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어린이들을 꾹꾹 누르며 살고 있는 어른이들에게
중학생인 조카는 일찌감치 내 키를 훌쩍 뛰어넘었다. 법적 성인이 됐지만 대한민국 성인 여성 평균에 못 미치는 키로 살고 있다. 키는 유전적 영향이 다분하다지만, 난 후천적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채로 성장이 멈춘 이유 중 8할은 ‘잠’이다. 세상이 오프 스위치를 누른 듯 잠잠한 밤이 좋은데 밤을 잠으로만 채우는 게 아까웠다. 성장호르몬이 뿜어져 나와야 할 시기에 잠 대신 택한 건 심야 라디오였다. 나긋나긋한 디제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밤의 고요를 즐겼다. 키를 잃고, 벨벳 같은 감수성을 얻었다.
(심야 라디오를 듣기에는 체력이 달려 최근에 들어 본 적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 시절,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DJ는 주로 자사의 아나운서였다. 회사 입장에서 보면 내부 인력을 활용해 큰돈과 에너지 들이지 않고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으니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거다. 아는 거 많고 목소리 좋은 DJ 언니, 오빠들과 함께 하는 밤은 그래서 더 신이 났다. 고민 사연을 읽고, 조언해 줄 때는 결점 없는 어른의 말을 듣는 듯 귀를 쫑긋해 듣곤 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학교 나와서 이름난 회사에 들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누가 봐도 완벽한 존재였다. 그래서 아나운서는 완전한 어른의 직업처럼 느껴졌다. 비슷한 류로 의사, 변호사, 교수, 정치인, 기업체 대표 등 소위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있다. 이름 앞에 이런 직업 타이틀이 붙으면 뭔가 대단하고, 완벽해 보였다.
어느새 그 시절 DJ 언니, 오빠들보다 훨씬 나이 많은 사람이 됐다. 일 때문에 종종 아나운서들을 만난다. 아나운서라는 타이틀만 떼고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을 때 보면 그들의 모습은 또래와 다르지 않다. SNS에 올릴 셀카를 공들여 찍고, 멀끔한 정장 아래 슬리퍼를 신고, 사무실 책상 위에는 피규어들이 늘어서 있고, 신조어를 모르는 선배를 놀리는데 혈안이 됐고, 부장님의 아재 개그에 영혼 없는 리액션을 해대는 흔한 직장인. 그들도 출입증을 목에 걸고 칼퇴와 로또 당첨을 꿈꾸는 회사원일 뿐이었다. 내가 완벽한 어른이라고 생각하던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말단 사원 혹은 사회 초년생이었다.
아나운서를 비롯해 의사, 변호사, 교수, 기업체 대표 등 흔히 ‘어른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현실에서 만날 때, 나이 지긋한 전문가를 기대하며 자리에 나간다. 하지만 앞에 선 사람은 나보다 어린 파릇한 젊은 피일 때가 많다. 물론 각 분야에서 적지 않은 경력을 쌓아온 분들이지만 대화를 이어갈 때 순간순간 느껴지는 벽을 마주할 때마다 당황스럽다. 직업의 무게에 짓눌려 제멋대로 상상한 어른을 만날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 성향의 차이도 있겠지만 단순한 지식의 깊이나, 정보의 양에 대한 문제는 아니었다. 전문가의 지식 이전에 어른의 생각과 행동을 갖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듯, 명망 있는 직업을 가졌다고 꼭 어른은 아니었다. 나는 왜 그들이 대단한 어른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개그 짤이 떠오른다. ‘아! 학교 가기 싫다.’라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네가 선생님인데 가기 싫어도 가야지.” 학교 가기 싫다고 엄마한테 징징거리던 어린이가 자라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됐을 뿐이다.
퇴근길,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공장 빵처럼 영혼은 다 빨린 텅 빈 몸뚱이가 지하철 환승통로 무빙 워크 위를 터덜터덜 걸어간다. 걸어갈 때는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최근 내가 지키려고 노력 중인 철칙이다. 갈 곳 잃은 동공은 빈틈없이 반듯한 남색 슈트를 입은 샐러리맨이 맨 쥐색 백팩에 닿았다. 지퍼 손잡이에 달린 빨간색 포*몬 몬스터 볼이 달랑였다. 얼굴이 궁금해 속도를 조금 더 내서 그를 앞질렀다. 뒤를 흘깃 보니 누가 봐도 부장님 연배의 흔한 중년. 다들 내 안의 어린이들을 꾹꾹 누르며 어른인 척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