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독이 되는 간절함
주말 오후, 점심을 먹고 뒹굴뒹굴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산책을 나갔다. 보통은 음악을 듣는데 그날은 왜인지 누군가의 수다를 엿듣고 싶었다. 팟캐스트를 뒤적이다 사업 수완이 좋은 누군가의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에피소드를 플레이했다. 힘없이 흐느적거리던 발걸음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고 그 힘을 주체할 수 없어 브레이크를 밟은 건 바로 그때였다. '구제 옷'과 '골동품'을 파는 동묘 벼룩시장의 쇼핑 꿀팁 부분. 그의 비법을 듣고 나서 다른 산책인들의 시선도 잊은 채 홀로 서서 공감의 물개 박수를 쳤다.
사람들이 동묘에 가면 물건이 마냥 싼 줄 알아요.
하지만 그걸 몰라요. 동묘에는 정가가 없다는 사실!
그 말은 가격표가 물건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장님의 마음에 달렸다는 뜻이죠.
진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물건의 값부터 물어보세요.
가격을 듣고 그 후 가격이 안 맞아
못 사겠다는 표정을 살짝 지은 후
‘돌아보고 올게요’ 하세요.
몇 걸음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오세요.
그리고 별 관심 없다는 듯 슬쩍
가격을 들은 물건 옆,
즉 진짜 사고 싶은 물건의 가격을 그때 물어보세요.
그럼 100이면 98은 원래 사려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요.
원래 살 마음이 없었는데
우. 연. 히. 눈에 들어와 별생각 없이 구매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흥정의 시소에서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사람은 상대방 즉 마음이 가벼운 사람을 올려 볼 수밖에 없다. 안달복달하는 마음. 그걸 들키는 순간 상대에게 순순히 패를 까 보이는 거다. 간절함은 때로는 독이 된다.
잘하고 싶은 마음.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상태는 어김없이 간절함이 발동한다. 목과 어깨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가면 근육이 뭉친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들이 툭툭 발목을 잡는다. 120을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70이 되고, 반 토막 나기 일쑤다. 120이 아니라, 100도 아니라, 80만 하자. 20은 하늘이나 운에 맡겨버리고 할 수 있는 80만 해도 충분하다.
맛보다 줄 듯 말 듯 손님을 놀리는 퍼포먼스로 유명한 터키 아이스크림. 언젠가 늘 해맑던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 얼굴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웃음기 하나 없던 표정을 본 적 있다. 손님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수록 신이 난 아저씨의 퍼포먼스에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시크한 어린이 손님 때문이었다. 포기가 빠른 아이였다. 몇 번 아이스크림이 아이의 손끝에 닿을랑 말랑했지만 끝내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자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무덤덤한 반응에 흥미를 잃은 아저씨는 평소보다 짧게 퍼포먼스를 마치고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넘겨줬다.
인생은 마치 터키 아이스크림 같다. 잡으려고 악착같이 달려들면 줄 듯 말 듯 나를 놀리는 것처럼 약을 올린다. 그런데 오히려 간절함을 빼고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의 마음가짐이면 오히려 결과가 좋았다. 오면 와서 좋고, 아니면 노력을 안 했으니까 그에 맞는 결과라고 수긍하게 된다. 마음에 서서히 간절함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기미가 보이면, 긴 막대로 아이스크림을 줬다 빼앗던 터키 아저씨를 떠올린다. 간절함은 과하면 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