다.
내 기준에는 돈 줄 테니 입으라고 해도 못 입을 옷들을 누군가는 열심히, 아니 즐기면서 입고 있었다. 복근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출렁이는 뱃살은 없어야 배가 드러나는 옷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와장창 깬 과감한 옷차림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던, 뭐라 하던 내가 입고 싶으면 입는다는 결심이 더 중요했다.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할 건 군살 없는 몸이 아니라 눈치 보지 않는 당당한 마음이었다. 굽힐 것 없는 그 떳떳한 마음이 그들을 더 빛나게 하는지 모르겠다.
불 위에 내던져진 마른오징어처럼 쭈굴쭈굴함이 일상화되고 있는 요즘. 치골이 훤히 드러나는 로우 라이즈 팬츠 위로 빼꼼 인사를 하는 누군가의 귀여운 똥배를 마주할 때마다 생각한다. 크롭탑 아래로 푸짐하게 흘러내린 옆구리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 뭐 어때?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남들 말, 시선 하나하나 신경 쓰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게 낫지.
후회를 남기는 것보다는
경험을 남기는 게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