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단어로 기억될까?
바쁘게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 높은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영혼 없이 고개를 들었을 때 전날은 분명 없었던 낯선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처럼 화사한 표정의 남자가 웃고 있다.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겸둥이
김*겸
곧 있을 지방 선거를 앞두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대형 건물마다 예비 후보들의 플래카드가 도배 중이다. 도지사나 시장을 제외하고 딱히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기 어려운 구·시·군 의회 의원,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비례대표, 교육감 등등을 뽑는 선거. 지금까지 분명 지역을 위해 헌신(?) 했고, 또 헌신할 많은 후보들을 고르고 골라야 한다. 이번 선거에 후보로 나선 사람들끼리 사진관 이용권을 공동구매라도 한 듯 악건성인들이 부러워할 기름이 좔좔 흐르는 얼굴에, 마더 테레사급 인자함을 풀 착장한 표정이 판박이다.
그런데 저 ‘겸둥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빵 터졌다. 웃음에서 그치지 않고 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검색까지 해봤다. 매 선거마다 한 둘씩 등장하는 저세상 돌+I인가 싶었다. 검색 결과는 나의 기대와 정반대를 가리켰다. 배울 만큼 배우고, 기초의원으로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셨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분이었다. 이력만 보면 전형적인 지역 정치인이 확실했다. 흔히 그 자리에는 보통 시민들의 머슴, 준비된 일꾼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겸.둥.이.라니.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딴 저 단순한 카피를 누가 끄집어냈을까?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고 근엄한 척하는 정치판에 저리 얄궂은 카피를 허락한 자는 누구일까? 어떤 이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인지 모르겠지만 시민 1인의 머릿속에 그 낯선 이름을 깊게 새긴 건 분명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분의 현재 상황을 찾아보니, 예비 후보로 등록한 게 무색하게 당의 공천에서 떨어져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귀염둥이 씨는 이대로 본선에 오르지도 못하고 당내 예선에서 탈락하는 걸까? 심히 궁금하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나의 단어가 남는다. 번화가를 함께 걸으면 어김없이 3보 1 멈춤 하고 꼭 가게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상암동 열린 지갑, K. 그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머릿속에 #소비 요정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 나처럼 지갑이 꽉 닫힌 사람들만 살면 우리나라는 망한다. 털털함의 대명사로 유명한 배우 Y. 무대 뒤에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쥐 잡듯 잡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후 TV에서 그 배우가 나올 때마다 머릿속에는 #아수라가 떠오른다. 술에 얼큰하게 절여진 혀로 ‘이대로 날 버리고 갈 거냐’며 막차를 향해 달려가던 경기도민의 바짓가랑이를 잡던 선배 E. 그를 볼 때마다 #진상이라는 키워드가 머릿속에 자동 생성된다. 맛있는 거 사주는 사람 = 좋은 사람이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입력된 내게 귀하고 비싼 밥을 미끼 삼아 꼬실 때마다 재빨리 키워드 #진상을 소환해 나를 각성시키고,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단어로 기억될까? #쫄보, #잡생각 부자, #프로 산책러, #등린이, #비공인 요가 전도사 #알쓰, #무욕인(無欲人) #인생의 30%를 길바닥에 버리는 경기도민, #걱정 만수르, #속을 모르겠는 사람 등등 내가 들은 것만 해도 이 정도. 아마 내가 아는 사람의 머릿수만큼 다양한 키워드로 나를 기억하고 있을 거다. #소비 요정, #아수라, #진상. 당사자는 결코 모르는 나만 아는 단어로 그 사람을 기억하듯, 각기 나를 다른 단어로 기억할지 모른다. 나를 수식하는 나열된 단어를 보니, #잡생각 부자는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 만수르는 걱정이 차오른다. 정리가 필요하다. 차갑고, 어둡고, 부정적인 단어들은 덜어 낸 자리에 따뜻하고 귀엽고 또 긍정적인 단어를 넣고 싶다. 귀염둥이 씨처럼 이름에 ‘겸’ 자가 들어가진 않지만 겸둥이에 못지않은 사랑스러운 기운 가득한 단어들로 나를 채우는 방법은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