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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18. 2022

우리, 자연사하자

로또 당첨보다 어려운 자연사


자연사(自然死)  [명사]
노쇠하여 자연히 죽음. 또는 그런 일.      


밥 대신 떡볶이만 먹고살고 싶다던 친구가 있다. 명랑만화 주인공처럼 유쾌한 성격과 찰진 입담으로 만날 때면, 웃느라 배에 복근이 생기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재미있는 친구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면서 오랜만에 얼굴을 봤다. 특유의 발랄함은 여전했지만, 예전만큼의 텐션은 없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건강상의 이유로 떡볶이와 거리두기 중이란다. 지금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건 혈당. 매일 같이 먹던 엽기적인 맛의 떡볶이는 이제 살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주간 떡볶이’에서 계절별로 먹는 ‘계간 떡볶이’를 넘어 먹고 싶어 죽고 싶을 때, 죽지 않기 위해 먹는다고 했다. 혈당을 낮춰준다는 돼지 감자차와 새싹 보릿가루의 효능을 침 튀기게 찬양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이 노래가 떠올랐다.     

 

5 뒤에 누굴 만날지
5 뒤에 뭐가 일어날지
걱정하지  기대하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야
(걱정 , 어차피    거야)
우리 자연사하자
우리 자연사하자
혼자 먼저 가지 

미미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하자> 중에서 

이렇게 우리는 아직 반백 살도 안 됐지만 성인병 걱정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이었나? 옆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날 저녁 맛있게 드시고, 주무셨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지 않으셨다고 했다. 어른들이 할아버지의 죽음을 호상이라고 했을 때, 왜 사람이 죽었는데 슬퍼해야 하는데 왜 잘 돌아가셨다 할까? 생각했다. 고통 없이 잠자듯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일이 얼마나 운이 좋아야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걸 어린 나는 몰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자연사를 꿈꾸지만 현실은 대부분 병사나 사고사로 생을 마감한다.      


등 푸른 활 고등어처럼 팔딱이던 시절에는 중년의 나를 상상하지도 못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에 눈이 아프도록 화려한 패턴의 옷을 아래 위로 아무렇게나 입던 중년 시절의 엄마 모습에 얼굴만 똑 떼 내 얼굴을 넣어도 봤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중년의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고 캄캄하니 그때까지 나눠 써야 할 에너지들까지 미리 당겨 썼다. 내일이 없는 하루살이처럼 막무가내로 들이댔고, 날뛰었다. 건강하게 먹는 일, 바닥난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일, 나를 돌보는 일에 소홀했다. 그렇게 20대, 30대를 보내고 나니 쥐면 파사삭 소리를 내며 바스러질 껍데기뿐인 몸뚱이만 남았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내 의지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다. 100세 시대라고 내가 꼭 100살까지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사는 동안이라도 덜 앓고 덜 구시렁거리며 살고 싶었다. 나를 괴롭히고, 남을 재던 서슬 퍼런 잣대들부터 무뎌지게 만들어야 했다. 날 선 감정과 신경들을 둥글게 만들기 위해 스위치를 내리듯 신경 끄는 연습 중이다. 밤낮없이 울려대는 카톡, 메일, 전화는 여전히 나를 괴롭히지만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깊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차오르는 짜증을 식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안 넘어가는 밥을 국에 말아 단 두 숟갈이라도 밀어 넣는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공복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다. 주중에는 약을 먹듯 요가와 산책을 하고, 주말에는 병원에 가듯 산에 간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과연 이런 노력이 나를 자연사에게로 한 발짝 더 가까이 데려다줄까? 꼭 그렇다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눈 감기 전에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내팽게쳤다는 후회는 없다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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