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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Jun 15. 2022

인증샷을 위한 전시인가? 전시를 위한 인증샷인가?

실종된 관람 매너를 찾아서


     

게으름을 부리다가 전시 종료 기한을 코앞에 앞두고 부리나케 미술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갑부이자 열정적인 미술 수집가였던 사람이 기증한 작품으로 꾸며진 전시. 가치와 의미, 그리고 스토리가 더해져 화제성이 뜨겁다 못해 활활 불타오르는 곳이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선 줄은 넓은 미술관 내부를 빙빙 돌고 꽉 채우고도 모자를 지경이었다. 1시간을 예상했던 대기 시간은 1시간 30분을 넘겼다. 가져간 책 한 권을 다 읽고 뻐근한 목과 욱신거리는 다리를 이리저리 스트레칭한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여기서 정모라도 하고 있는 걸까? 아직 코로나19에서 자유로운 상황도 아니고, 또 쾌적한 관람을 위해 일정 인원으로 끊어서 입장한다고는 했지만, 내부는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난 동선이 꼬이더라도 한적한 그림을 먼저 보고 인기 있는 그림은 사람이 빠져 한산할 때 보는 식으로 구경한다.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방식, 그 혼돈 속에서도 내가 호젓하게 그림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렇게 사람마다 각자 그림을 즐기는 방식이 따로 있다.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가며 그림에 집중하던 내 얼굴 옆으로 가제트 팔이 쑥 밀고 들어온다. 그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곧이어 내 귀에는 찰칵찰칵 촬영음이 파고든다. 이게 뭐지 싶어 고개를 돌려 가제트 팔의 주인공을 찾아보니 나이 지긋한 그림 애호가였다. 촬영에 집중한 그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작품 활동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장애물이었을까? 타인이 일정 거리 이내로 접근하는 경우, 불편하게 느낀다는 퍼스널 스페이스를 침범당했다. 나의 불쾌함 가득한 눈빛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또다시 다른 그림을 향해 달려가는 열정의 예술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예술을 하기에 남의 관람까지 방해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몸을 돌려 다음 작품으로 향했다.     


이미 그곳에는 열정의 모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세라도 낸 듯 그림 앞에서 갖가지 포즈를 취하고 있었고, 지인은 그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한두 포즈 타임이라면 충분히 기다릴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12페이지짜리 화보 촬영을 하듯 촬영 시간이 길어졌을 때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이런 마음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거 좀 적당히 합시다’라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얼굴이 붉어진 모델은 자리를 떴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다른 그림 앞에서 다시 포즈를 잡고 있었다. 이 모델은 그림을 보기는 했을까? 눈이 아니라 뒤통수가 더 오래 그림을 마주했다. 그림의 디테일을 확인한 시간 보다, 찍은 사진 속 자신의 디테일을 확인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그 시간만 따졌을 때.      


가제트 팔 사진가도, 재야의 모델도 그게 자신이 그림을 즐기는 방식이라고 주장한다면 존중한다. 그렇게 즐기고 싶다면 전시회를 전세 냈어야 하는 건 아닐까? 미술관 내에 혼자 있다면야 깨춤을 추던 인생 200컷을 찍건 상관 안 한다. 하지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나눠 써야 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혼자 그렇게 예술하시면 곤란하지 않은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이란 뜻의 신조어 인스타그래머블. SNS를 통한 과시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소비문화와 이를 노리는 기업의 마케팅 트렌드 열풍에 힘입어 소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는 인스타그래머블한 전시들이 넘쳐난다. 예술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가볍게 오갈 수 있어 이렇게라도 예술의 맛을 보는 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이 어렵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기면 다음은 쉬워진다. 그렇게 점점 예술에 관심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좋은 기회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전시를 보러 가서 인증샷을 찍는 게 아니라 인생샷을 찍으러 전시회에 간다고나 할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메라 촬영음, 촬영에 집중하다 작품 앞에 쳐 놓은 선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관람객을 제지하는 직원의 날 선 목소리, 작품 앞의 모델의 디테일을 잡아주는 아마추어 사진가의 디렉팅 하는 소리, 이 상황이 짜증 나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내뱉는 나의 한 숨소리 등등 크고 작은 소음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누구를 탓할까? 게으름을 부린 탓에 전시 막차를 타서 만차인걸. 다짐한다. 부지런을 떨자.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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